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
19세기 중반까지도 수십 수백을 노비 사역시키는데
신동훈 識
2025. 9. 2.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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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사료에서 자본주의 맹아를 찾는 일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18세기 말에도 우리나라 향촌에는 노비가 바글바글한다.
여기서 어떻게 농민이 분해되어 광작하는 차지농이 생긴다는 건가?
이 광작하는 차지농은 생산물을 화폐경제하의 시장에 내다 판다 이것일진대,
내다 팔 시장이 있어야 팔 것 아닌가?
광작 따로, 일기따로, 맹아 따로, 호적 따로인가?
지금처럼 19세기 중반까지도 향촌사회에서
수백명 노비를 사역시키는 풍경이 확인되는 한
내재적 발전론, 자본주의 맹아론 따위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절대로 믿을 수 없다.
당최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 [편집자주] ***
저런 땅부자가 조선 곳곳에서는 있었다.
이들을 이른바 광작운동 증좌로 들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런 땅부자 중 어느 누구도 자본가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저 정도 지주는 조선시대만 해도 초기 이래 줄곧 있었다.
웬간한 관직 책봉받고 공신 되면 저 정도 땅은 다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자본가는 아니었다.
시장이 형성되어야지 자본가가 태동할 것 아닌가?
문서상 부동산 부자였을 뿐이다.
그런 그들 중 일부가 식민지시대가 형성되면서 비로소 자본가로 탈바꿈한다.
현금 유동성은 전연 없는 땅부자만 있는 땅이 조선이었다.
그러니 저들이 술만 한 잔 걸치면 하는 말...가
난해서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일부는 타당하다.
왜? 돈이 있어야지?
땅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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