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이야기

태종이 죽였다는 고려왕실은 몇명인가

신동훈 識 2026. 5. 5.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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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문동 /조선향토대백과. 출처 : 아틀라스뉴스(http://www.atlasnews.co.kr)

 
조선이 건국되면서 고려왕실 사람들을 죽였다는 이야기는

여러 가지 전설처럼 전해오는 버전이 있지만

죽인 사실 자체는 팩트로 보인다. 

그렇다면 몇 명이나 죽인 것일까. 

비슷한 오백년 사직을 유지한 조선시대 말 

왕실 후손 숫자를 보면 어마무시한 숫자인지라, 

그렇다면 조선이 건국한 후 왕씨 후손을 수십 만을 죽인 것일까. 

그런데 이에 대해 조사한 몇몇 자료를 보면

대체로 100명에서 150명 사이라는데 어느 정도 의견이 모이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정도 숫자만 죽여도 고려왕실의 날개는 충분히 꺾을 수 있는 정도였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고려왕실의 경우, 서자를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 

조선왕실의 경우, 선원계보에 수록된 왕으로부터 갈려 나와 4대까지는 

서자에 서자에 서자에 서자라도 

그 후손은 차별없는 적자 사족과 같은 대접을 받았다. 

실제로 서자에 서자에 서자였던 왕실 후손이 

선원록에서 나간 후 문과 급제자를 대대로 내고 최정상급 사족으로 잘만 활동한 경우가 많다. 

그에 반해 고려왕실의 경우 왕의 아들이라 하더라도 

서자의 경우 머리를 깎아 중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고, 

전혀 종실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기록이 많다. 

실제로 이 풍습은 조선 전기에도 영향을 주어, 

태종이 처음 자신의 서녀를 반가에 시집 보내려 했을 때, 

아무리 왕의 씨라도 어떻게 서녀와 결혼을 하냐 라고 불평한 사족 하나를

태종이 작살을 내버린 후부터, 왕의 자손 4대까지는 서자건 적자건 그 안에 대접은 달랐지만, 

감히 사족들이 그 출신이 서족이라는 것을 시비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으니, 

이처럼 조선의 종친들 사이에 서족도 모두 어엿한 사족으로 독립할 수 있게 했던 것이 

조선 후기에 이르러 전주이씨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번성할수 있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또 하나 차이점은, 

고려 왕실의 경우 조선왕실처럼 체계적으로 왕실 계보를 관리한 것 같지가 않다. 

체계적으로 관리를 하는 계보가 없다는 이야기는 

곧 왕실 후손이 몇 대 지나면 잊힌다는 이야기와 같다. 

조선이 경우, 태조 이전 조선 건국 이전의 친족까지도 

모두 선원계보에서 관리하여 왕에게서 갈려 나간 후손은 적자 서자는 물론 

서녀의 후손까지도 모두 계보에서 적어둔 바,

이처럼 체계적인 족보의 관리는 우리나라 그 어떤 씨족에서도 따라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겠다. 

바로 이런 두 가지가 결정적으로, 고려는 망할 때 겨우 100-150명만 죽여 없애면 나라가 망해도 들고 일어날 종친 하나 없는 상황이었지만, 

조선은 조선시대 말이 되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후손이 번성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이 확립된 것은 결국 태종의 결단에 의한 것이라 하겠으니, 

전주이씨 후손들은 마땅히 태종에게 큰 절 한 번 올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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