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대동보는 어떻게 해야 살아 남는가

족보라고 하면 케케묵은 고리짝 유물처럼 인식되는 세상이지만,
사실 지금 족보, 그러니까 집집마다 있는 문중 대동보라는 물건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아주 빠른 집안이 15세기 경,
좀 역사가 있는 집안도 16, 17세기 경이나 되야 족보가 출현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족보라는건 아는 사람 다 적고
문중 후손 수단도 제대로 안 되는 터라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족보의 꼴을 갖추기 시작하는건 대략 18세기 중엽 부터인데
이것도 잘나가던 집안이나 그렇지
19, 20세기에야 대동보를 꾸린 일족도 수두룩하였다.
19세기까지도 우리나라 대동보는 서자는 서자로 표시하고
아예 빼버리는 집안도 있었던 바,
족보에 서자 적자 표시 안하기 시작한 것이 일제시대부터이고,
깐깐하게 따지던 절차도 없이 문중 후손이라 하면
대략이건 족보에 실어주거나
아예 같은 후손이라 주장하는 집안 통째로 다 받아 대동보에 넣기도 했으니
지금 수십만 후손을 거느리는 집안의 대동보라는 것이 대부분 이렇다.
이렇게 족보가 진화해 오는 현상은 거의 3세대 주기로 편찬되는 과거의 족보를. 추적하면
우리나라 족보가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필자가 추적한 한 집안의 족보는 1630년대에 처음 족보가 나오고
이후 대략 3 세대 별로 한번씩 수단하여 족보가 편찬되었는데
처음에는 책 한 권 간신히 채우던 족보가 자꾸 볼륨이 늘어나
일제시대에 이미 풍만한 권수를 갖게 되는 모습을 보며
재미있는 것은 내용도 이에 따라 변화를 거쳐
해방 이후 나오는 족보들은 편찬 주체가
집안 종손으로 이루어지던 과거와는 달리
세칭 잘나가고 출세한 사람 위주라
20세기 후반의 족보에는 권두에 국회의원이 인사말씀 넣는 곳도 부지기수이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엔 20세기 후반에 족보가 나왔다면 다음 족보는
아마 21세기 중 후반이나 되어야 나올 텐데
이떄 수단을 받으려 하면 과연 제대로 후손들이 그걸 보내줄지나 의문이다.
필자가 보기엔 앞으로 30년 사이에 세 가지가 사라진다고 본다.
첫쨰는 제사,
둘째는 선산,
세째는 족보다.
왜 사라진다고 보느냐는 필자에게 물어볼 것 없이
여러분들 자제분에게 물어보면 안다.
제사는 할 사람도 없어질 것이고,
선산은 남은 땅 다 팔아 없어질 것이며,
족보는 수단 보내봐야 광고전단지처럼 쓰레기통에 박혀
다음 족보는 자손들 병단이 오지 않아
구멍이 숭숭 뚫린채 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족보가 지난 수백년 동안 끊임없이 진화했듯이
21세기의 족보다 살아 남으려면 모습을 바꿔야 할 때가 왔다.
첫째는 지금처럼 부계 위주의 기록으로는 앞으로 살아 남을 가능성이 없다.
전 국민이 자녀가 한 명, 그것도 딸이 전체의 절반인데
부계 족보가 과연 운영이 될 것으로 보는가?
택도 없는 소리다.
따라서 다음번 족보에는 무조건 딸과 처가의 정보를 늘려야 한다.
요즘 보면 족보 현대화한답시고
전자문서화 하거나 심지어는 조상 묘 사진까지 넣어주는 데가 있던데
그래봐야 소용없다. 부계 족보로 남아 있는 한은 망할 날이 곧 온다.
무조건 처가와 딸에 대한 정보를 아들과 남편하고 동일하게 배정해야 한다.
그럼 그게 무슨 이 집안 족보냐 라고 할지 모르겠는데,
근본으로 돌아가라.
최초로 우리나라에 온 족보 안동권씨 성화보나 문화유씨 가정보를 보면,
자기 부계 친족만 적지 않았다.
이야기가 수시로 옆으로 빠져 처가 사위 집까지 죄다 적었으니,
이렇게 해주지 않으면 다음 번 족보는 문 닿는다.
다음으로 어차피 우리나라 족보 태반은 뻥이라는거 다들 이제 눈치를 챘는데
(우습게도 이렇게 된 계기는 추노라는 드라마이다.
18세기에도 전 국민 절반이 노비인 나라에 무슨 명문대작이 이렇게 많겠는가).
지금처럼 권력 지향적, 출세지향적인 족보는
이제 막을 내려야 옳다.
가족들의 정보를 담고 서로 보듬어주며 관계를 확인하는 문서로 모습을 바꿔야지
지금처럼 우리 10대조가 무슨 무슨 벼슬하고 나는 누구 부계 후슌이고
그런 거 적어놔 봐야
사실도 아닌 뻥일 가능성이 높고,
또 요즘 세상에 그러고 앉았다가는 이혼당하고
늘그막에 애들도 찾아오지 않는다.
다시 한 번 위기의 시대를 맞은 대한민국 족보에게 권하노니,
변하라, 너희들 조상 족보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렇지 않으면 다음 번 족보는 없을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