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한국사를 이해하려면 그 가난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초야잠필 2024. 12. 1.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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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하고 나면 못나고 가난한 부모는 창피해야 하는가. 

필자는 일본사도 솔직하지 못한 점이 많은 역사라 보는데, 

일본의 과거사를 보면 온통 금박으로 분칠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을 항상 받는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유적 복원. 

얼마나 과장이 많은가.

요즘 이를 한국에서도 따라 하는 건지 

한 번도 그렇게 지은 적이 없을 것 같은 모양으로 과거 유적이 호화롭게 복원된다. 

한국은 원래부터 잘살던 문화로 슬쩍 치환하려하고 

그것이 물질적 증거로 입증이 어렵다면

네가 아는 게 없어서 그렇다고 협박한다. 

알면 보인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점을 이렇게 생각한다. 

한국사를 이해하려면 한국사 수천 년을 그 벽두부터 불과 수십년 전까지도 점철하던

그 가난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한다고. 

1960년대까지도 있던 절대빈곤이 

고려시대에는 없었을 것 같은가? 

삼국시대에는 없었을까? 

고조선시대에는 없었을까? 

한국사를 이해하는 한 축으로 빈곤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 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 없이는 

한국사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을 창피하게 생각하고 자꾸 분식하려 하는 한 

우리는 한국사 진실의 땅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이 한국사를 규정하는 한 원인인 가난에 대한 깊은 숙고가 없다는 것은  

지금 우리는 우리가 왜 잘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그 원인을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이 원인을 정확히 모른다는 것은 

다시 가난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했던 것을 가난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런 사학은 없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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