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과 검안 서류... 그 안맞는 부분

조선시대 후기의 호적과
조선시대 살인사건의 조사 서류인 검안 시장 등 문서를 보면
비슷한 듯 비슷하지 않은 부분이 보인다.
호적으로만 다 알 수 없는 향촌사회 모습이
조선시대 검안 서류에서 볼 수 있다 할 것이다.
우선 호적에서는 19세기 중반이 되면 온 마을에 유학, 한량 천지다.
유학 한량이라는 직역이 18세기 중후반 까지만 해도 얼마나 얻기 어려운 직역이었는가 생각하면
매우 이례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한 집 건너 한집씩 유학, 한량이 존재하고
심지어는 글도 못 읽고 부모 이름도 모르는 이도 한량으로 직역이 등재될 판이니,
호적상으로는 이미 조선은 더 이상 신분제 사회가 아니지 않나 의심할 수준이다.
그런데, 검안 서류에서 피의자를 취조한 내역에서 전하는 당시 사회상을 보면
이것과는 약간 다른듯 같은듯 하는 부분이 있다.
검안 서류에서 취조한 이야기들을 보면
향촌사회에는 여전히 양반과 평민의 구분이 있다.
호적이라는 것이 당시 향촌 사회에 남아 있던 질서와는 좀 더 진보적인 모습이 아니었나 느끼는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막상 재산 문제라던가 산송이라던가 이해 관계가 걸리게 되면,
양반이고 나발이고 없다.
평민들도 양반을 쳐받는다.
처음 관가에 끌려가 취조 시작될 때나 양반 평민이지
송사가 길어져 복잡하게 되면 양반이고 나발이고 없다.
호적에서 볼 수 있는 당시 조선사회와 비슷한듯 아닌듯 한 장면이라 할 것이다.
호적의 기재를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당시 사회상 그대로는 아니라는 뜻이다.
필자는 호적과 검안 서류 양쪽이 모두 당시 사회의 실상의 한 단면씩을 보여주는 것으로
어느 한 쪽을 기반으로 다른 쪽을 무시할 수는 없겠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