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연구

책과 이별 전 연옥에 두다

신동훈 識 2026. 6. 1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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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이란 카톨릭에 있는 개념으로 지옥과 천당 사이에 존재한다는 저승 공간이다. 

최후의 심판 보면 연옥의 개념이 분명한 것으로 안다. 

지옥에 떨어진 이들과 천국에 올라간 이들 사이에 또 한 층이 존재하여

여기 있던 영혼들이 지은 죄가 모두 속죄되면 천국으로 올라가는 바, 

이를 영어로는 limbo라 부르는데 성경에는 있는 개념이니 없는 개념이니 기독교도 사이에 말이 많은 것으로 안다. 

저승에 림보가 있건 없건 간에 책과 이별하는 데는 림보가 있어야 한다. 

앞서 장서에 대한 글을 쓴 바, 그 이야기는 필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요즘 주말이면 학교에 나가 연구실 짐을 계속 정리하는데, 

조만간 학교 교수 생활을 그만두어야 할 시기가 올 것이니 

조금이라도 여유 있게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퇴직 이후에도 계속 글을 읽고 쓰고 싶은 필자로선 그를 위한 준비도 할 겸해서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인쇄물에 대한 정리인데, 

우선 인쇄하여 묶어둔 논문을 온라인에서 찾아 pdf로 전환하고 

그 복사물 제본을 폐기하는 작업인데, 이것만 해도 짐이 상당히 줄어든다. 

이렇게 저장한 전자파일을 읽기 위해 전자북리더도 하나 구입했는데 

그럭저럭 쓸 만해서 지하철에서 요긴하게 쓰고 있는 중이다. 

문제는 단행본이다. 

처음에는 단행본을 정리하는 것이 꽤 속도가 붙었었는데 

요즘은 하루종일 정리해도 버릴 책이 서너 권밖에 나오지 않는다. 

버릴까 말까 하다가 도로 책장에 꽂게 된다. 

이를 위해서 가지고 있는 단행본과 이별을 위해 림보를 만들어 두었다. 

책장에 꽂힌 책을 바로 치우자면 차마 손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림보를 두고 눈앞에서 먼저 치워둔다.

눈앞에서 보이지 않는데 책을 찾지도 않고 잊고 지낸다면

사실 그 책은 내게 더 이상 필요 없는 책이다. 

이 경우 일정기간 림보에서 지낸 책은 마침내 천국으로 승천하게 되는 것이다. 

예전 케븐 코스트너가 주연한 영화 중에 꿈의 구장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승부조작 혐의로 야구계에서 영영 추방당한 선수가

유령이 되어 주인공이 만들어 놓은 야구장에 찾아와 유령인지도 잊은 채 야구를 하고는

묻는다. 

여기가 천국인가요? 

사람마다 천국의 모습은 다를 것임에 틀림없는데

책을 좋아하는 이들은 천국에는 그렇게 떠나보낸 책들이 아마 책장에 가득 꽂혀 모여 있는 상태에서

주인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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