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

18-19세기 "향촌중인"과 현대 한국의 중산층

신동훈 識 2025. 9. 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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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인은 

우리나라가 빈부차가 크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나라 다녀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의 힘은 이처럼 매우 두터운 중산층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각설하고, 

"한국의 중산층의 기원"은 무엇일까? 

한국 중산층이 결국 한국의 산업과 근대화의 횃불을 든 사람들이라 생각했을 때

한국 중산층의 기원을 밝혀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향촌에는 원래 "양반"과 "평민-노비-천민" 밖에 눈에 띄는 게 없었다. 

여기에 아주 얇은 층으로 "향촌중인"이 존재했는데 

그 대부분은 "양반의 서자들"이었다. 

이들은 조선 초-중기까지도 강고했던 서얼금고 때문에 

조상 중에 한 명이라도 서자가 있으면 몽땅 과거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하층 관직을 전전하며 차별받는 층으로 묶였다. 

이들이 바로 "초기 향촌중인"들인데

실제로 조선시대 기록을 보다 보면 심심찮게 발견되는 계급이다. 

그런데 18-19세기가 되면서
이 전통의 "향촌중인" 층에 
새로운 "중인"이 추가되기 시작했으니

그것이 바로 모칭과 집요함, 경제적 부를 바탕으로 아래부터 성장해 나오는

"새로운 향촌중인" 층이다. 

이 층이 바로 19세기에 새로 추가된 유학으로

이들이 양반이 맞네 틀리네로 논란이 있던 사람들로

17세기 후반만 해도 10프로가 안 된 유학 등 양반 층을

19세기 중반에는 무려 60-70프로를 육박하게 만들어 버린 주역이기도 하다. 

이 19세기 중반에 늘어난 "유학"은 양반이 아니다, 이렇게 양반이 많을 리가 없다. 

이들은 양반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최근의 연구 동향으로 아는 바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무엇일까? 

그냥 양반 모칭자이면 끝이고, 여전히 평민일까?

이들이 평민과는 다르다는 것은 한 눈에 간취할 수 있다. 

그리고 위로 올라가자는 욕구도 매우 강하여 

19세기 말에는 이들 중 상당수가 정치적으로 민감함 움직임을 보이며

20세기를 주름잡은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바로 이 계층에서 나올 것임은 필자가 이미 쓴 바 있다. 

이들이 바로 현대 한국 "중산층"의 기원이 아닐까? 

양반도 아니고 노비도 아니고,

단순히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아닌, 

자기 계급을 자각하고 정치적으로 적극 참여하려 하며

끊임없는 계급상승 욕구를 가진 사람들-. 

19세기의 새로운 "유학"이 바로 이런 사람들인지라, 

이들이야말로 바로 20세기 한국 중산층의 기원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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