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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적 두개골 연구는 어떻게 빅토리아 시대 영국 과학자들을 사로잡았나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8. 23.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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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 바라본 두개골. 주요 두개골 계측점들을 보여준다. 출처: Frederick Henry Gerrish (1845-1920)/퍼블릭 도메인


by Elise Smith / The Conversation

에든버러 대학교의 최근 인종과 역사 리뷰[Review of Race and History]는 19세기에 연구를 위해 조달된 1,500구 인간 두개골을 소장한 "두개골 연구실skull room"에 주목했다.

두개골 측정을 연구하는 두개골 계측학Craniometry은 19세기와 20세기 초 영국, 유럽, 미국의 의과대학에서 널리 교육되었다.

오늘날 두개골 계측학의 해롭고 인종차별적인 근거는 신뢰를 잃었다.

머리 크기와 모양이 개인이나 집단의 정신적, 행동적 특성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오래전에 증명되었다.

그러나 19세기와 20세기 초, 과학적 인종차별에 대한 연구와 교육을 위해 수천 개 두개골이 수집되었다.

에든버러 두개골 보관실은 결코 독특한 곳이 아니다.

성격 특성을 머리의 혹과 연관 짓는 골상학phrenology과는 달리, 두개골 계측학은 19세기에 데이터 수집과 통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폭넓은 과학적 지지를 받았다.

두개골 계측학자들은 다양한 인구 집단의 두개골을 측정하고 그 결과의 평균을 구했다.

이 데이터는 머리 크기와 모양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인종으로 분류하는 데 사용되었다.

두개골 계측학적 증거는 왜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문명화하고 진화했는지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다.

두개골에서 추출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는 숫자의 객관성을 믿은 빅토리아 시대 과학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갔다.

또한, 이는 사람들 간 차이가 선천적이며 생물학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시사함으로써 인종적 편견을 정당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의학사

두개골 연구는 19세기 인류학 발전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영국 대학에서 인류학을 가르치기 전에는 골격의 미세한 차이를 식별하는 데 능숙한 해부학자들이 인종적 차이로 추정되는 표지를 연구했다.

두개골 연구는 의과대학, 특히 해부학과를 통해 대학 커리큘럼에 도입되었다.

예를 들어, 알렉산더 마칼리스터Alexander Macalister가 1884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해부학 교수로 임명되었을 때, 그의 첫 강의 중 일부는 "인간 두개골의 인종 유형The Race Types of the Human Skull"에 관한 것이었다.

1892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리포터(Cambridge University Reporter)에 실린 맥컬리스터Macalister의 연례 보고서는 그가 케임브리지의 두개골 표본을 55구에서 1,402구로 늘린 과정을 설명한다.

1899년, 그는 고고학자 플린더스 페트리Flinders Petrie한테서 1,000구 이상의 고대 이집트 두개골을 기증받았다고 보고했다.

맥컬리스터의 두개골 컬렉션 대부분은 1945년에 설립된 대학의 덕워스 연구소(Duckworth Laboratory)에 소장되어 있다.

두개골계측학 연구의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연구 기관들은 시장에 출시되는 두개골 컬렉션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해야 했다.

통계적 정확성을 위해서는 대표적인 "유형"을 도출하기 위해 방대한 양의 두개골을 측정해야 했다.

이로 인해 인간 유해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물을 이용한 두개강cranial cavity 용량 측정. '두개골학에 적용되는 합성 사진과 두개골 용적 측정에 관하여 On composite photography as applied to craniology; and on measuring the cubic capacity of skulls', 미국 국립과학원 회고록 Memoir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제1권. 3: 103-116. 1885. (J.S. Billings and Washington Matthews/Public domain)

 
1880년, 왕립외과학회(Royal College of Surgeons)는 조셉 바나드 데이비스Joseph Barnard Davis의 개인 소장품에서 1,539구 두개골을 구입했다.

이 두개골은 기존 1,018구 두개골에 더해져 영국 최대 규모 두개골학 컬렉션을 이루었다.

이 컬렉션은 1941년 제2차 세계 대전 중 대학 건물이 폭격을 받으면서 대부분 소실되었다.

