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은 충성무대 아냐" 검열에 열받아 전시 취소한 에이미 셰럴드
"박물관 감시는 상상력 감시" 신문에 기고문 반박

검열 문제로 지난 7월 스미스소니언 국립 초상화 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에서 열릴 예정인 자기 작품 기획전 '숭고한 미국American Sublime'을 취소한 화가 에이미 셰럴드Amy Sherald가 MSNBC 기고문을 통해 이번 사태에 대한 침묵을 깼다고 아트뉴스가 26일(한국시간) 보도했다.
셰럴드는 미술관 측이 그녀의 작품 "Trans Forming Liberty"(2024)를 철거할 것을 검토하자 9월에 개막할 전시를 취소했다.
이 작품은 모델이자 퍼포먼스 아티스트인 아레와 바싯Arewà Basit을 흑인 트랜스젠더 자유의 여신Black transgender Statue of Liberty으로 묘사했으며, 이달 뉴요커지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당시 셰럴드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사건에 대해 "단 한 사람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트랜스젠더의 삶에 대한 정치적 적대감이라는 광범위한 분위기로 형성된 제도적 공포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그림은 인간성이 정치화하고 무시당한 누군가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존재한다. 나는 양심상 검열 문화, 특히 취약 계층을 겨냥한 검열 문화에 순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셰럴드는 최근 사건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에서 여전히 초기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이번에는 스미스소니언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언급했다.
셰럴드가 전시를 취소하기 몇 주 전, 스미스소니언협회 전시가 백악관의 검토를 받을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백악관은 스미스소니언협회 전시가 "미국의 위대함이나 국가의 발전에 기여한 수백만 명의 미국인"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며, 대신 "미국의 예외주의를 기려야 한다celebrate American exceptionalism"고 주장했다.
스미스소니언협회는 연간 10억 달러 예산의 약 3분의 2를 연방 정부에서 지원받지만, 연방 기관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셰럴드는 8월 기고문에서 "정부가 박물관을 감시할 때, 단순히 전시를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 그 자체를 감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나라의 이야기는 항상 모순이었습니다. 자유와 함께 노예제도가, 발명과 함께 삭제가 공존합니다. 예술은 언어로는 담을 수 없는 무거운 것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박물관은 최고의 모습을 보여줄 때, 우리에게 아첨하는 그림이 아닌 전체적인 그림을 보여줍니다."
셰럴드는 또한 박물관이 현직 대통령들과 맺은 복잡한 관계를 언급하기도 했다.
예컨대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의 경우 그가 "박물관에 짐 크로우Jim Crow 법을 강요하도록 압력을 가했지만" 박물관은 "연방 정부로부터 부분적인 자율권을 부여받아 이러한 압력에 저항할 수 있었다"고 하며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 대통령은 비록 전시 조명이 어두컴컴한 로비에서 진행되기는 했지만 두 스미스소니언 커미셔너를 통해 '미국 흑인 예술가들American Negro Artists' 전시를 스미스소니언이 열도록 허가하기도 했다고 했다.
최근 사례로 든 일화 중에서는 1995년 원자폭탄 영향을 일본에 집중시켰다는 정치적 반발로 크게 수정된 에놀라 게이Enola Gay 전시와 2010년 스미스소니언의 LGBTQ+ 전시 '숨바꼭질Hide/Seek' 일부 내용을 검열하라는 의회 압력이 있다.

스미스소니언은 이전에는 백악관으로부터 전시 큐레이터에서 독립성을 지켰지만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프로그램과 리더십에서 직접적인 감시를 받고 있다.
1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은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 (DEI) 프로그램 종료와 모든 연방 정부 직책 채용 동결을 발표했다.
3월에는 새로운 행정명령을 통해 스미스소니언 이사회에 박물관 내 "부적절하고 분열을 조장하거나 반미적인 이념"을 근절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5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DEI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해고했다고 밝힌 국립 초상화 미술관 관장 킴 사젯Kim Sajet이 사임했다.
셰럴드는 전시 취소 결정 직후 발생한 이런 논란들을 언급하며, 국립 미국사 박물관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현재는 새 플래카드를 부착)에서 트럼프 탄핵 관련 전시가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것과, 박물관이 "노예 제도가 얼마나 악했는지"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면서 박물관을 "'WOKE'의 마지막 남은 부분the last remaining segment of ‘WOKE’"이라고 부르는 트럼프의 불만 등을 언급했다.
셰럴드는 전시 취소의 또 다른 이유로 오락가락하는 미술관을 꼽았다.
"갤러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정치가 개입하면 큐레이터의 독립성이 얼마나 빨리 무너지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다소 아이러니하게도, 셰럴드는 2018년 전 영부인 미셸 오바마의 초상화로 유명해졌다.
그녀는 우울함과 기쁨이 어우러진, 그리고 미국 사회의 정치적 현실에 대한 문제들을 바탕으로 흑인 미국인들을 깊이 생각하게 하는 파스텔톤 그림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셰럴드의 작품 약 50여 점을 선보이는 "American Sublime"은 지금까지 그녀의 작품을 가장 크고 포괄적으로 선보인 전시 중 하나였다.
이 전시는 원래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에서 기획했으며, 이후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으로 옮겼다.
스미스소니언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이 전시는 이 미술관에서 흑인 현대 미술가가 단독으로 선보이는 최초의 전시가 될 예정이었다.
셰럴드는 이렇게 말했다.
"박물관은 충성심을 위한 무대가 아닙니다. 시민의 실험실입니다. 박물관은 우리가 모순과 씨름하고, 낯선 것과 마주하고, 공감의 폭을 넓히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박물관이 자유로울 때만 그렇습니다."
"박물관이 자유로울 수 없다면, 우리는 전시 이상의 것을 잃게 됩니다. 상상력이 권력에 맞서는 공공 공간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물려받은 이야기와 우리가 그려볼 수 있는 미래는 더 이상 우리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이에 대해 스미스소니언은 "스미스소니언은 예술가 에이미 셰럴드와 오랜 세월 소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는 그녀와 그녀의 작품에 담긴 진실성에 깊이 감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에이미가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서 전시를 철회하기로 한 결정은 이해하지만, 스미스소니언 관객들이 '미국의 숭고함'을 경험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어 매우 유감이다"고 말했다.
*** [편집자주] ***
일전에 나는 한국 박물관 미술관에서 소비되는 다양성 포용성 문제가 장애인 중심 권리 확대를 겨냥하는 지극히 협소적이라 비판했거니와
그 다양성 포용성은 그보다 훨씬 넓은 의미라 주장했거니와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보기가 바로 이런 일련의 사태 전개다.
언필칭 박물관인 미술관인이라 지칭하는 일군이 모여 현장탐방이라는 이름으로 마치 재벌가 부인회마냥 박물관 미술관 우루루 몰려다니며 한가롭게 장애인 관람 편의시설 확대를 도모하는 일이 어찌 박물관 다양성 포용성을 논의하는 일이겠는가?
간단히 말하면 박물관 다양성 포용성은 권력과 독점에 대한 저항이자 독립이다.
그건 레지스탕스다.
작금 논의 소비되는 그것은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소꿉장난이다.
작금 쑥덕이기만 하고 단 한 번도 공론화하지 못한 국내 공립박물관 위상 정립 문제도 저 중앙과 권력에 대한 레지스탕스여야 한다.
고작 중앙정부를 향해 지원 늘려달라는 읍소가 어찌 포용성 다양성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