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으로 밤을 지샜다는 조선시대

필자도 한국에서 공부로 밥을 먹다 보니,
우리나라의 학문풍토, 그리고 우리 한국인의 공부에 대한 열망 등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필자가 생각컨대, 현대 한국에서 공부와 관련된 의문 중 많은 부분은 그 문제의 기원이 조선시대에 있었던 것이 많았다.
약술해보면-.
1. 한국의 학문 수준:
우리나라는 대학교수에 대한 사회의 평가도 높고,
모든 사람이 전부 향학열에 불타는데도
학문의 수준 자체가 높지를 않다.
왜 그럴까.
이유를 들자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이러한 패턴 자체는 그 기원을 소급하자면 조선시대에 있다고 할 만하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그랬다.
공부로 밤을 새고, 대과는 고사하고 소과만 입격해도 사회적 신분 팔자를 바꿀 정도로 사회적 명망이 높았던 것이 학자들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학문 수준이 높지를 않아서,
조선왕조 오백년 동안 수십만의 사족들이 머리 싸매고 공부했던 것 치고는
이 땅에서 제대로 나온 창의적 성리학 이론 하나 제대로 없다.
요즘 **학, **학 조선시대 학통의 맥을 이었는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에서도 조선시대 선비의 호를 딴 **학이라는 이름이 난무하는바,
이 모든 **학이라는 이름 붙여 놓은 것을 유심히 들여다 보면
백프로 예외없이 중국 북송대 도학자들의 하드카피이다.
이 부분은 필자가 여러 번 썼던 만큼 이 정도만 하겠다. 입만 아프다.
2. 공부하다 말고 정치판에 뛰어드는 풍토:
이거야말로 그 기원이 조선시대 사족들에게 있다.
조선시대 사족들이 그랬다. 자칭 타칭 학자라는 이들도 틈만 나면 출사했던지라,
조선시대 학자는 정치인과 같은 뜻이었다.
조선시대 최대급의 이백 몇십권짜리 문집을 남겼다는 대 학자-.
정치가인지 학자인지 뭔지도 모르겠지만 그가 남긴 목판 인쇄판목이 일만장을 넘기게 남아 있는 거질이라는데
그 문집 받아서 연구한 논문이 해방이후 지금까지 이십편 조금 넘는 정도이다.
앞으로도 거기서 논문 더 나올 까닭은 별로 없다.
왜 그런지는 전공학자분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요즘은 뭐가 그리 다르랴.
그러니 우리나라에 과학분야 노벨상이 없는 것이다. 딴 이유 없다.
3. 못배운 한
이거야말로 조선시대에 그 기원이 있는 바,
조선시대 신분 체계에서 팔자를 고치는 방법은,
배운 집안 출신이란 것 딱 하나였다.
조선시대는 신분 질서가 딱 배운 정도에 비례하여 최정상급 사족에서
향촌 사족, 중인에 평민, 노비까지
정확히 배운 순서대로 줄을 세웠으며,
배운다는 것은 곧 내 팔자가 편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십일세기에도 여전히 설득력 높은 "못배운 한"의 기원은 바로 이런 것으로,
못배운 한은 "학문에의 열정"이라거나,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조선시대에 대과 소과 유학 등등 배운 순서대로 신분 질서가 짜여졌으니 그렇지,
만약 칼쌈으로 신분 질서가 정해지는 판이었으면,
무사가 못된 한이 못배운 한을 대체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못배운 한이야말로 조선시대 시스템의 결과물이다.
우리나라는 아카데미상, 그래미상, 토니상은 받아도,
노벨 과학 분야 상은 이런 풍토가 지속되는 한 앞으로도 받을 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