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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로마 요새에서 발견된 1,600년 된 지갑으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5. 9.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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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04 무덤에서 발견된 네 개 동전 중 Trajanic bronze sestertius. 출처: Flückiger A 외, 2026


처음에는 흙덩이, 부식된 금속, 광물로 변한 직물 덩어리처럼 보였다.

하지만 벨기에 아우덴뷔르흐Oudenburg의 서기 5세기 무덤에서 고고학자들은 훨씬 더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

바로 로마 화폐가 더 이상 충분하지 않게 된 순간을 담고 있을지도 모르는 지갑이다.

A-104 무덤이라 명명한 이 유적은 1960년대 아우덴뷔르흐 해안 요새와 관련된 후기 로마 시대 공동묘지 중 한 곳에서 발견되었다.

최근 재분석 결과, 지갑 안에 들어 있던 작은 물건들이 서기 400년 무렵 청동 주화 유통이 중단된 후 북서유럽 사람들이 어떻게 적응했는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 발견은 일반적인 의미의 보물은 아니다. 반짝이는 금화나 은괴, 전시용으로 놓인 제례용 그릇은 없다.

대신, 그 주머니에는 최소 세 개, 어쩌면 네 개의 청동 동전, 구리 합금 조각, 부싯돌flints, 철제 불쏘시개iron fire striker, 그리고 다른 작은 금속 조각들이 들어 있었다.

현대인 눈에는 그중 일부가 고철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5세기 초 로마 세계 변방에 산 사람에게는 유용하고 휴대하기 좋은 물건이었을 것이다.

변화하는 국경의 로마 요새

아우덴뷔르흐크는 현재 서플랑드르West Flanders 지역인 북해 연안 근처 전략적 모래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로마 시대에 이 지역은 조수 간만의 차가 큰 수로, 염습지, 해안 도로와 가까워 북서부 지방에서 중요한 군사 요충이었다.

이 요새는 2세기 후반에 처음 건설되었고, 3세기에는 석조로 재건되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대에 다시 활성화하고 개보수되어, 영국 해협과 북해를 따라 취약한 도로를 지키는 해안 군사 지대인 색슨 해안Saxon Shore과 관련된 광범위한 방어 체계 일부가 되었다.[잉글랜드는 침공하는 색슨 족 본거지였나?]

그러나 4세기 말과 5세기 초에 이르러 로마의 이 지역 지배력은 불안정해졌다.

군대는 철수했고, 권력 찬탈자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으며, 지역 군사 공동체들은 점차 반자치적인 방식으로 활동했다.

제국의 구조가 약화했다고 해서 아우덴뷔르흐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남아서 적응했고, 로마의 정체성과 새로운 탈로마 시대의 현실을 모두 보여주는 유물들과 함께 시신을 매장했다.

아우덴뷔르흐크, A-104 매장지, 발굴 사진, 디지털화한 투명 필름. 위, 오른쪽: 허리띠와 지갑이 함께 있는 왼쪽 상완골 (플랑드르 문화유산청 기록보관소). 출처: Flückiger A 외, 2026

 
허리띠, 브로치, 지갑과 함께 묻힌 남자

A-104 무덤은 남성 복식과 후기 로마 군사 양식과 관련된 유물들과 함께 묻힌 한 개인의 것이다.

활 브로치crossbow brooch, 장식 허리띠, 칼, 유리 및 도기 그릇, 그리고 지갑이 시신과 함께 묻혔다.

허리띠와 브로치는 특히 중요한데, 이는 매장 시기가 군사적 신분이 여전히 중요한 시대였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무덤은 서기 388년 이후로 추정되는데, 이는 지갑에서 발견된 가장 최근의 동전, 즉 서기 388년에서 402년 사이에 아를에서 주조된 발렌티니아누스 2세의 AE4 청동 동전을 근거로 한다.

다른 부장품들을 통해 이 무덤은 4세기 후반에서 서기 430년 무렵 사이에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지갑 자체는 상징적인 제물로 따로 놓인 것이 아니라 허리띠에 부착된 것으로 보인다.

이 세부 사항은 중요하다.
 

아우덴뷔르흐, A-104번 무덤. 무덤 원본 발굴 도면 포함(플랑드르 문화유산청 소장). (사진: Kris Vandevorst, 구성: Sylvia Mazereel, 모두 플랑드르 문화유산청). (© 플랑드르 문화유산청).

 
이는 지갑 속 내용물이 반드시 장례식을 위해서만 선택된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고인이나 시신을 수습한 사람들이 이미 유용하게 사용하던 물건들을 담고 있었을 수도 있다.

후기 로마 시대 지갑 속 고대 동전

이 동전들은 이번 발견에서 가장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다.

4세기 후반 발렌티누스 황제 시대 동전과 함께 훨씬 더 오래된 로마 동전들이 발견되었다.

이에는 서기 98년에서 117년 무렵에 주조한 트라야누스 시대의 두폰디우스dupondius, 서기 107년에서 110년 무렵에 주조한 트라야누스 시대의 세스테르티우스sestertius, 그리고 서기 138년에 주조한 하드리아누스 시대의 세스테르티우스sestertius가 포함된다.

이는 250년도 더 된 동전들이 로마 제국 통치 말기 북부 갈리아에서 사용되던 지갑에 들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후기 로마 무덤에서 발견된 오래된 동전들은 종종 잔존물이나 외래물로 치부되곤 했다.

