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2001년 8월 9일, 나주 벌판에서 대형 독 가마가 출현하다

taeshik.kim 2024. 10. 10.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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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나주박물관을 채운 옹관들. 저 옹관은 삼국시대 호남지역 특징이라 할 만한데, 문제는 오량동 출현 이전까지 그걸 굽던 가마가 발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2001년 8월 9일 무렵 나는 전남과 광주에 있었다.

분명 출장이었는데 무슨 일로 그쪽을 갔는지는 도통 감이 안잡힌다.

내가 기억하는 단 한 가지는 나는 그날 나주 오량리 어떤 벌판에 서 있었다는 기억뿐이다.

그 현장엔 대옹大甕 파편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열나 두꺼워 살인도구로 사용될 법한 옹관 파편들에 경악했다.

현장은 묘지 조성한다고 포크레인이 껍데기를 홀라당 벗긴 상태였다.

가마터였다.
 

바닥에 깔린 파편들이 옹관 파편이었다.

 
것도 초대형 옹관을 굽던 가마터였다.

영산강유역에서 주로 4~5세기에 집중 조성되는 독널 옹관묘甕棺墓 만들 때 쓰는 그 옹관.

하지만 그렇게 큰 옹관을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구웠는지는 오리무중이었다.

그럴 수밖에.

그때까지 옹관 가마는 단 한 기도 발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급했다.
 

훗날 조사에서 출현한 오량동 가마 중 하나

 

이튿날 나는 초대형 옹관 가마터 나주 출현이란 기사를 긴급 송고했다.

이렇게 알려진 오량리 가마터는 이후 추가발굴 결과 한반도 최대 가마터로 드러나게 된다. 

초대형 그릇 공장 콤비나트였다.

이 오량리 가마터는 당시 어디 근무했던가 종잡을 수 없는 박철원을 필두로 동신대 이정호, 나주시청 김종순 등이 긴급조사와 보존을 위해 뛰어다닌 기억이 생생하며, 나는 담당 분야 기자로 그에 힘을 조금 보탰다. 

후세는 저들 이름을 기억이나 할까? (2017년 10월 10일) 

 
***
 
그 출현 순간을 내가 현장에서 마주쳤으니, 글쎄 이를 그렇게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억세게 운이 좋았다. 

박철원은 아마 저 현장 주변 논인가 밭이 아버지 소유였을 것이며, 그에 나갔다가 저 현장을 발견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건 내가 그 내력을 정리해 놓은 글이 어딘가 있는데 지금 찾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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