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의 이해에 방해가 되는 족보의 세계관

우리는 누구나 우리 가족의 역사는 족보만 보면 다 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족보가 대부분 휘황찬란한 벼슬아치나 왕족의 후예라고 되어 있는 탓에
나와 우리 가족은 그런 고관대작이나 왕족의 몰락 후손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에 보면 자랑스러운 우리 집안의 후손을 강조하는 글이 많은데
필자가 유심히 이를 들여다 보면 어떤 대단한 근거가 있는 이야기들도 아니고
대략 족보에 있는 글들을 순진하게 믿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그렇게 사실이건 아니건 뻥이라도 가족사를 그렇게 가지고 간다는 것이 무에 그리 잘못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는데
대부분이 이렇게 가족사를 이해하고
또 그 가족사가 모여 우리 집안의 역사, 나아가서는 나라의 역사를 이해하다 보니
이것이 한국사 전반의 이해에 크게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족보만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조선후기에 노비가 없어야 정상이다.
양반도 무수히 많을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족보보다 훨씬 조선후기의 현실을 증언하는 호적을 보면
우리나라는 18세기 중반까지도 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노비였고
이들은 성도 쓰지 않고 대충 붙인 이름밖에 없었다.
18세기 중반 그러면 아주 먼 옛날 같지만
불과 250년도 안된 이전 시기의 이야기이다.
이 노비는 다 해방되지도 않고 그 수가 많이 줄기는 했지만
19세기 중반까지도 여전히 어떤 양반들은 자기 슬하에 노비 100명씩 거느리고 있는 자들이 드물지 않았다.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다.
이런 상황이었다면, 도대체 어떻게 19세기 중반 이후 구한말까지,
소위 말하는 "한국사람"들이 나라의 정세와 변화에 대해 단일한 "민중의 의견"
혹은 "농민의 의견"을 낼 수 있었겠는가.
구한말 한국 사람들은 그때까지 각각의 가족들이 걸어온 궤적을 볼 때
절대로 동일한 입장을 낼 수도 없었고
동일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이들이 구한말까지 걸어온 서로 다른 행로가 그러했던 것이다.
우리는 21세기 초반,
족보까지도 거의 비슷한 "왕족"과 "귀족", "사대부"후손의 족보를 들고,
그런 시각에서 구한말, 그리고 조선시대를 본다.
18세기 중엽도 족보를 보자면 당시 조선에는 노비가 하나도 없어야 정상이니,
그런 세계관이 확충한 것이 이미 숙종 때에 자본주의 맹아가 싹텄다는 시각이 되는 것이다.
앞에서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당시 조선은 그런 자본주의 맹아, 시장경제가 싹틀 상황이 아니었다.
집집마다 노비가 수십 수백 심지어는 천 명씩 되는 노비 소유주가 즐비한 나라에서
도대체 어떻게 자본주의 맹아, 시장경제가 작동할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우리가 족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한국사와는 전혀 무관한 것 같지만,
이처럼 한국근세사를 정확히 보는데 있어 족보의 세계관은 상당히 방해가 된다.
게다가 맞는지 틀리는지도 모르는 그런 족보를 지키기 위해서
조금만 냉정한 평가가 내리기만 하면 우리 집안에 대한 모독이라고 발끈해 일어나는 문중을 보면
딱할 지경이다.
내가 누차 이야기 하지만,
아무리 잘난 집안도 그 후손 절반은 서자로 금고에 묶여 있었던 것이 조선후기였다.
한국인은 족보가 매우 중요해서 이를 이해하는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들을 하지만,
그 이야기 자체도 현대에 만들어진 신화로,
집집마다 대동보 한질씩 갖추게 된 시기는 우리나라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