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9세기의 역사를 바라보며
우리나라 조선 후기의 역사는,
17-18세기 근대화의 맹아, 화폐경제, 자본주의의 싹이 자라다가
19세기 들어 삼정문란 등으로 난맥상에 빠지고
구한말 제국주의의 침탈을 입어 자생적인 발전이 분해된 그런 과정이라기 보다,
18세기 후반부터 근대화의 여명이라 할 싹이 보이고
19세기 들어 활발한 사회의 변화가 뒤따랐지만,
주변국보다 너무 늦게 변화가 시작되었고,
이 변화를 능숙히 다룰 만한 역량이 당시 정부가 부족하여
불행히도 식민지에 빠져버린 사례가 될 것이라 본다.
17-18세기에 자본주의가 자라다 19세기에 정체, 혼란에 빠진 것이 아니고,
17-18세기에는 그런 것이 없다가 19세기부터 뭔가 변화가 시작된 참이었다는 말이다.
이런 변화를 추동한 것은 18세기 이후부터 자라 나온
소위 학계에서 "유학 모칭자" 혹은 "양반 모칭자"라고 불리는 사람들로서
이들은 집요하게 족보를 윤색하고, 재산을 불리고,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여
19세기가 되면 향촌 사회를 "유학"으로 가득차게 만들어 버렸다.
아마도 19세기 말이 되면 당시 활동하던 많은 사람들은
모두 이 "유학 모칭자"들의 후손일 것이라 생각하는 바,
불행히도 나라가 망한 뒤 이들 새로 부상하는 근대화의 동력이라 할 만한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20세기 초반을 맞이하게 되었다.
물론 그 중에는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분도 있었겠지만,
모든 이들이 그렇게 활동했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후반의 한국사회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립운동 못지 않게 식민지 조선에 벌어진
그들 활동의 흐름도 우리가 따라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21세기의 한국이라는 나라를 만드는 데 있어
이들의 20세기 활동은 독립운동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