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배의 전신 전조선축구대회 (1922년)
이 해에는 제2회 전조선축구대회가 열렸다.
이 전조선축구대회는 요즘 한국의 FA컵인 코리아컵의 전신이다.
이 대회는 1940년까지 계속 개최되었는데,
1940년에 조선팀도 천황배 참가를 종용하면서
이 대회가 없어졌다.
해방 이후에 부활하여 전국축구선수권대회가 되었다가 요즘은 코리아컵이 되었다.
이 축구대회가 열린 곳이 경성중학교운동장으로 되어있는데
여기는 일본인 학교로, 조선인들이 주로 다니던 고등보통학교가 아니라
중학교였다.
따라서 여기는 졸업하면 대학예과나 고등학교 진학이 되는 정규학교였다.
이 경성중학교는 1937년
기존의 고등보통학교를 모두 중학교로 전환하면서
조선인이 다니던 경성고등보통학교와 이름이 같은 통에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조선인 학교인 경성고보는 2개가 있었다.
경성제일고보,
그리고 경성제이고보다.
이 두 학교는 1937년 중학교로 바뀌면서
경성제일고보는 경기중학교가 되었고,
경성제이고보가 경복중학교가 되었다.
그리고 기존의 경성중학교는 그대로 그 이름을 계속 썼다.
이러던 것이 해방이 되면서 입장이 전도되어,
경기중학교와 경복중학교는 그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였고,
경성중학교가 해방이후에 서울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인 곳이 대구와 광주에도 있었는데,
대구에서는
대구고보와 대구중학교가 있었는데,
해방 이후 조선인학교인 대구고보가 경북고등학교가 되고,
대구중학교는 사실상 폐지되다 시피 했다.
이런 변화에 대해서는 이전에 한 번 쓴 바 있어서 아래에 링크 시켜 둔다.
해방 후 위상이 바뀐 고보와 중학
조선에는 일제시대 중등교육과정에 중학과 고보 둘이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썼다. 이중 중학은 대개 일본인들이 다녔고, 고보는 조선인들이 다녔는데, 1922년 2차 조선교육령 이후 5년으로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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