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이야기

하타모토와 경화사족 (3) 서양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사무라이들

신동훈 識 2026. 5. 2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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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타모토는 원칙상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디자인한 정국 구상에서는)

막부와 쇼군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맞는 일이었다. 

물론 이에야스는 지방을 지배하는 번도 신판, 후다이, 도자마 다이묘로 나누어 

쇼군과의 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지역을 달리하여 배치하여 

막부에 대해 적대적 번은 저 멀리 구석에 쳐박아 두고 요소요소마나 친막부적이며 

절대 쇼군을 배신하지 않을 만한 번들을 배치해 놓았지만 

이런 그랜드 디자인은 그야말로 디자인일 뿐으로 정작 이에야스가 언젠가는 올 것이라 예측한  

도쿠가와 막부판 최후의 전쟁, 아마겟돈이라 할 메이지 신정부와의 보신 전쟁이 시작되자 

막부편을 들어야 할 친위세력들은 도망가기 바빴다. 

그런데-. 

일본의 개항 이전, 메이지유신 이전의 상황을 보면 눈에 띄는 구석이 있으니, 

막부의 사무라이들은 일본으로 밀려 들어오는 서양 세력의 무서움을 잘 알고 

개항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 바로 막부의 입장이라, 

이들은 소극적이나마 개항에 저항하지 않으려 했고 일본의 서구화에도 적극적 입장이었다. 

분명히 이 시점에서 보면 중앙의 하타모토와 시골 사무라이들들 보면, 

개항에 적극적이며 서구의 무서움, 일본의 서구화는 필연이라고 믿는 막부 사무라이들과, 

일본은 존왕양이, 개항은 절대 안 된다고 믿는 시골 사무라이들이 대립하는 형국이었으니, 

메이지유신 이전에 막부를 쓰러뜨리고자 하는 지방의 낭인과 번들이 막부를 공격하는 가장 큰 명분은

막부가 감히 일본을 개항하여 서양 오랑캐들에게 나라를 내주려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달랐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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