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점초간郭店楚簡, 한여름 변사사건이 이끈 세기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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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변사사건이 이끈 세기의 발견
송고 2006-12-20 15:31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1993년 8월, 변사 사건이 중국 허베이성湖北省 징먼시荊門市 공안당국에 접수됐다.
한여름 들판에 시신 한 구가 썩어가고 있다는 보고였다.
공안당국은 그 신원을 조사했으나 오리무중이었다.
하지만 이윽고 출처가 밝혀졌다. 시신은 최근에 살해되거나 자연사한 사람이 아니라 2천300여년 전, 중국 남방의 강국 초楚나라 시대의 유력지배계층에 속한 남자였다.
도굴꾼들이 징먼시에서 가까운 궈디앤郭店이라는 한적한 농촌 마을의 무덤을 파헤쳤다.
눈에 보이는 보물을 집어내기 위해 미라 상태로 남아있던 시신을 바깥으로 끌어내 폐기한 것이었다.
도굴꾼들은 검거되고 그해 10월, 그들이 도굴한 무덤이 정식 발굴조사에 들어갔다.
한데 뜻하지 않은 성과들이 쏟아졌다.
비록 도굴이 되긴 했으나 많은 유물이 남아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유물에 대한 문화재적 감식안이 부족한 도굴꾼들은 다량의 죽간竹簡 자료들을 그대로 현장에 남겨두었다.
이렇다 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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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수습된 죽간은 모두 804매.
이 중 묵글씨가 적힌 죽간이 730매. 보존상태도 좋고 문자도 선명해 별도로 X선 촬영과 같은 분석이 필요가 없었다.
기원전 300년 무렵에 축조된 것으로 드러난 초나라 시대 무덤 출토 죽간들을 분석해 보니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유가 계열 각종 글 18편과 함께 '노자'(老子) 텍스트가 출현한 것이다.
노자 관련 텍스트는 전체 출토 죽간의 10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총 71매.
이는 다시 세 가지 텍스트로 나뉜다. 발굴자들은 이를 편의상 갑(甲)·을(乙)·병(丙)으로 구분했다.
이렇게 해서 갑본 노자가 39매에 총 1천170자, 을본이 18매에 510자, 병본이 14매에 322자, 도합 2천2자 분량이었다.
이 외에도 병본 노자에는 조사단이 '대일생수'(大一生水)라고 이름 붙인 또 다른 도가 계열 텍스트가 있었다.
이를 학계에서는 곽점초간노자郭店楚簡老子, 혹은 곽점노자郭店老子라고 한다.
이 곽점초간노자를 현행 노자 텍스트와 비교할 때, 모든 초간노자 텍스트는 현행본에 어떻게든 포함돼 있다.
현행 통용본의 5분의 2 가량에 곽점초간노자가 들어가 있는 셈이다.
곽점초간노자 발견 소식은 세계를 경악케 했다.
종래 알려진 노자와는 사뭇 다른 텍스트였기 때문이다.
나아가 곽점초간노자는 생성 연대가 적어도 기원전 300년 이전이라는 점에서 노자라는 인물과 그의 텍스트의 생성연대를 훨씬 늦잡던 통설을 뒤집었다.
영남대 철학과 최재목(45) 교수가 심혈을 기울여 도서출판 을유문화사가 기획하는 '을유세계사상고전' 시리즈 중 하나로 최근 선보인 '노자'는 직업적 학문종사자가 국내 처음으로 선보인 곽점초간노자에 대한 역주로 기록되게 됐다.
이번 역주서는 곽점노자 원전 글자 하나하나를 분석했다.
예컨대 원전에는 음만 같은 글자를 빌려 표기한 가차자假借字가 다량으로 출현하고 있는데, 이들 가차자를 모두 정자체로 풀었다.
또한 각 해설에서는 그 출처를 최대한 밝히고자 했다.
아쉬운 대목은 현행 '노자' 텍스트와 직접적 연관이 있는지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있는 '대일생수'를 역주본에서 뺐다는 점이다.
323쪽. 1만8천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