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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으로 들이받아 와병하신 모아이석상

taeshik.kim 2020. 3. 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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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이스터섬 모아이 석상, 트럭에 들이받혀 '와르르'

송고시간2020-03-06 06:48

고미혜 기자

지역 원주민들 "헤아릴 수 없는 손해…차량 통행 등 규제해야"


모아이 석상. 위키피디아 영문판에서


이스터섬에 야시꾸레 모아이석상이라 이름하는 자가 떼로 몰려 이국 풍경을 연출하며, 그것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가 어딘가에도 등재되어 있다는 사실쯤은 어렴풋이 알지만, 내가 가서 본 적이 없기에 언제나 이스터와 모아이는 나한테는 이그조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뭘 봐야 아까비라도 외칠 터인데, 도무지 저짝에는 나 죽기 전에 갈 날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암튼 이 기사를 접하면서 한 가지가 대뜸 놀라는데, 제목에 '칠레 이스터섬'이라 해서 칠레? 그 섬이 칠레령이던가? 하는 데서 첫번째 의아함이 일었고 본문을 읽어보니 이 섬이 칠레 본토에서는 물경 3천500㎞가량이나 떨어진 곳에 있다는 것이다. 이스터섬이 남태평양 어디인가는 들은 듯한데 그리하여 이 참에 구글로 함 찾아보기로 했다. 




여기란다...젠장...눈깔 씨가리만한가 보다. 저 드넓은 남동태평양 한가운데 섬이라니? 



이 시퍼러둥둥 한가운데 뽀두락지처럼 솟았나보다. 뵈지도 않는다. 



구글 위성으로 땡겨보니 이렇다. 이게 대체 어떤 힘으로 바다에서 솟았는지 신이할 뿐이다. 


위키피디아에서 이스터 아일랜드 Easter Island 항목을 찾아보니, 면적이 이렇단다. 


163.6㎢ (63.2 sq mi)


인구는 2017년 센서스 census 기준으로 7천750명, 만명이 안 된다. 이 전체 인구 중 45%인 3천512명이 원주민인 라파 누이 Rapa Nui 라 하니, 나머지 55%가 외지인인 셈이다. 인구 기준으로 보면 대략 1만명 수준인 울릉도보다 적다. 


이 섬 크기...요게 얼마 만할까? 한국에 있는 섬들과 비교하면 더 상대적 크기가 확 와 닿을 것이다. 


대빵인 제주도가 1천809만㎢이니, 제주도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9등 울릉도가 92.9㎢라, 이보다 대략 두 배 크기다. 6등 안면도가 105.4㎢이니 한반도 부속섬 중에서는 이와 가장 비슷하다. 


모아이 석상. 위키피디아 영문판에서



요샌 하도 남들 안찾아가는 곳들을 찾아다니는 시대라, 이곳을 다녀왔다는 사람도 제법 눈에 띈다. 어떤 경로로 들어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암튼 희한한 사람들이다. 김병만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아마존이니 이런 데 가서 헤집고 다니다가 대왕조개 잡아먹고 사고도 치니 말이다. 


이스터섬....이거 말할 것도 없이 서양놈들 야수교 명명법이다. 글자 그대로는 부활절 섬이다. 예수랑 뭐랑 관계가 있다고 이런 이름을 붙인단 말인가? 암튼 이 섬을 원주민들은 라파 누이 Rapa Nui라 한다는데, 스페인어로는 이슬라 데 파스콰 Isla de Pascua라 부른단다. 뭐 그렇다니깐 따지지 마라. 


오세아니아 폴리네시아 트라이앵글 the Polynesian Triangle in Oceania. 중에서는 남동쪽 끄터머리를 이룬다는데, 라파누이 원주민이 세운 현존하는 약 1천 점에 달하는 석조기념물인 모아이 moai로 유명하다. 모아이란 무엇인가? 돌하루방이라 생각하면 된다. 이 모아이상에 힘입어 1995년에는 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섬 대부분은 라파누이 국립공원 Rapa Nui National Park 구역에 속한다. 


이 섬에 언제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대략 서기 1200년 무렵에 그러기 시작했다는데 증거는 없다. 


