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

1930년대 구경조차 힘든 양계장, 박정희 시대 와서야 비로소!

신동훈 識 2026. 7. 31.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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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양계장이 박정희시대 와서야 비로소 등장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일제시대 신문기사를 보면 양계장은 식민지시대 초기에도 거의 안 나온다. 

그러다가 1930년대부터 양계장 기사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대부분이 운영되고 있는 양계장에 대한 기사가 아니라, 

해외 양계장 견학, 양계를 하는 기술에 대한 교육 기사 등이 대부분이라, 

한글 신문이 모두 폐간되는 1940년까지도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 

조선시대처럼 닭을 마당에 놔서 기르고, 닭둥지를 시렁에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닭을 대량으로 키우기 시작하는 양계장은 1930년대에 비로소 태동을 하다가, 

해방 때까지도 그런 지지부진한 상태로 제대로 양계장을 운영하지 못한 채 끝난 셈이 되겠다. 

양계장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

그 중에서도 군사정권이 들어서며 1960년대 잘살아보세 소리가 농촌에 높던 시기이다. 

이 시점부터 비로소 양계장이 전국에 건설되어 닭 생산이 본격화하다가 

1980년대 말에는 양계장 과잉 증설로 닭값 폭락으로 닭들이 떼죽음 당할 정도로 생산량이 폭주하게 되니, 

이때부터 닭이 비로소 식육으로 판로를 찾아 그 첫 번째 과실이 1970년 초반의 전기통닭 영양센터, 

1970년대 후반에 대학문화의 상징이던 생맥주에 닭튀김이 등장하는 것이다 (치킨이라 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닭은 바로 이렇게 우리 곁에 다가선 것이다. 
 
*** [편집자주] *** 
 
서구에서도 대규모 양계 산업은 세계대전 귀환 용사들을 위한 부업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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