探古의 일필휘지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 찍먹 감상기 (3) 유물의 팔자

버블티짱 2024. 12. 26. 21:28
반응형

널리 알려져 있듯이, 국립고궁박물원 기초는 국민당이 접수한 청 황실 소장품이다. 

그런 만큼 여기엔 청나라 황제들이 개인적으로 곁에 두고 즐겼던 물건들이 적지 않고, 이를 따로 방 하나를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국립고궁박물원 하면 떠올리는 유물 중 상당수가 여기 있다.

 


온갖 귀금속과 보석이 아낌없이 베풀어져 화려한 건 기본이고, 작더라도 있을 걸 다 갖춘 물건들이다. 

 

강희제가 찼다는 조주

 

황제와 황후, 비빈들이 찼던 목걸이(조주朝珠라고 한다)나 법랑채 동기銅器, 금실로 만든 합 따위에도 물론 눈길이 가지만, 

 

많은 분은 그 근처 진열장에서 감탄을 금치 못한다.

 

상아로 만든 탑과 구슬이다. 

 

 

 

여러 개를 이어붙이거나 한 게 아니라 상아 하나만을 깎고 다듬고 새겼는데, 구슬은 그 안에 또 구슬이 있어 빙글빙글 돌아가고 탑은 층층마다 부처님이 앉아 미소를 머금었다. 

3대에 걸쳐 만들었다는 이 상아 작품을 보면 절로 탄성이 나오지만, 이 물건의 용도가 그저 황제 한 사람을 위한 것이었음을 생각하면 그 탄성이 문득 탄식으로 바뀌기도 한다. 

저 기술을 다른 데 쓸 수 있었다면 혹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씁쓸함은 '다보격多寶格'을 보면서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다보격

 

다보격이란 여러 가지 물건을 작게 만든 뒤 상자 안에 넣었다 뺐다 하며 주인 마음대로 진열할 수 있게 만든 일종의 '조이 박스Joy box'인데, 

대개 황제의 장난감이었다고 한다. 

 

 

정무에 시달리던 절대권력자가 그나마 쉬는 시간을 얻으면 이것을 들여다보고 배치해보며 시름을 잊었다는 것이다.

 

 

그 미니어처 물건들의 수준이 높을 것은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황제도 결국 한 '사람'일 뿐이었음을 저 다보격이 보여준다.

 

역사 기록에 적히지 않았을 그의 꿈과 생각을, 저 안의 미니어처 도자기와 상아 조각은 혹 기억하고 있을는지. 

"아아, 가련하구려 황제여!"

 

세상은 바뀌어, 이제는 제아무리 황제라 하더라도 상아나 코뿔소 뿔로 만든 물건을 갖지 못한다. 다만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만 전시하는 게 가능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