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한국은 전면적 도작 농경 사회가 아니다

초야잠필 2024. 5. 2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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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기후나 위도로 볼 때 
도작농경이 전면적으로 이루어진 지역이 아니다. 

정확히는 도작과 잡곡이 혼재되어 존재한 

혼합농경지역으로 

중국에서는 황하유역과 양자강 사이 지역 정도에 해당한다. 

물론 이것도 한반도나 그렇다는 것이고 

더 북상하여 한반도 북부의 북쪽을 상회하면

그나마 있던 도작도 사라지고 완전한 잡곡문명지대가 펼쳐진다. 

이것이 고구려, 부여 문명이다. 

순수한 도작 문명에 더 근접한 사회는

한반도에서 도작을 받아간 일본이다. 

여기는 잡곡보다 도작이 중심이 되어 

논의 비율도 우리보다 높았다고 생각된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한반도 남부지역 논 비율이 대략 30-40퍼센트 정도로서 

밭의 비율이 한반도 전역에서 매우 높았다. 

이 정도라면 순수도작사회라고 보기 어렵고 

중국의 예를 보자면 혼합농경사회다. 




한반도에서 밭이 논으로 대폭 바뀐 시대는 

17세기 이후에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김동진 선생)

실제로 밭을 논으로 대폭 바꾼 시대는 일제시대로 

이 시대를 거치면서 논이 농촌지역에 가득 펼쳐진 지금의 농촌 풍경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조선시대 이전 사회는 

도작사회가 아니라 혼합농경사회이며 

한반도 북부 이북은 아예 도작이 없는 잡곡농경사회인데

우리는 이 사회에 대한 분석이 너무 준비가 안 되어 있다. 

왜 그럴까? 

전통 한국 농촌사회를 보는 우리의 눈이

도작사회를 분석하는 데서 자라난 일본 농업사의 시각에서 

조망하는데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밭과 잡곡농경은

벼농사의 보조적인 부분이 아니라 
장기간 동안 한반도에서는 벼와 함께 농촌사회를 지탱하는 두 개 기둥 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겠다. 

잡곡의 힘은 한국사회에서 그만큼 막대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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