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0년 된 점토 용기, 서남아시아 도기 등장 전야?

튀르키예 남동부 쳄카회위크Çemka Höyük에서 출토된 저온 소성 점토 용기 조각들이 서남아시아 도기 제작의 시작에 대한 고고학적 이해를 바꾸고 있다.
이 발견은 저 지역 도기 제작 기술이 기원전 7천년 무렵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점토, 불, 건축물, 그리고 일상생활을 활용한 지역적 실험을 통해 발전했음을 시사한다.
Antiquity에 발표된 이 연구는 마르딘 지역Mardin Province에 위치한 선토기 신석기 유적Pre-Pottery Neolithic site인 쳄카회위크에서 출토된 점토 조각들을 분석했다.
에르굴 코다쉬(Ergül Kodaş), 나탈리아 페트로바(Natalia Petrova), 마리아 다그메흐치(Maria Daghmehchi), 라나 외즈발(Rana Özbal)이 수행한 이 연구는 도기가 이 지역 전역에 보편화하기 훨씬 이전인 약 12,000년 전에 도기 혁신의 초기 단계가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티그리스 강 상류의 초기 신석기 정착지
쳄카 회위크는 튀르키예 남동부 티그리스 강 상류 지역 마르딘 지역에 위치한다.
이 유적은 일리수 댐Ilısu Dam 건설 사업과 관련된 도로 건설로 훼손되어 북쪽과 남쪽으로 나뉘게 되었고, 이후 긴급 발굴 조사를 통해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러한 훼손에도 드러난 단면들은 고고학자들에게 정착지의 오랜 변천사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를 제공했다.
발굴 결과, 기원전 10,800년에서 9,600년 사이의 원시 신석기 또는 후기 구석기 시대와 기원전 9,600년에서 8,700년 사이 선토기 신석기 A층, 이렇게 두 가지 주요 시대가 확인되었다.
이 두 시대에서 연구자들은 총 여덟 개 건축층을 발견했다.
이러한 사실은 쳄카 회위크가 단순히 특이한 점토 조각이 발견된 유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곳은 초기 형태의 주거에서 더 견고한 건축물과 더욱 복잡한 물질문화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물이다.

원형 오두막에서 움집으로
쳄카의 건축 양식은 정착 생활의 점진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가장 초기 층에서는 원형 구조물, 아마도 천막 형태 거주지 흔적이 발견된다.
후기에는 원형 또는 타원형 지하 및 반 지하 건물이 나타나는데, 일부는 내부 칸막이가 있고 더 견고한 석조 구조를 했다.
5층과 6층에 이르러서는 방사형 칸막이가 있는 반 지하 움집이 존재했다.
2층에서는 지름이 약 10미터에 달하는 대형 원형 구조물이 등장했으며, 초기 소성 점토 조각은 이곳에서 발견되었다.
점토는 이미 쳄카 건축의 중요한 요소였다.
연구진은 여러 층의 석조 벽에 점토 코팅이 된 모습을 확인했으며, 2층에서는 진흙 벽돌까지 발견했다.
이는 쳄카 공동체가 점토를 갑자기 발견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하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들은 점토를 건축 자재로 사용하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 후에야 용기 제작 기술로 실험하기 시작했다.
46개의 조각, 9개의 용기 가능성
가장 주목할 만한 증거는 아마도 서로 다른 9개 용기 또는 점토 기반 물체에 속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46개 저온 소성 점토 조각이다.
이 조각들은 기원전 1만년 전반기, 즉 기원전 9350년 무렵으로 추정되는 2층 건물에서 발굴되었다.
조각들은 모두 동일하지 않았다.
어떤 것은 점토 용기 일부로 보이고, 어떤 것은 유기물 위에 덧씌운 점토일 수도 있다.
특이한 조각 하나는 돌, 나무 또는 다른 유기물과 같은 다른 재료로 만든 용기에 덧붙인 점토 부분일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다양성은 이 연구의 가장 중요한 장점 중 하나다.
쳄카 유적은 후기 신석기 시대의 완성된 도기 전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험의 장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점토를 다양한 형태, 다양한 혼합물,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하려고 시도했다.

