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

17세기는 18-19세기와 다르다

신동훈 識 2026. 7. 27.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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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듬이질이 70년대 80년대까지 엄존했다.

 

우리나라 조선후기사는 필자가 누차 여기에 썼지만, 

17-19세기를 하나로 뭉뚱그려 대충 얼렁뚱땅 상황을 기술하는데, 

예를 들어 이렇다. 

조선시대 상품화폐경제, 자본주의 맹아 등을 이야기 하면서 17-19세기로 뭉뚱그려 쓰면서

실제 증거는 19세기 것을 들이 미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17세기부터 시작된 것처럼 기술한다. 

필자가 각종 일기를 본 바로는, 

우리나라 17세기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이 시기는 좋게 포장해서 선물경제, 물물교환이 대부분으로

돈이 돌지 않던 시기였다. 

이 시점은 18-19세기와 함께 묶어서는 안된다. 

필자가 보기엔 우리나라 조선후기의 분기, 기점은 17-19세기를 한데 묶어서는 안되고, 

18세기 중반 이후를 따로 뗴서 앞과 분리해서 설명해야 하고, 

그 기점이 이 언저리라는 것을 확실히 이야기해야 한다. 

19세기 일기를 보면 돈이 도는 정황이 여실히 나오고, 

그 돈이 도는 영역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성이나 지방 대도시는 돈이 도는 정황히 여실히 보이니

이 시점은 17세기와 분명히 다르다 할 것이다. 

따라서 주변 국가와 발전추이를 맞추려고 

17세기까지 상품화폐경제를 끌어올리고, 

20세기 초에 나라가 망한 것은 몽땅 다 외세 탓이다, 

이렇게 설명해 가지고는 실제로 일기 호적을 보게 되면

실상과 다르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조선후기는 일제시대 이야기한 것처럼 정체된 상태에서 발전이 없었던 것은 분명히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변 중국 일본과 거의 비슷한 정도의 발전 정도를 보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조선은 식민지가 되기 전에 주변국가와 비교해서 분명히 낙후해 있었고

이런 낙후의 이유는 기본적으로 사회의 변화가 너무 늦은 시점에 시작되었다는데 있었다고 본다. 

18세기 중반 이후 발전속도는 괄목한 것이었지만 

애초에 출발 선이 너무 뒤에 있었다는 뜻이다. 

17세기는 대충 얼렁뚱땅 18-19세기로 갖다 붙여서는 안된다. 

17세기는 유럽으로 치면 중세의 절정기 (high medieval age)이다. 

중세의 해체 징후가 전혀 없던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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