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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로 가서 살던 시대 그리고 씨족의 전국적 확산

신동훈 識 2025. 7. 11.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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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필자의 추정에 불과하지만, 

남편이 처가로 가서 살던 시대와 그렇지 않은 시대. 

어느 쪽이 더 그 씨족의 전국적 확산이 빠를까? 

필자가 보기엔 남편이 처가로 가서 정착하는 시대가

그렇지 않은 시대보다 전국적 확산이 빨라지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조선 전기-중기까지도

남편이 처가로 가 살다가 돌아오거나 

혹은 아예 현지에 정착해 살게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조선 후기 유교적 종법이 정착되고 친영례가 권장되면서

이러한 관행은 사라진 것으로 안다. 

우리의 성이라는 것은 부계를 반영하므로 

남편이 처가 쪽으로 가 살다가 그곳에 정착해 버리면 

다른 지역으로 그 성의 확산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남편이 움직이지 않고 전적으로 아내가 남편 쪽으로 "시집만 가는" 형태의 혼인만 남으면

여자 쪽이 동일 거리를 이동했지만 여성의 성은 다음 세대로 내려가지 않으므로 

특정 성의 지역적 확산은 느려지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다른 조건은 모두 같고 결혼 후 남편이 처가로 가느냐 아니면 반대이냐 그 차이만 두면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족보를 보면 조선 전기-중기에 성의 전국적 확산이 빠르게 이루어지다가 

(경기도 일대 거주하던 씨족이 지방으로 퍼져 나가는 모습이 족보를 통해서도 관찰됨)

조선 후기가 되면 씨족 이동이 매우 둔해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장거리 이동이 희귀해짐)

이는 전적으로 부계 가부장제 하에서 남편이 처가로 가는 시대보다

부인이 시댁으로 오는 경우가 씨족의 전국적 확산이 더 빠른 것으로 잡히는 탓이다. 

사실 남자와 여자의 이동은 비슷할 것이지만, 

여자 쪽은 장거리를 이동해도 부계 사회에서는 그 이동이 성에는 남지 않는 탓이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 족보를 보면

전기와 중기까지는 전국적 확산이 매우 빠르며

후기 들어서는 느린 경향을 자주 본다. 

처가로 가서 살다가 돌아오지 않고 현지에 정착하면서 

그 성은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살펴본 바 대개 하나의 씨족이 전국적으로 흩어져 

원거리에 입향조가 생기는 경우는 거의가 임진왜란 이전으로 

이는 그때까지 남아 있었던 남귀여가혼의 흔적이다. 

유교적 종법이 정착하면서 남자가 움직이지 않게 되니 

그때부터는 씨족의 원거리 이동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필자가 확인 한 바 거의 그런 패턴을 보였는데 

흥미있는 분들은 댁의 족보를 한 번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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