히딩크 형 Jacob Roggeveen.



고립된 삶을 살던 이 지역사회에 변화가 불어닥친 것은 1722년이다. 이해 4월 5일, 네덜란드 탐험가 야콥 로헤베인 Jacob Roggeveen(1659~1729)이라는 양코배기가 이 섬에 닿은 것이다. 그는 다 늙은 62세 때인 1721년 8월 1일, 배 3척을 몰고는 테라 아우스트랄리스 Terra Australis (남쪽의 땅) 이라는 새로운 대륙을 찾겠다고 나서 포클랜드 제도에 기하고는 계속 배를 몰라 르 메이어 해협을 통과하고 남위 60도 지점까지 남하해 태평양으로 들어갔다. 


칠레 발디비아 근처를 지나 후안 페르난데스 제도에 이르러 1722년 2월 24일부터 3월 17일까지 머문 그는 서쪽으로 계속 배를 몰다가 1722년 4월 5일 부활절에 Rapa Nui 를 찾아내고는 시건방지게 이곳에다가 지 맘대로 부활점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암튼 이리 해서 남태평양 이곳저곳 떠돌며 잘 먹고 댕기다가 1723년 네덜란드로 귀국했다. 히딩크 대선배였다. 


로헤베인 도착 당시 대략 2~3천 명으로 추산된 원주민은 유럽인들이 옮긴 전염병과 노예무역에 따라 급갑하기 시작해 1877년 남은 원주민은 111명이 지나지 않았다. 


모아이 석상을 조사하는 Jacob Roggeveen



그 전에는 어디가 소유권을 주장했는지 내가 모르겠지만, 암튼 1888년, 칠레가 병합해 버리고 만다. 나쁜 쉐이들....


이 이스터섬을 세계로 각인한 상징은 말할 것도 없이 Moai 다. 이 석조상은 대두족이다. 봉준호 송강호 박찬호 싸이 류현진 추신수 이들을 잇는 대두족大頭族 말이다. 암튼 이 모아이들은 한민족과 상통한다. 


Rapa Nui 사람들이 이런 석조각을 집중 조성한 시기는 학계 추정에 의하면 1250~1500년 무렵이라는데, 외부로 반출된 것도 있어, 런던 브리티시 뮤지엄에도 떡 하니 갖다 놓고 자랑질을 해댄다. 이들 조각이 묘사한 대상은 조상이라고 한다. 덩치가 상당한 편인데, 성인 사람 키 두 배 정도는 되는 듯하다. 


이렇게 많은 작품을 어디서 어케 만들어서 운반했을까 하는 점이 언제나 경이를 자아내거니와, 실상 국내에서 고인돌 역시 이런 문에서 이렇게 운반했을 것이라 해서 각종 문화상품으로 팔리고 있으니, 놀랍게도 이 모아이 석상 연구에서 영향 받은 바가 적지 않다. 


이스터섬 풍광



내가 항상 하는 말...우리 눈에 지금 어렵거나 난공불락으로 보여 그렇지, 저것이 일반화한 그때는 보통이었다고 말이다. 


다뉴세문경? 지금 누구도 못 만든다. 만들었다고 뻥치는 사람 내가 보긴 했는데, 새빨간 거짓말이다. 근처에도 못 갔다. 그래서 현재까지 다뉴세문경은 가품, 다시 말해 짜가가 없다. 


그건 그렇고 저리 남태평양 도서문화를 상징하는 저 모아이 석상 중 한 곳을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술을 쳐먹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트럭이 들이받아 붕괴되었다고 한다. 대략 사진을 보니 5점 안팎으로 나란히 섰던 것이 들이받쳐서 붕괴한 모습이다. 


이를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많다. 어쩌다....


From El Mercurio de Valparaiso



뭐 저러니 향후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지 안봐도 뻔하다. 공구리쳐서 차량 돌진을 막는 장치를 해댈 것이다.


한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저들 모아이석상 대부분이 질은 붕괴한 것들을 지금처럼 갖다 세웠다는 사실이다. 


그나저나 이 모아이상은 대한민국에서도 꽤나 유명해서 이런저런 재현품으로 자주 등장하곤 한다. 


아래 사진도 개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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