남은 두개골은 더 이상 왕립외과학회에 소장되지 않는다.

옥스퍼드 대학교 자연사 박물관은 19세기에 해부학 전시관에 두개골을 줄지어 전시했는데, 맨체스터 대학교 의과대학도 마찬가지였다(이 의과대학은 현재 같은 자리에 없다).

이러한 두개골에 대한 투자 덕분에 인종 연구자들은 연구하고 교육에 활용할 충분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19세기와 20세기 초 대학들이 보관한 카탈로그는 두개골 소장품의 규모뿐만 아니라 개별 표본의 출처까지 보여준다.

역사적 트라우마

에든버러 의과대학을 비롯한 일부 의과대학은 19세기 초 골상학 학회들에서 입수한 두개골을 재활용하여 소장품을 확대했다.

옥스퍼드 의과대학을 포함한 다른 의과대학들은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두개골을 활용하여 영국의 과거에 대한 인종 연구를 수행했다.

이 연구는 영국 제도 전역에서 켈트족, 노르만족, 색슨족, 스칸디나비아인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고자 했다.

그러나 두개골학자들은 인종적 다양성의 전모를 파악하고자 했기에, 해외에서 수집된 두개골이 특히 귀중하게 여겨졌다.

영국 대학 의대 졸업생들은 식민지에 파견되어 옛 교수들에게 외국 유골을 보냈다.

이들은 영국 대학의 두개골 연구실을 구성하는 국제적 네트워크의 핵심이었다.

곧 출간될 두개골 수집에 관한 내 책을 준비하면서,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두개골 기록부에 인도에 주둔한 한 학생이 보낸 두개골이 포함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모인 조문객들의 분노에도 아랑곳없이 봄베이의 화장터에서 그 두개골을 꺼냈다.

뻔뻔스러운 도굴과 식민지 폭력은 영국 대학의 두개골 보관실을 제공한 국제적 네트워크의 핵심이었다.

150년 전 두개골 수집을 촉발한 인종차별적 이념은 완전히 신뢰를 잃었다.

그러나 일부 인류학자는 이 유골들이 인류의 기원, 관계, 그리고 이주에 대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윤리적 요인 또한 이제 인간 유해에 대한 제도적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옥스퍼드에 있는 피트 리버스 박물관Pitt Rivers Museum은 2020년에 악명 높았던 "쪼그라든 머리shrunken heads"를 전시에서 제외했다.

대학과 박물관들은 유해 보관으로 인해 지속되는 역사적 불의와 세대를 거쳐 전해지는 트라우마에 점점 더 적극적으로 맞서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전 세계 원주민들은 조상의 유골을 본국으로 송환하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연구 기관들은 이러한 요청에 점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런던의 왕립외과대학 박물관 Museum of the Royal College of Surgeons은 소위 "아일랜드 거인Irish Giant"이라고 일컬은 찰스 번의 유골skeleton of Charles Byrne을 더 이상 전시하지 않는다.

번은 1783년 사망하기 전 자신의 유해가 해부되고 매장되는 것을 명시적으로 거부했다.

영국 대학의 두개골은 지구상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인간 유해가 대량으로 도난당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하지만 그들의 차별적 역사가 인정받고, 그들의 복귀를 통해 시정된다면, 그들은 강력한 화해의 상징이 될 잠재력을 지닌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덕워스 연구소 대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국의 많은 기관처럼, 우리는 소장품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유산과 비윤리적인 관행을 다루고 있습니다. 덕워스 컬렉션Duckworth Collection과 고고학과는 전통 공동체 및 기타 이해관계자들과 열린 대화를 촉진하고 탄탄한 관계를 구축하는 데 전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지식, 관점, 그리고 문화적 가치의 지속적이고 상호적인 교류에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됩니다. 우리의 목표는 과거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뿐만 아니라, 존중하고 평등한 파트너십을 통해 현대의 학문적, 문화적 이해를 풍부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덕워스 컬렉션은 기록 보관소 관련 업무를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기록 및 데이터베이스를 개선하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덕워스 연구소의 귀환 및 공동체 참여에 대한 접근 방식은 개방성, 포용성, 그리고 지속적인 대화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에 대한 헌신으로 특징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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