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길림 유수榆树에서 부여국 동복 출토
https://news.cctv.com/2025/08/17/ARTINWlQ61QyNFS9Bklwku2S250816.shtml
吉林榆树发现两件古代夫余国青铜器
近日,吉林省文物局对外公布,吉林省第四次全国文物普查工作取得重大进展,在榆树市发现了两件夫余国的青铜器为夫余文化的考古研究提供了更多线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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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길림성 문물국이 길림성 네 번째 전국 문물 조사 작업 과정 중 유수시榆树市에서 부여국 시대 청동기 2점을 발굴함으로써 부여 문화 고고학 연구에 더 많은 단서를 제공하게 됐다고 중국 관영 CCTV 뉴스가 최근 보도했다.
이 청동유물은 올해 4월, 유수시 육민향育民乡 삼의촌三义村 주민 조赵 모씨가 일찍이 집에서 채소 저장고를 파내면서 발견한 것으로 조씨는 이를 문물 보호 부서에 넘긴 것이라고 한다.

감정 결과, 이 두 청동기는 부여국의 유물인 청동복青铜鍑과 청동삽青铜锸으로, 기물 형태가 완전하고, 그 형태가 길림시 吉林市 모올산帽儿山 부여묘지夫余墓地에서 출토된 기물과 완전히 일치하며, 부여국 고급 무덤 부장품이라고 보도는 덧붙였다.
고고학자들은 이 두 점 청동기가 출토된 유수시 육민향 삼의촌 일대에 고대 무덤이 존재한다고 추정하며, 한 달간 탐사를 통해 삼의촌 무덤 범위를 명확히 했다고 밝혔다.

부여국은 기원전 2세기부터 서기 494년까지 동북 대지에 존재한 첫 번째 변방 민족 정권으로, 이번 고고학적 발견은 중화민족의 다원일체의 중요한 실증이다.
이상 중국 보도를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물론 우리 정서랑은 맞지 않다.
보도 내용이 너무 간단해 아쉽기 짝이 없지만 조만간 간보가 나올 것이다.

저 청동제품 중에서도 동복은 한국고고학이 대서특필한다.
한반도에서도 출토한다 해서이며, 부여족 혹은 그로 대표하는 북방 민족 남방 진출 혹은 영향력 확대 가장 중대한 고고학 증거로 거론한다.
뭐 또 난리치겠지만....이번엔 또 뭐라 할까?


近日,吉林省文物局对外公布第四次全国文物普查工作进展。今年4月,榆树市三义村村民将早年挖出的两件青铜器上交给文保部门。这两件青铜器经鉴定为青铜鍑和青铜锸,器物器型完整,其形制与吉林市帽儿山夫余墓地出土的器物完全一致,为夫余国时期高等级墓葬的随葬品。
考古人员据此推断出土这两件青铜器的三义村一带存在古代墓葬,后期经勘探已明确三义村墓葬范围。夫余国是公元前2世纪至公元494年存在于东北大地上的第一个边疆民族政权,这次考古发现为中华民族多元一体的进一步提供了实证。
The Jilin Provincial Cultural Relics Bureau announced the progress of the Fourth National Cultural Relics Survey. In April of this year, villagers in Sanyi Village, Yushu City, handed over two bronze artifacts unearthed earlier in the year to cultural relics protection authorities.
These artifacts were identified as a bronze cauldron and a bronze hoe. The artifacts are complete and identical in form to those unearthed from the Fuyu cemetery in Maoershan, Jilin City, and are burial objects from high-ranking tombs during the Fuyu Kingdom period. Archaeologists inferred the presence of ancient tombs in the Sanyi Village area where the two bronze artifacts were unearthed. Subsequent exploration has further confirmed the location of the Sanyi Village burials. The Fuyu Kingdom was the first frontier ethnic regime to exist in Northeast China from the 2nd century BC to 494 AD. This archaeological discovery further demonstrates the unity and diversity of the Chinese n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