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조가 유명한 양반이면 우리 집은 명문?
정말로 10대조가 유명한 양반이었다고 해도
그 후의 10대가 어떻게 내려오느냐에 따라
제대로 된 양반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는,
조상 중에 한명이라도 서얼이 나오면
그 아래로는 죄다 금고로 묶였다.
이렇게 서얼집안이 되어버리면
6-7대씩 내려가도 여전히 적자의 후손과 비교하면
그 직역이 차이가 있는 것을 호적에서 볼 수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당신의 조상 10대조가 유명한 선비라는 것이
당신이 곧 양반 후손이라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중간에 한 명이라도 서얼 조상이 섞여 버리면
그 후부터는 대대로 서얼로 묶여 금고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사실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당시의 호적을 확인하는 방법 외에는 없는데
다행스러운 일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조선시대 호적은 대부분 사라져
18-19세기의 유학 모칭은 대부분 완전범죄로 끝나게 되었다.
요즘도 몇대 조가 누구, 몇대 조가 누구,
이렇게 명문가 코스프레를 하는 경우를 보지만
실상은 정말 그런지는 알 수 없다가 정답이다.
생각해 보면,
적자와 서자가 1대 1의 비율로만 있었다고 해도
중간에 서자 조상이 한 명만 섞여 들어오면 제대로 된 양반에서 탈락해버린다고 하면,
조선시대에 제대로 된 양반은 얼마나 있었을까?
18세기 초반까지도 우리나라 양반 숫자는 10프로가 안 되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이처럼 양반 지위를 유지하는 데 있어
같은 핏줄끼리도 차별하는 전통이 매우 강고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양반의 자손을 적자 서자 차별이 없었다면
18세기 초반에도 양반 비율이 10프로가 안 될 리가 없다는 뜻이다.
제 아무리 대단한 조상의 후예라도
중간에 한 명만 서자 조상이 들어오면
그 집안은 출세의 상한선이 딱 정해져
중인을 전락해 버리는 것이 조선의 시스템이라,
명문의 후예란 정말 그런지
잘 살펴봐야 맞다는 말이 정답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