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에 족보에 소수서원까지 문어발식 확장한 이배용
김건희 금두꺼비 논란에 국가교육위원장만 내놓아

김건희 금두꺼비 논란이 터져 장관급 국가교육위원장 자리를 사직했다가 마침내 8일 대통령이 그 사직서를 수리했다는 이배용 씨는 이화여대 총장 출신을 배경으로 총장 퇴임 뒤에 더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워낙 권력에의 지향이 강한 데다, 저 배경이 풍기는 여성계 대표주자라는 그런 데코레이션까지 가미하면서 그것을 최적화하며 영달한 대표 지식인이다.
조선시대사를 주된 발판으로 삼으면서 구체적으로는 광업사를 궁구하면서 저 전가의 보물, 곧 일제가 한국광업자산을 다 수탈해갔다는 입론을 구성한 역사학도 중 한 명이라
그런 그가 느닷없이 조선서원의 세계유산 등재 움직임과 맞물려 문화재를 고리로 삼은 대중사회에 화려하게 등단하더니, 이를 고리로 삼아 문어발식 확장을 꾀하게 되거니와, 이를 발판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장까지 꿰차기에 이르렀다.
그런 그가 윤석열 정부에서는 장관급 국가교육위원장까지 차지했거니와, 비단 이뿐만이 아니라 쉬 눈에 드러나지 않는 각종 자리라는 자리는 그물망처럼 쳐서 이배용 왕국을 구축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는 저 위원장 자리를 내려놓았지만, 곳곳엔 그의 왕국이 도사린다.

먼저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이다.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유명 서원을 세계유산에 등재하고 나니, 그 통합관리가 필요하게 되고, 이를 위해 지자체랑 국가유산청이 만든 조직이 저 관리단이다.
등재 추진 과정에서 일견 그 자신이 주도하는 모양새였던 까닭에, 더구나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금은 없어진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브랜드위원회 장관급 위원장으로서 그것을 먼저 제안하는 이상한 스탠스 덕에 시종일관해서 서원하면 이배용 브랜드라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성공했으니 그 추진과정에서는 추진위원장이었고 등재가 되고난 마당에는 시종일관해서 저 관리단을 이끄는 대표 얼굴마담이 되었다.
이에서 그는 직함이 이사장이다.
이사장이라는 뜻은 이를 구성하는 상층부가 이사로 구성되고, 이배용은 그 대표라는 뜻이다. 이 관리단은 국가유산청, 해당 광역 그리고 기초지자체가 관여한다.
그러니 저 이사장 자리는 본인이 자발해서 나 고만하겠다고 사표를 던지지 않는 한, 이사회가 전권을 쥔다.
저 국가위원장 자리를 던졌다는 이배용이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 자리도 함께 내놨다는 움직임은 여전히 들리지 않는다. 저건 지키겠다는 뜻인 듯하다.
다음으로 이배용 영향권 아래 구치가 제법 큰 조직이 한지세계인류무형유산등재 추진위다.
이를 위한 전통한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추진단이 구성되어 활발히 활동 중이며, 그 추진단장에 역시나 이배용이 들어찼다.
이 한지에 열의가 대단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저 직함을 쥐고 나서 한동안은 언론에다가는 한지 등재추진위원장이라 써달라고 요구할 정도였다.
그 추진단장을 내어놓았다는 말은 아직 없다.

그런가 하면 근자 족보 인류무형유산등재 추진 움직임이 본격화했으니 이배용은 이에도 어김없이 이름을 올렸다. 명예추진위원장인가 하는 이름으로 올랐을 것이다.
이처럼 나이 팔순을 코앞에 둔 할매 이배용은 이른바 장사가 될 만한 데는 기가 막히게 찾는 신출귀몰한 재주가 있다.
물론 그 자신이 나 끼어들겠다 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저런 움직임을 추진하는 데서도 서원 세계유산으로 재미봤다고 소문나니, 이배용이라는 이름이 필요해서 자발로 찾아가서 모시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활동들은 공적 혹은 반공적 활동이지만, 순수 민간 차원에서 관여하는 데도 있다. 그 유서깊은 영주 소수서원.
이 소수서원은 법상으로 보면 소유주가 그냥 소수서원이다. 임의단체인가 이리 되어 있을 것이다. 특정 문중이 독식하지 않고 여러 문중, 이 지역 유림들이 운영한다.
하지만 그리 했다가는 논의가 산으로 가니, 이 서원에서 그 운영을 위해 소수서원운영위원회라는 기구를 조직하고 이에다다가 서원 업무 상당 부문을 일임한다.
이 소수서원운영위원회가 대외용 얼굴마담 소수서원 원장 자리에 이배용을 얼마 전에 모셔왔다.
물론 이 원장은 실권이 거의 없고 춘추 두 차례 정도 있는 제향에서 초헌관, 곧 술 첫잔을 드리는 역할 정도만 한다. 실권은 없으나 그래도 간판 상징성은 있다.
이 자리에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소수서원장이 되었다고 매스컴을 타기도 했다. 이번 일이 터지자 저쪽 유림에서는 난감하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본인이 못하겠다 자리를 내어놓으면 되지만 현재까지 교육위원장 자리를 빼고선 그 어느 것도 자발로 내어놓았다는 소문이 없다.
곧 이배용으로서는 상대적으로 눈길이 많이 쏠리는 저 위원장 자리만 내어놓고서는 사태를 관망하면서 권토중래를 꿈꿀 수도 있다.
혹 자리욕심이 지나치다면 그로서는 여간 다행이 아닌 점은 지금도 쥔 저런 자리들이 본인이 사퇴하지 않는 한, 남이 축출하는 자리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다.
문화계에서 노욕하면 거두가 역시 팔순 코앞에 두고 국립중앙박물관장을 꿰찬 유홍준인데, 저 이배용에 견주면 애교 수준이다.
문화재계에 어느날 날벼락처럼 떨어진 금두꺼비 이배용
https://historylibrary.net/entry/5-53
문화재계에 어느날 날벼락처럼 떨어진 금두꺼비 이배용
나한테 각인한 이화여대 총장은 오직 김활란과 장상 둘이 있을 뿐이었다. 연배 차이가 커서 나랑 직접 연이 있을 수 없는 김활란이야 워낙 현대사 비중이 큰 인물이기에 그런갑다 하고장상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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