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를 풍미한 임질과 매독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우리나라는 성병에 대해 알고는 있었고,
또 한 번 걸리면 치료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현대인이 AIDS를 두려워 하는 정도의 공포를 가지고 있었지만
막상 매독 같은 경우 환자 자체는 그다지 많지 않았던 듯 하다.
현대는 이런 병이 걸리더라도 항생제 등으로 치료를 하니 완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 당시만 해도 매독은 치료가 안 되니 한번 걸리면 장기간에 걸쳐 계속 진행하면서
최종단계에는 뼈도 파괴하는 등 그 흔적을 남기게 되는데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조선시대 사람들 뼈에는 매독의 흔적이 쉽게 발견되지 않아
이 당시 매독 발생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일본의 경우 매독이 정말 심하게 확산되어
에도시대 사람들 뼈에서는 매독에 의해 뼈가 파괴된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일본에 매독 환자가 많았던 이유는
그 나라에 유곽 등 성매매가 쉽게 이루어졌던 때문으로,
조선의 경우에는 일본보다 그런 기회가 많지 않았던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쨌건 조선에도 구한말이 되면 매독이 많이 확산되어
대한의원의 보고서를 보면 매독환자가 많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일제시대에도 지속되었던 듯하여
그 당시 신문을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약 광고의 하나가 바로 임질 매독 등 성병 치료제이다.
하지만 이 당시만 해도 아직 매독치료에 항생제가 사용되지 않았고
대신 살바르산이라는 약물이 개발되어 획기적 치료제로 각광받고 있었다.
이 당시 살바르산은 이미 조선에도 도입되었으리라 보지만
위의 약이 살바르산인지는 확실치가 않아 보인다.
*** (편집자 주) ***
사극에서 흔히 나오는 조선시대 유곽이나 룸사롱은 없었다!
역사 조작이다.
왜 조선시대에 매독 임질이 그리 드문가는 이것 하나로도 설명 가능하다.
#조선시대성병 #임질 #매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