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압지 신라 동궁론을 심판한다](5) 또 하나의 작은 조정 동궁東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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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 역사고고학계를 중심으로 전개하는 동궁東宮 논의들을 보면,
실제 그 땅을 판 놈은 말할 것도 없고 그에 부화뇌동하는 역사학도라는 자들이 전개하는 동궁론東宮論이 한심하기 짝이 없어
동궁이 도대체 무엇인지도 모르는 놈 천지라
그러니 뻘소리 대잔치 아니겠는가?
동궁은 다음 보위를 이을 해당 왕국 넘버2를 위한 공간이기도 하면서 관부官府다.
관청이라는 말이다.
우리한테 익숙한 조선시대를 보면, 중앙에 이호예병형공이니 하는 6부를 중심으로 그 왕국 전체를 다스리는 관부들이 그물망처럼 설치되어 나라를 경영했듯이,
그에서 위임받아 지방으로 나아가 지방행정을 해야 하는 지방관들도 다 하나같이 별도 관부를 두었으니
우리가 말하는 아전들,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사또 사또 하면서 현청 아래서 군수나 현령, 혹은 그 위 부사나 관찰사 안찰사를 보좌하는 무수한 하위조직들이 있었다.
국가 경영이 그리 간단할 것 같은가?
하물며 장래 대위를 이어받아 국가를 경영해야 하는 동궁은 어떤가?
이 또한 거대한 중앙정부 조직이다.
물론 국가 전체를 지금 경영하는 왕의 그것에 견주어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이 동궁도 엄연한 관부라 관속官屬을 두었으니,
위로는 스승이라 하는 원로대신을 중심으로 대체로 세자 혹은 태자는 장래를 위해 수양을 해야 한다 해서 학덕이 높은 사람들이 포진하고
그 아래로는 동궁 시대를 대비해 젊은 관료들이 집중으로 포진했다.
이 동궁이 신라시대에는 어찌 운영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증언은 거의 없다.
하지만 없다 해서 우리가 모르겠는가?
이웃 중국을 보면 태자궁에 무수한 관부가 포진한다.
신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그것이 처음으로 궁궐 밖으로 나간 문무왕 시대 이후에는 완연한 중국식 동궁 체제를 정비했을 것임은 불문해도 가지하거니와
이런 다채로운 동궁을 단 한 번이라도 생각이나 해 보았냐 이거다.
그 다채로운 그물망 작은 조정 동궁을 생각하면 저런 뻘소리를 도대체가 나올 수가 없다.
그렇다는 근거 있냐고?
없기는 왜 없어?
신라가 백제인가 고구려인가를 멸하고선 대대적인 포상을 실시하는데, 개중 하나가 최대 공신 김유신의 처리 문제였다.
대각간이요 상대등인 그에게 더는 줄 것도 없었다.
그래서 태대각간이니 해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리를 만들기도 하거니와 그 일환으로
그의 관속들을 특진시킨다.
이 대목 단 한 놈도 제대로 의미를 캐는 놈이 없다.
김유신은 중앙조정과는 별도로, 국가에서, 혹은 왕이 위임한 권한 안에서 김유신이이라는 중신을 보필하는 별도 관부가 있었다.
김유신은 그 자체로 제후왕이었다.
그의 관속은 그의 막부가 있었다는 뜻이다.
동시대 김유신이 별도 관부를 설치했는데 그 위에 포진하는 동궁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동궁 또한 무수한 관부의 보필을 받았으며, 그 관부는 태자궁을 중심으로 포진했다.
이 태자궁에 관속들이 상시로 배치되어 있었고, 그 관부가 어찌 배치되었을 것이라는 상상조차 해 보았냐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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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압지 신라 동궁론을 심판한다](4) 대국민 사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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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압지 신라 동궁론을 심판한다](4) 대국민 사기극
안압지 일대 신라시대 권력, 곧 동궁東宮 권역이라 해서 현재까지 발굴조사가 수행된 구역 일대 배치도라 해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가 작성 배포한 것이다. 이 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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