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정복 이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된 켈트 전통: 자를란트 고고학 연구가 혼합된 과거를 밝혀내다

오버뢰슈테른 발굴을 통해 켈트와 로마의 전통이 융합된 무덤, 별장, 기념물들이 발견되어 유럽 정체성의 뿌리를 추적한다.
독일 자를란트Saarland 고요한 언덕에서 과거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계속해서 되살아난다.
바데른Wadern 지방 작은 마을 오버뢰슈테른Oberlöstern 근처에는 두 개 기념비적인 무덤이 두 문명 사이에 갇힌 세계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서기 2세기에 건설되었지만, 이 무덤들은 켈트와 로마 전통의 명백한 흔적을 지닌다.
이는 지역 사회가 로마의 지배 하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저항하고, 궁극적으로 삶을 재정의했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적 혼합체다.
자를란트 대학교의 고고학자 자비네 호르눙Sabine Hornung 교수는 10년 넘게 이 지역에서 야심 찬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녀의 연구는 2,000년 전 일상생활의 흔적을 발굴할 뿐만 아니라, 유럽을 형성한 더 광범위한 문화적 변화 과정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기억의 풍경
로마 문화에서 영생의 상징이었던 눈에 띄는 석제 솔방울stone pinecones로 장식한 이 두 고분은 1990년대 발굴 과정에서 발굴된 원래 재료를 사용해 복원했다.
현재는 눈에 띄는 랜드마크가 되었지만, 호르눙은 이 고분들이 결코 고립된 기념물이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이 고분들은 농장, 채석장, 빌라 단지, 심지어 한때 주변 시골을 지배한 사원 구역까지 포함하는 훨씬 더 큰 정착지 경관의 일부를 형성했다.
호르눙과 그녀의 팀은 이 고분들을 완전한 맥락 속에서 분석함으로써 문화적 협상의 서사를 조각조각 모아냈다.
그녀는 "우리의 발견은 역사책에서 알 수 있는 것 이상의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켈트의 작은 마을에서 로마식 빌라로
고대 마을의 표면적 증거는 오래전에 사라졌다.
호르눙은 "2천 년 동안의 농업이 그 대가를 치렀다"고 말한다. [농사로 다 사라졌다는 의미다.]
그러나 지구물리학적 조사와 발굴을 통해 놀라운 발견들이 드러났다. 땅 아래에는 여러 가족이 명확한 사회적 구분 없이 함께 산 소박한 목조 가옥들이 모여 있던 켈트족 마을 유적이 남아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로마 정복 이후 극적으로 변했다.
서기 1세기 후반, 지주 엘리트들이 건축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호르눙 팀은 지자기 탐사를 사용하여 호흐발트 지역에서 확인된 최대 규모 로마식 빌라 단지를 복원했다.
이 단지는 지주를 위한 인상적인 본채와 그 옆에 경제적 별채, 그리고 부양 가족을 위한 작은 주택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호르눙은 "여기서 사회적 차이는 건축에서 드러난다"고 말한다.
돌 속 문화적 혼성성
고분 자체는 이 과도기 시대 정체성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흙으로 만든 무덤 형태는 전통적인 켈트족 무덤 건축 양식을 연상케 하지만, 돌로 둘러싼 울타리와 솔방울 장식pinecone ornaments은 로마 장례 관습에 확실히 속한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근처에 있는 장례 기념물로, 로마 양식으로 조각되었지만 켈트족 의상을 입은 부부가 묘사되어 있다.
"이 기념비적인 고분들은 문화적 혼합체다"고 호르눙은 말한다.
"건축가들은 켈트족 뿌리를 강조하는 동시에 로마 건축 요소를 도입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에 대한 권리 주장과 변화하는 사고방식의 반영을 볼 수 있습니다."
경제적 관행 또한 완고한 연속성을 드러낸다.
연구팀은 켈트 시대부터 맷돌millstones을 생산한 인근 채석장을 찾아냈다.
현지에서 채취한 돌은 무역을 통해 수입된 용암석lava stones보다 품질이 떨어졌지만, 공동체는 명망 있는 기념물을 만들 때조차 자신들만의 재료를 사용하고 가치를 인정하는 것을 고집했다.
호르눙은 "거의 반항적인 발언이었다"고 말한다.

지역사와 세계사 연결
호르눙의 오버뢰슈테른 연구는 자를란트 지역 문화적 경관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 일환이다.
2010년, 그녀는 헤르메스카일Hermeskeil에서 로마 군 주둔지를 발견했다.
이곳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다.
이러한 발견들은 켈트 사회가 로마 세계에 어떻게 통합되었는지에 대한 퍼즐 조각들을 더한다.
호르눙은 이러한 함의가 지역 관광을 훨씬 넘어선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이 시기는 주권적인 켈트 부족들sovereign Celtic tribes이 로마 제국에 편입되어 정치적 통합을 이루었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유럽이라고 부르는 것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설명한다.
고대 공동체가 문화적, 정치적 변화를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오늘날에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어려움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과거를 되돌아보며 어떤 전략이 성공했고 어떤 전략이 실패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과거를 되살리다
바데른 시와의 협력과 자를란트 경제환경부, 그리고 메르치히-바데른 문화재단Merzig-Wadern Cultural Foundation 지원 덕분에 이 연구 결과는 이제 대중에 공개되었다.
안내판과 3D 복원을 통해 방문객들은 빌라 단지의 웅장함, 사원 구역의 위엄, 그리고 고분에 드러난 혼종적 정체성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복원된 기념물들 사이에 서면 역사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호르눙은 이렇게 말한다.
"로마 시대 대저택이 어떻게 생겼는지, 또는 신전이 일상생활 위로 얼마나 우뚝 솟아 있었는지 상상해 보면, 2천 년 전 이곳에 산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다른 어떤 곳보다 더 가까이서 말입니다."
오버뢰슈테른 이야기는 단순히 지역 유산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문화는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오히려 문화는 지속되고, 적응하며, 서로 얽히면서 회복력, 타협, 그리고 정체성의 지속적인 복잡성을 상징하는 풍경을 남긴다.
by 자를란트 대학교(Universität des Saarland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