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전면적 도작 농경 사회가 아니다
한국은 기후나 위도로 볼 때
도작농경이 전면적으로 이루어진 지역이 아니다.
정확히는 도작과 잡곡이 혼재되어 존재한
혼합농경지역으로
중국에서는 황하유역과 양자강 사이 지역 정도에 해당한다.
물론 이것도 한반도나 그렇다는 것이고
더 북상하여 한반도 북부의 북쪽을 상회하면
그나마 있던 도작도 사라지고 완전한 잡곡문명지대가 펼쳐진다.
이것이 고구려, 부여 문명이다.
순수한 도작 문명에 더 근접한 사회는
한반도에서 도작을 받아간 일본이다.
여기는 잡곡보다 도작이 중심이 되어
논의 비율도 우리보다 높았다고 생각된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한반도 남부지역 논 비율이 대략 30-40퍼센트 정도로서
밭의 비율이 한반도 전역에서 매우 높았다.
이 정도라면 순수도작사회라고 보기 어렵고
중국의 예를 보자면 혼합농경사회다.
한반도에서 밭이 논으로 대폭 바뀐 시대는
17세기 이후에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김동진 선생)
실제로 밭을 논으로 대폭 바꾼 시대는 일제시대로
이 시대를 거치면서 논이 농촌지역에 가득 펼쳐진 지금의 농촌 풍경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조선시대 이전 사회는
도작사회가 아니라 혼합농경사회이며
한반도 북부 이북은 아예 도작이 없는 잡곡농경사회인데
우리는 이 사회에 대한 분석이 너무 준비가 안 되어 있다.
왜 그럴까?
전통 한국 농촌사회를 보는 우리의 눈이
도작사회를 분석하는 데서 자라난 일본 농업사의 시각에서
조망하는데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밭과 잡곡농경은
벼농사의 보조적인 부분이 아니라
장기간 동안 한반도에서는 벼와 함께 농촌사회를 지탱하는 두 개 기둥 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겠다.
잡곡의 힘은 한국사회에서 그만큼 막대했다 하겠다.
*** previous article ***
야요이 정착촌의 논과 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