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구파는 무능하고 불공정했는가

필자는 그 이름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림이 대두되기 이전 조선을 주무르던 사족들
지금 훈구파로 부르는 이들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사림의 시각으로 이들을 바라보니 그렇지,
훈구파에 속한 사족들 중 유능한 이들에 대한 실록의 평의 보면 하나같이 비판조가 아닌 것이 없다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서거정 같은 이는 정말 유능한 인물로
필자가 보기엔 사림에 속한 사류 중에는 따라갈 만한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의 인물인데도,
사림들 평은 영 좋지 않다. 그가 사림과는 맥이 닿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는 국초 사족 중에는 유능한 이가 무척 많다.
사림들이 이야기하듯이 이들은 엉터리 사족도 아니고,
주자학에 대한 이해도 사림들보다 낮았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솔직히 수준으로 본다면 사림들의 주자학에 대한 이해도 그렇게 높지 않아서
주자 사서집주에 나와 있는 논의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를 가지고 논쟁이 붙는 수준이라
결코 대단한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훈구파, 하면 자기들끼리 혼맥을 맺고 부당한 방법으로 관직을 독점한다는 뉘앙스가 있지만
자기들끼리 혼맥을 맺는 건 사림이라는 이들도 마찬가지였고,
아는 놈만 끌어다 급제시키는 것은 조광조의 현량과 급제자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겠다.
결국 국초의 훈구파와 성종 이후 대두한 사림파에 대한 이해는
전적으로 사림파의 주장일뿐인 것으로,
훈구파에 대한 이해 자체를 좀 더 치밀하게 다시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부분도 있는 것 아닌가.
지금 사림파의 대두와 관련하여, 우리 학계에는 두 가지 사림들의 주장을 곧이 곧대로 들어
무비판적으로 따라가고 있다.
첫째는 정몽주에서 길재,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로 이어져 내려온 소위 사림의 도통에 대한 인식이다.
이 도통은 사림들이 어거지로 주장한 부분이 많다.
정몽주, 길재까지야 그렇다고 해도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은
도대체 조선의 도통을 이었다고 주장할 만한 사람들인지 의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이들이 도대체 무엇을 했관대 조선 초기 사족들을 전부 무시하고 도통을 이었다고 현창할 수 있다는 것인가?
두 번째는 사림들이 우리나라 성리학의 이해의 수준을 높였다고 하는 주장이다.
도대체 성리학의 이해를 높였다고 하지만, 그것이 도통 운운할 수준이었는지는 또 별개 이야기 아니겠는가.
중국의 경우 성리학을 사실상 세우다시피한 정호 정이 형제도 문묘에 종사하기까지 무려 20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사림들이 주장하는 동방 사현, 혹은 동방 오현은
도대체 뭘 했기에 죽자 말자 문묘 배향을 해야 했다는 것인가?
이 문묘배향 과정에 대해 너무 무비판적으로 사림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는 생각이다.
훈구파가 사림을 질시하여 동방사현 혹은 오현의 문묘 종사를 거부했다는 것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데
정말 그런가?
듣보잡인 건 사실이고, 문묘 종사할 수준 운운하기에는 너무 빠른 것 아닌가?
문묘종사를 거부한 이들의 주장이 오히려 타당한 것 아니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