그러나 아우덴뷔르흐에서 발견된 동전 지갑은 이러한 가정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 동전들은 흙이 파헤쳐진 곳에서 우연히 발견된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두 개 초기 로마 제국 동전이 지갑에 있었고, 하드리아누스 황제 동전 또한 원래 이 지갑에 들어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수 세기가 지난 오래된 청동 동전을 왜 누군가 가지고 다녔을까?

한 가지 가능성은 기억과 정체성이다.

로마 동전에는 황제 초상이 새겨 있었고, 크기가 큰 청동 동전은 그 초상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로마, 지역, 게르만 문화가 뒤섞인 변경 사회에서 이러한 동전들은 로마 권위에 대한 충성심, 지위 또는 애착을 표현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또 다른 가능성에 더욱 무게를 실어준다.

바로 동전이 금속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졌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A-104 무덤에서 발견된 네 개 동전: 트라야누스 황제 청동 동전 두 개, 하드리아누스 황제 세스테르티우스 한 개, 발렌티누스 황제 AE4 한 개. 출처: 벨기에 왕립 도서관(KBR), 동전 및 메달 컬렉션. 출처: Flückiger A, et al., 2026

 
핵브론즈Hackbronze와 부서진 물건의 가치

이 지갑에는 핵브론즈Hackbronze도 들어 있었다.
핵브론즈는 의도적으로 조각낸 비철금속 물체를 가리키는 용어다.

이것들은 수리를 기다리는 장식용 조각이 아니었다.

조각에는 브로치, 벨트 장식, 그리고 원래 기능을 잃은 다른 구리 합금 물체의 파편들이 포함된다.

많은 파편은 실질적으로 복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서져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파편들이 일반적인 개인 소지품으로 존재했다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원자재로 사용하기 위해, 재용융을 위해, 또는 무게에 따라 교환하기 위해 수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아우덴뷔르흐 지갑이 특히 중요해진다.

서기 400년경, 비금속 주화는 로마 북서부 속주로 정기적으로 공급되지 않게 되었다.

금과 은은 여전히 공식 화폐 체계 일부였지만, 일상적인 소액 거래에는 너무 귀중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물건을 사고팔고, 보상하고, 교환하고, 협상해야 했다.

만약 작은 청동 주화가 더 이상 안정적으로 유통되지 않는다면, 무엇이 그 자리를 대신했을까?

아우덴뷔르흐 유물군은 그 해답 중 하나를 제시할 수 있다.

깨진 청동, 오래된 주화, 그리고 작은 금속 조각들이 공식 주화 액면가보다는 재료의 무게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는 유동적인 경제 활동에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아우덴뷔르흐


연구진은 주화와 금속 조각들 무게를 측정해 놀라운 패턴을 발견했다.

주화만 해도 로마의 무게 단위인 운시아unciae 2개에 거의 근접했다.

주화와 비금속 유물 전체를 합친 무게는 솔리디solidi 14개, 즉 운시아 2개와 솔리디 2개에 매우 가까웠다.

하지만 저자들은 이를 확실한 증거라고 단정짓지는 않는다.

조각 하나가 빠져 있고, 매장 후 변형이 있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패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만약 의도적인 것이라면, 그 지갑에는 단순히 무작위로 흩어진 파편들이 들어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상당한 가치의 청동이 정성스럽게 모여 있었을지도 모른다.
 

후기 로마 시대 아우덴뷔르흐(서기 5세기)와 주변 로마 유적들


로마 이후의 주머니 속 경제

아우덴뷔르흐크 지갑은 역사적 교차점에 놓여 있다.

로마 군사 상징물과 함께 묻힌 한 남자의 것이며 제국 복무, 변경 생활, 그리고 문화적 변혁으로 형성된 요새 공동체의 유물이다.

그러나 지갑 속 내용물은 동전, 금속 조각, 휴대 가능한 물건들이 매장 유적에서 흔히 함께 발견되는 초기 중세 시대를 가리킨다.

그 전환점이야말로 이번 발견의 진정한 힘이다.

이 지갑은 로마 화폐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고 물물교환이 즉시 그 자리를 대체한, 깔끔한 붕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적응 과정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낡은 동전을 재사용했고, 깨진 금속 조각을 가지고 다녔다.

가치를 저울질하고, 화폐 단위를 기억하고, 물건을 재활용하며, 필요에 따라 화폐와 물물교환을 오갔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아우덴뷔르흐 지갑은 가난의 유물이라기보다는 임기응변의 기록이다.

공식적인 소액 화폐 공급이 중단되었을 때, 사회가 어떻게든 교환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냈음을 보여준다.

A-104 무덤의 남자는 자신이 "로마 이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로마 물건들이 여전히 중요하고, 로마 군복이 여전히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로마 동전에 황제 얼굴을 새긴 세상에 살았다.

하지만 그의 지갑 안에서는 이미 옛 체계가 바뀌고 있었다.

낡고 부서진 동전 몇 개와 깨진 청동 조각들은 고고학에서 가장 보기 힘든 것 중 하나를 보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 한 번의 극적인 사건으로 제국이 몰락한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이 조용히 재창조된 과정 말이다.

Flückiger A, Van Thienen V, Vanhoutte S. A Fifth-century Purse Assemblage with Coins and Hackbronze from Oudenburg Reconsidered. Britannia. Published online 2026:1-19. doi:10.1017/S0068113X26100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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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카 느낌이 없지 않은 아티클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참 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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