우발적 소각이 아님
핵심 질문은 점토 조각들이 의도적으로 소성된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불에 노출된 것인지 여부다.
본 연구는 증거가 의도적인 소성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한다.
현미경 및 다중 분광 분석 결과 점토의 광물 변화가 나타났다.
소성된 시료는 유적에서 발견된 소성되지 않은 점토와 차이가 있다.
색 변화, 검은색 중심부, 붉은색으로 산화된 표면, 그리고 광물 변화는 일반적으로 600~700°C 정도의 저온 소성을 시사한다.
소성 과정은 표준화하지 않았다.
소성이 불완전했고 온도도 비교적 낮았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점이 이번 발견을 중요하게 만든다.
이는 산업용 도기가 아닌 초기 실험 결과물이다.
이 유물들은 점토를 혼합하고, 모양을 만들고, 제어된 열에 노출시켰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배우고 있던 공동체 모습을 보여준다.
유기물 첨가와 초기 기술 지식
일부 파편에는 식물 잔해가 의도적으로 점토에 섞여 있었다. 몇몇 샘플에서는 미세한 흔적인 배설물 구형체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동물 배설물이 유기물 첨가물로 사용되었음을 나타낸다.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유기물 첨가는 건조 및 소성 과정에서 점토의 성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식물이나 배설물이 타면서 용기 벽 내부에 통로와 기공이 생겼다.
이러한 다공성은 무게, 강도 및 단열 성능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이 용기들은 종종 판형 기법slab-building techniques으로 제작되었다.
즉, 단순히 점토 덩어리를 눌러 모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점토를 층층이 또는 부분적으로 쌓아 올려 형태를 만들었다.
어떤 표면은 손으로 매끄럽게 다듬었지만, 다른 표면에는 거친 코팅이나 제작 흔적이 남아 있다.
이러한 특징은 유물에 인간적인 면모를 부여한다. 이 유물들은 단순히 익명의 진흙 조각이 아니다.
점토에 무엇을 섞을지, 벽의 두께는 얼마나 할지, 몸체는 어떻게 만들지, 얼마나 많은 열을 가할지 등 제작자의 결정이 담겨 있다.

오래된 재료와 새로운 기술의 연결고리
쳄카에서 발견된 가장 흥미로운 유물 중 하나는 일반적인 의미의 용기가 아닐 수도 있다.
이 연구는 다른 재료로 만든 용기에 부착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점토 첨가제에 대해 설명한다.
이 첨가제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아마도 실을 꿰거나 고정하기 위한 용도였을 것이며, 돌이나 유기물로 만든 용기의 용량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세부 사항은 도기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과도기적 단계를 시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완전히 독립적인 도기 용기를 만들기 전에는 점토를 이용해 기존 기술을 변형했을 가능성이 있다.
돌로 만든 그릇, 나무로 만든 물건, 또는 유기물로 만든 용기에 구운 점토를 덧붙였을 수 있다.
유기물에 점토를 코팅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조각들은 일반적으로 고고학적으로 보존되지 않는 재료를 보호하거나, 강화하거나, 내열성을 확보하려는 시도였을 수 있다.
도기는 완전한 형태로 발명된 것이라기보다는 이러한 실용적인 실험에서 발전했을 가능성이 있다.
도기 시대 이전의 신석기 시대
서남아시아에서 도기는 기원전 7천년경에 널리 보급되었다.
쳄카 유적 유물은 그보다 훨씬 더 이른 시기에 속한다.
저자들은 이 유물들을 해당 지역에서 알려진 가장 초기의 도기 또는 구운 점토 용기 기술 사례로 분류한다.
이 유적은 또한 더 넓은 맥락 일부다. 초기 점토 및 도기류는 차이외뉘Çayönü, 네발리 초리Nevali Çori, 본추클루 회위크Boncuklu Höyük, 데미르쾨이Demirköy, 간지다레Ganj Dareh, 예리코Jericho, 무레이베트Mureybet, 베이다Beidha와 같은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쳄카 회위크 유적은 터키 남동부에서 발견된 중요한 초기 도기 유물로서, 저온 소성으로 실험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용기의 흔적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는 미묘하지만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다.
도기는 단 한순간에 탄생한 것이 아니다. 다양한 공동체에서 반복적인 시도를 통해, 지역의 필요, 이용 가능한 재료, 그리고 기존의 생활습관에 따라 형성되었다.

점토, 불, 그리고 변화하는 삶의 방식
쳄카 회위크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건축, 식량 저장, 난방, 요리, 그리고 사회적 관습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정착지는 변화하고 있었다. 건축물은 점점 더 견고해졌고, 벽과 구조물에 점토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람들은 같은 재료로 용기를 담거나, 덮거나, 확장하거나, 변형할 수 있는지 실험하기 시작했다.
이 연구는 쳄카가 세계 최초의 도기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동아시아는 훨씬 더 오래된 도기 전통을 지닌다.
하지만 서남아시아의 경우, 이 연구 결과는 초기 실험적인 단계에 주목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쳄카 회위크는 도기 탄생이 결코 직선적인 과정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깨진 조각들, 낮은 온도에서의 소성, 식물을 섞은 점토, 혼합 용기, 그리고 이미 알고 있던 재료를 새로운 방식으로 시험해 보고자 했던 공동체들을 거쳐 발전한 것이다.
약 12,000년이 지난 지금, 그 거칠게 구운 점토 조각들은 인류 기술의 조용한 전환점 중 하나를 가리킨다.
바로 흙, 물, 불이 그릇이 되기 시작한 순간이다.
Kodaş, E., Petrova, N., Daghmehchi, M., & Özbal, R. (2026). Understanding a first attempt at pottery: early fired containers at Çemka Höyük. Antiquity, 1–19. doi:10.15184/aqy.2026.10371
Cover Image Credit: Kodaş, E., et. al.,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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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동이나 이집트, 혹은 유럽 대륙은 모든 면에서 동시대 다른 지역에 견주어 문명 발달 속도가 빠르다! 이 점에서는 중국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한데 저 도기(멍청이 한국고고학도들은 토기라 부른다)만큼은 동아시아가 훨씬 빠르다.
그러니 저런 모습을 보면 좀 웃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