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기자 시절 vs. 기자 이후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8. 1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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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한태동 선생

 

나를 지배하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 기자 시절엔 모든 사안을 이것이 기사화할 만한가? 아닌가에 맞추어졌다.

그래서 어느 분이 돌아가셨다 하면, 이 분이 부고 기사를 쓰서 다뤄 줄 만한 분인가 아닌가를 따졌고, 그 분이 내 분야 종사자가 아니라면 해당 기자한테 연락을 했다. 

다른 사안 역시 마찬가지라, 예컨대 저 현역 시절엔 어디서 무슨 좋은 발굴 소식이 있다? 할 때는 어김없이 내가 처리하거나 후임 기자한테 즉각으로 연락을 취했다. 

모든 사안이 기사화할 만한가 아닌가로 갈라질 뿐이다. 

그런 자리를 벗어난 뒤에는?

아무 관심 없다. 사안에 관심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 사안이 기사화할 만한가 아닌가는 전연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기사화할 만한 사안이면 내가 간단히 전하고 만다. 

작은 변화라면 작은 변화라 할 만한데, 지극히 당연한 변화 아니겠는가? 

어느 발굴 현장에서 꽤 대서특필할 만한 발굴이 있었다는 말을 들은지는 몇 달 전. 

그 소식 듣고서도 무덤덤하기만 했다. 아니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그런 말을 들으면 그런갑다 하면서 요새는 고생하셨소 하고 말 뿐이다. 

어차피 나중에 정식 보도자료 통해 공개할 마당에 혹 내가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그때 가서 보태면 될 뿐이다. 

어줍잖게 여전히 기자 흉내낸답시고 기성 기자들을 라이벌 삼아 너흰 이건 모르지? 나는 안다 하는 깝쭉댈 그럴 생각 없다. 아니 다 사라졌다. 

그 어떤 사안도 혹 내가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그것이 공포된 이후 어느 시점에 내가 보탤 이야기 있으면 보태면 그뿐이다. 

이런 삶을 살다가 간밤에 처음으로 한태동 선생 별세 소식을 접하고선 옛날 직장 연합뉴스 부고 담당 이충원 기자한테 전갈을 넣었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로서는 실로 신이한 경험이었다 해 둔다. 

왜?

퇴직 이후 줄곧 저런 삶을 산 까닭이다. 이 생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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