호적과 족보 이야기

족보와 가승, 진위 판별을 위한 문헌들

신동훈 識 2026. 6. 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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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와 가승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수백 년에 걸쳐 계속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며 고쳐지고 팽창해 왔기 때문에

오늘날 집집마다 전해지는 책자의 내용은 한마디로 말하면

진위를 판별할 수 없다 하겠다. 

여기 간단히 족보와 가승을 최소한 "준 역사학급" 수준까지 끌어올려 살필 수 있는데 필요한 여러 사료들을 적어본다. 

물론 더 있을 수도 있겠는데 필자 역시 이 부분은 학술적 취지에서 접근한다 해도 아마추어는 아마추어인지라 한계는 있다고 할 수밖에 없겠다. 

1. 조선시대의 여러 온라인 문헌 검색 툴: 

한국학계 여러분이 애 쓴 결과 요즘에는 온라인 상에서 기본적인 사료, 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문집 등 사료는 한 번에 검색 가능하여 도움이 된다.

전질이 번역되어 있는 추안급 국안도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2. 문과, 사마, 무과방목:

이 역시 온라인 상에 찾아보면 조선시대 문과방목, 소과급제자인 사마방목, 무과방목이 있다.

이를 검색하면 과거 급제자, 혹은 소과 입격자의 경우 당사자의 정보는 물론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부, 그리고 외조부까지 기록되어 있어 도움이 된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문과 방목의 경우 현재 합격자가 거의 빠짐없이 전부 검색되는 것 같고, 사마방목은 75프로 정도 갖추어졌다는데 필자의 느낌으로는 검색해보면 그 이상 검색되어 나오는 것 같다.

무과방목은 개판이다. 검색되는 인물보다 검색되지 않는 인물이 더 많다. 따라서 조선시대 족보에서 관직을 날조했다면 가장 진위여부를 판별하기 쉽지 않은 것이 바로 무과 급제자이다.

문과 및 사마시 합격자는 거의 진위 판별을 해낼수 있다. 

3. 20세기 이전 족보: 

대략 족보를 열심히 편찬한 집안은 임란 이후부터 길게는 백년, 짧게는 수십년 주기로 계속 새로운 족보를 편찬하여 둔 경우가 많다. 국립도서관의 고문서실에 가면 이런 족보들 검색이 가능하다.

고문서 족보를 시대별로 살피면 어느 시대에 족보가 어떻게 변해갔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대개 17-18 세기 족보까지는 권질이 소략하다가 19세기 족보부터 크게 분량이 팽창하여 19세기 후반이 되면 이미 우리가 오늘날 보는 족보의 틀이 완성된다.

다른 사료에서 거의 확인이 불가능한 계보라도 수백년 동안 출판된 족보를 거슬러 올라 확인할 수만 있어도 얻을 정보는 무척 많다.

특히 좀 깐깐한 사족들 족보의 경우, 새로운 계보가 편입되어 들어오면 어떤 경위로 추가되는지 꼼꼼하게 이유를 남겨 놓는 경우가 많다.

최초의 족보가 만들어 진 후 그 후의 족보에 이전에 없던 계보가 들어오면 제대로 된 족보라면 거의 파악이 가능하다. 
 



4. 안동권씨 성화보, 문화유씨 가정보

이 두 족보는 친가 뿐 아니라 외가, 사위 집안까지 모두 수록해 놓았기 때문에 조선 전기에 어느 정도 안정적인 사족이었다면 그 계보가 거의 여기 다 나온다.

이 두 족보에 계보가 상세히 실려 있다면 조선전기에 상당한 수준의 사족이었다고 보아도 될 것 같다.

온라인을 잘 찾아보면 영인한 자료가 나온다. 번역도 되었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필자는 번역한 것은 접한 적이 없다.

굳이 번역이 필요 없는 것이 사람 이름과 이를 서로 연결한 계보가 족보의 전부이다. 

5. 선원계보

조선왕조 왕실계보인 선원계보는 출가한 딸의 집안도 계보를 수록한다. 만약 전주이씨 집안 종실과 혼맥이 있었다면 여기서 계보의 확인이 가능하다.

선원계보는 족보류 전적 중에서는 가장 신뢰도가 높은 일급 사료라 할 수 있다. 

6. 조선후기 호적

마지막으로 조선후기 호적이다.

이론상으로는 조선후기 족보에 실린 내용은 호적의 내용과 동일해야 한다.

족보에 실린 내용은 대부분 호적 준호구의 정보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호적에는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의 3대조와 외조부, 그리고 처가집 장인, 조부, 증조부와 외조부 도합 8인의 조상이 실려 있다.

따라서 만약 족보에 실린 시대의 호적이 지금 남아 있다면 계보 확인에 크게 도움이 된다.

호적에는 직역이 실려 있어 당대 호적에 실린 인물의 신분까지 확인이 가능하며 호적에는 그 예하의 노비까지 실려 있어 재산 상태도 간접적으로 파악이 가능하다.

남아 있다면 이 이상이 없는 강력 무쌍한 검증자료이긴 한데 불행히도 조선시대 호적은 매우 제한적으로만 남아 있다.

만약 남아 있는 경우라면 17세기 중 후반 부터 19세기 중후반까지 대략 200년 정도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7. 만성보, 만가보 

이것은 사실 개별 족보에 실린 내용을 묶어 만든 족보라 이 자체가 사료적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만성보와 만가보는 조선 말 잘나가던 사족집안 계보만 추린 것이라 그 당시 소위 힘 좀 쓰던 집안 계보가 어떤지 살펴보는데 도움이 된다.

그냥 사족 정도로는 계보가 실리기 어렵고 소위 명망 있는 집안 직계만 수록하는지라 적자가 맞더라도 후손이 시원찮으면 가차 없이 잘라 지워버리고 실었다. 

대략 이 정도의 사료를 동원하여 제3의 사료에서 확인이 된다면, 그 계보는 믿을 만 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필자는 이러한 제 삼의 사료에서 검증되지 않는 족보의 정보는 모두 잠재적으로 허구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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