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황성동 유적 유리 곡옥 거푸집
유리 곡옥을 만들어내던 틀, 곧 곡옥 거푸집 관련 출토품 중 경주 황성동 유적 출토품이 있으니,
그 출전은 다음이라(자료는 차순철 선생이 수고해서 찾아 주었다. 차 선생께 다시금 감사드린다.)
國立慶州博物館 學術調査報告 第12冊 《慶州 隍城洞 遺蹟Ⅰ- '가' 地區 木文·圖面》, 國立慶州博物館, 2000


이에서 이와 같은 유리 거푸집이 발굴되었다 한다.
유리 제품 생김새별로 보면 곡옥曲玉이 있고, 관옥管玉도 있음을 본다.
이로써 보면 곡옥은 유리 제품인 경우가 많아야 하는데,
그 성분 조사가 어느 정도 이뤄졌는지는 솔까 모르겠다.
거듭 말하지만, 한국고고학은 과학 분석과는 담을 쌓은 놈들이라,
과학과 담을 쌓은 자리에는 경험이라는 이름의 자의적 판단만이 득시글거리게 되며,
이에서 바로 고고학이 아니라 고고 소설이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한다.
첫째 거푸집 잔류물에 대한 분석이 있어야 하며,
둘째 저런 거푸집을 통해 만들어냈을 유리 구슬에 대한 분석 또한 당연히 있어야 한다.
이런 기초 작업들을 게을리하니,
어떤 망나니들이 툭하면 한국 유리 제품은 동남아에서 왔다는 구라 개사기를 치지 않겠는가?
암튼 저들 유리구슬 거푸집, 그리고 그것으로 주물했을 유리 제품에 대한 해당 보고서 기술은 다음과 같다.

(304) 곡옥 용범曲玉鎔范(도면165-①, 사진 168-②)
회색 또는 회백색을 띠고 사암砂岩을 깨트리고 갈아내어 반원형에 가까운 판板을 만들고 그 속에 곡옥 모양의 흠을 팠다.
홈의 형태는 곡옥과 유사하나 상하가 대칭을 이루고 있어 흔히 볼 수 있는 곡옥과는 외형이 달라 이 유물을 곡옥범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만약 곡옥범으로 볼 경우 내부에 아무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고 표면에 결박용 홈이 없어 유리제 곡옥의 범으로 보기는 어렵고 토제 곡옥土製曲玉의 범范일 기능성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홈의 단면의('단면이'의 오타 같다.) 반원형에 가깝기 때문에 단면 원형의 곡옥을 만들려면 이와 같은 모양의 범 2개가 합범合范을 이루어야 될 것 같다.
최대長 6.05cm, 최대폭 4.7cm, 최대厚 1.9cm.
(305) 곡옥 용범(도면 165-①, 사진 168-②)
위 용범과 재질 및 제작기법이 동일하며 크기만 조금 작을 뿐이다.
최대長 4.7cm, 최대폭 3.9cm, 최대후 2.05cm.
(이상 동 보고서 319쪽)

(306) 토제 유리 옥범 편土製琉璃玉范片(도면 165-③, 사진)
기면은 황갈색이다. 태토胎土에는 운모雲母를 포함한 세사립細砂粒이 다량 혼입되었다.
상·하·우측면이 결실되어 전체 형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직경 0.88cm 원형 구멍을 무질서하게 뚫었다.
구멍은 아래쪽으로 가면서 폭이 약간 좁아지는 모양으로 깊이는 0.7cm 정도이다.
이 구멍의 가운데에 다시 직경 0.2cm가량의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 유리옥을 성형할 때 구멍자리를 만들기 위해 가는 막대를 끼웠던 흔적으로 생각된다. 長 5cm, 폭 4.6cm, 厚 1.45cm.
(동 보고서 아마 320쪽 같다.)
간평한다.
저 곡옥 거푸집이 진짜로 유리 곡옥을 만들어내던 거푸집인지 보고자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이걸 확인하는 방법은 실로 간단했다.
발굴과 동시에 잔류물 분석했음 실로 간단했을 문제다.
이런 기초 작업을 하지 않으니 오만 잡가지 말이 다 나오지 않겠는가?
내가 보건데 저건 세척을 했다 해도 유리질이 쉬 없어지겠는가?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음 언제건 분석한다.
이런 일 하라고 국민이 세금 주는 거다.
유리 곡옥을 만들어낸 거푸집, 거창 출토품의 경우
유리 곡옥을 만들어낸 거푸집, 거창 출토품의 경우
장수 곡옥 거푸집 출토와 관련해 이곳저곳 본인들이 아는 비슷한 종류 유리 거푸집 소개가 잇따르는데 이는 경남 거창 출토품이라고 이곳 문화재 터줏대감 구본용 전 거창박물관장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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