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이야기

지주전호제도 이주갑인상

신동훈 識 2026. 5. 2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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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이른바 분익소작sharecropping

 

우리나라 학계 통설에: 

16세기 말엽부터 확대되기 시작한 병작제는 배타적 소유권의 확립을 배경으로 하였다. 

병작의 운영 원리는 계약으로 대표되는 경제적 요소로서 작개제와 달리 경제 외적 강제주거에 의해 유지되는 방식이 아니었다. 

토지 매매가 활성화되고 지주가 소유권을 배타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되며 강제력 없이 지대를 수취하는 병작제가 위치를 공고히 해나갔다. 

15세기까지 주변부에 머물렀던 병작제는 16세기 후반부터 확대되었고, 17세기 중엽을 거치며 급속히 진행되었다.

라고 한다. 

필자가 이야기 한 것 중에 우리나라는 소위 말하는 

자본주의 맹아론을 지지하는 모든 언설이 이주갑 정도 인상되어 있다고 썼던 바, 

지주전호제도 마찬가지다. 

위는 한국학계의 통설을 반영하는 기술인데 

여기도 16세기 후반부터 병작제가 확대되었다고 하고 있다. 

그러면 임란시기에 집필된 쇄미록 등에 병작제에 따른 지주전호제, 소작의 흔적이 보여야 하는데

거기 어디에 소작농이 나오는가. 

혹시 외거노비를 소작농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그 당시 외거노비를 소작농으로 봐야 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가 되겠고, 

설사 그렇게 본다 해도 쇄미록의 양반들은 자기 땅을 자기 노비를 동원해서 경작하고

주변 사족들과 물물교환, 선물의 형태로 필요한 것을 나누어 보충했지

외거노비가 바치는 연공은 절대로 그 당시 경제의 주류가 될 수 없다. 

한국학계에서 생각하듯이 17세기에 이미 지주전호제가 급속히 진행된다? 

17세기까지 말까지도 우리나라 각 고을에는 대규모 노비를 사역하는 동네가 바글바글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는 정확히 말하자면 18세기 중엽, 영조 재위기간 벌어진 일로서 

그 이전은 우리나라, 

지주전호제로 재편되었다고 볼 근거가 전혀 없다. 

영조때에 벌어진 일을 인조-효종-현종 대까지 끌어올려 얼렁뚱땅 서술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필자가 이야기 하는 바 우리나라 자본주의 맹아 기술에서의 "이주갑 인상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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