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

3대가 벼슬을 못하면 양반이 아니다?

신동훈 識 2025. 8. 19.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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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는 자리 잦고 어미는 실을 뽑고 아들은 공부하고

 
이런 주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말이다. 

우리가 조선시대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남아 있는 사마방목, 호적, 족보 등을 면밀히 비교하면 분명해진다. 

일단 보자. 

남아 있는 호적을 보면, 

주호(호주)의 이름, 본관이 기재되고, 

그 사람의 아버지, 조부, 증조부, 외조부 이름이 나온다. 

그리고 배우자의 부, 조부, 증조부가 호적에 같이 적혀 있다.

따라서 총 7명의 조상의 이름이 적히는 셈이다. 

이 7명 조상 이름에는 직역이 적히는데, 

여기에는 벼슬이 적히면 좋지만 벼슬이 없을 경우, 

대개 양반이 죽고 나면 "학생"으로 적힌다. 

"살아서 유학, 죽어서 학생"이 양반의 최소한의 조건이다. 

따라서 호적에 어떤 사람이 적혀 있고 본인은 "유학"

그리고 부, 조부, 증조부, 외조부가 "학생"이라고 적혀 있다면

이 사람은 3대조가 벼슬을 했건 안 했건 간에 일단 양반이며

과거보는 데 지장이 전혀 없다. 

이 사람이 과거 볼 때는 관청에서 위의 조상님 이름과 직역을 적어준 사본을 발급하는데

이를 "준호적"이라 부른다. 

이걸 들고 과거장에 가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7명 조상 중 한명도 제대로 된 벼슬을 한 이가 없고

몽땅 "학생"이라면 그냥 과거때 들러리나 하지 않았을까? 

그게 아니라는 것이 바로 한영우 선생의 아래 연구다.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140124/60373545/1

여기 보면 조상 중 제대로 급제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도 

잘만 대과 급제한 사람들이 19세기에 들어가면 거의 절반에 가깝다. 

이는 조상 중에 제대로 된 벼슬 없는 이들도 

소과가 아니라 대과까지도 급제자가 많이 나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조선시대 호적에서

양반의 최소한 조건은 자신은 "유학"

그리고 3대조까지 "학생"으로 적히는 것이다. 

벼슬하고는 상관없다. 

그리고 이렇게 벼슬 없이 "살아서는 유학, 죽어서는 학생"으로 적히는 것은

벼슬이 3대조까지 있건 없건 간에 6대, 7대까지 내려갈 수 있다. 

벼슬이 3대조에서 끊기건 아니건 간에

양반이 호적에서 양반 자격을 상실하기란 그렇게 쉽지 않았다는 말이다. 

필자가 보기엔 조선시대 호적에서 양반의 자손들은 

심지어는 서출들까지도 "유학"으로 양반 자격을 계속 유지했다. 

오히려 이 "유학"에 이전에 평민, 심지어는 노비였던 사람들이 대거 가담하는 것이 

19세기라는 말이다. 

양반이었다가 몰락하여 평민이 된다? 

필자가 보기엔 그런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아무리 몰락해도 양반은 호적에서 양반 자격이 대개는 유지되었고, 

반면에 양반의 상징이었던 "유학"을 평민이나 노비들이 모칭하여 이에 진입하는 사례가 많았다는 말이다. 

"잔반"이나 "몰락 양반"이란 것이 과연 있었을까? 

물론 경제적으로 몰락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들조차도 호적에서는 "유학"을 쉽게 떼지 않았다는 말이다. 

우리는 "잔반"이라는 말을 역사에서 너무 쉽게 쓰는데

필자가 보기엔 "잔반"은 원래 양반이 아니었던 사람들이 태반일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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