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진 중 똥을 싸는 말! 북제北齐 루예 묘娄叡墓 벽화의 경우

이는 중국 산서성 태원시太原市에서 발굴된 북제北齐시대 고관대작 루예娄叡라는 사람 무덤 내부 중에서도 동쪽 벽면을 장식한 안마유기도鞍马游骑图라는 프레스코화 전체 장면이라
주인공 루예娄叡는 태어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570년에 사망했다는 정보가 확인된다.
북제 조정에서는 출세를 거듭해 무성제武成帝 하청河清 원년, 562년에는 사도司徒가 되고, 하청 3년, 564년에는 태위太尉가 되었으며, 천통天统 2년, 566년에는 대사마大司马가 다시 되고, 그 이듬해 천통 3년에는 태부太傅가 되었다가 무평武平 원년 2월 5일에 거세去世하니 우승상右丞相 겸 삭주자사朔州刺史가 추증되고 무공왕武恭王이라는 시호가 주어졌다.
이런 그가 묻힌 무덤이니 오죽이나 화려하겠는가?
무덤은 온통 저와 같은 벽화라 안마유기도鞍马游骑图 또한 그것을 장식한 하나라, 저 동쪽 벽면 기마행렬도만 해도 길이 3.25미터, 두께 1.64미터에 달한다.
세부 몇 장면을 본다.

자세히 살피면 어째 좀 띨띨한 듯한 표정이다.

말 궁둥이를 봐 주기 바란다. 똥을 싸는 중이다.

좀 더 자세히 보면 이렇다.
말은 개와는 달라서 대소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저때 말이라고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가려서 쌌겠는가? 나오는 대로 싸질러 댔을 뿐이다.
이 문제 심각하다.
저 말똥이 놓인 지점에 말똥가리가 자라기 마련이다.

등자 곧 발걸이가 보인다.
기마 역사에서 등자는 알려지기로는 선비족인가 발명품이다.
북제는 그 직접 후손이니 당연히, 그리고 이 시대에는 등자가 보편화했으니 있음이 당연하지만 이게 수백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그렇지를 아니해서 등자가 없었다.

저 등자가 들어간 부분 전체를 보면 앞과 같다. 룰루랄라!

두 사람은 아마 행렬을 인도하는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벽화들은 발굴 뒤 보존문제로 현장에 두지 못하고 다 떼서 산서박물원으로 옮겼다.
근자 이것이 어느 박물관으로 출타해 전시를 한다는 소식을 본 듯한데, 혹 이 작품을 보려가려는 사람들은 일정 참고하셨음 싶다.
그건 그렇고 굳이 저 똥 싸게 장면을 화가가 그려넣은 이유는 뭘까?
벽화 의뢰 측에서 공사 대금 제대로 안줘서?
저런 장면이 하도 인상적이었기에 굳이 그려넣지 않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