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누군가는 그럽디다, 만리장성이라고" 북악산의 유홍준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9. 14.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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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2. 대통령비서실 배포 사진이라 북악에 오른 노무현과 권양숙 그리고 유홍준이다

 
유홍준 씨가 문화재청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이니 노무현 정부 때 일화다. (지금 찾아보니 2006년 일이라 나온다.) 

당시 청와대 주변을 시민 국민 품으로 돌려준다는 풍조가 만연한 때라, 이 흐름을 본격화한 이는 실은 김영삼이었다. 

문민정부를 표방한 YS가 대통령 취임 직후 취한 일련하는 개방 움직임은 지금은 당연하게 보이지만 그 하나하나 뜯어보면 혁명을 방불했으니 청와대 앞길을 개방한 이는 그였다. 

그런 흐름이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계속됐으니 그가 취한 저 흐름 연장성에 위치하는 조치가 북악 일대 개방이었다.

그를 뒤이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추가 개방 움직임이 있었으니 암튼 노무현 정부 시절 그 화룡점정은 북악 일대 한양도성 일대 구간 개방이었다. 

이 개방을 유홍준은 그 자신이 주도한 업적처럼 선전했으나 실상은 좀 달랐다. 

물론 노무현으로 대표하는 권력 심층부 최종 승인없이 될 수 없는 일이니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런 차관급 정부 외청이 무슨 힘이 있어 저를 주도해서 추진하겠는가? 

권력 심층부가 결심한 저 개방을 구체로 어찌할 것인가는 이후 정부 부처로 넘어갔으니,

문화재청에서는 이 일을 이춘근 당시 국장이 주도해서 하게 된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불의의 병마에 결국 쓰러지고선 현직 문화재청 국장으로 불귀의 객이 된 이춘근 국장은 육사 대위들이 행정직 공무원으로 전환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차를 타고는 문화체육부와 문화재청에 정착하게 된 인물로,

군 출신이라는 강점을 잘 살려 그 육사 인맥으로 저 개방과 관련한 실무 작업을 군 당국과 협의해 풀어가게 된다. 

그 협상자들이 육사 선후배들이니 그렇지 아니한 공무원들에 견주어서는 유리한 위치에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이런 사람들이 추진한 단 열매를 잘 따먹은 이가 유홍준이었다.

이것도 능력이라 하면 능력이라 해야 할 것이다.

결국 그 성과라는 것은 기관장 업적으로 포장되니 이 점에서 유홍준은 운이 따르는 사람이라 해도 좋다. 

그로부터 물경 20년이 지난 근자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먹은 유홍준을 두고선 내가 비판적인 목소리를 많이 내거니와, 팔순이 코앞인 그가 이번에도 억수로 운이 따르는 인물임은 분명하다.

그 자신 암것도 하는 일 없이 가만 있는데도 느닷없이 케데헌이라는 벼락 같은 선물이 떨어져 마치 본인이 잘해서 박물관이 잘 되는 것 같은 축복을 누리고 있다. 

이런 사람을 일러 우리는 운이 따른다 한다.

유홍준? 그러니 내가 주도해서 뭘 하겠다는 발칙한 발상 버리고 그냥 그 자리 가만 앉아 있어도 된다.

아니 그래야 한다. 

가만 있어도 잘 되는 그런 자리에 앉아 나도 뭔가 하나 해보겠다고 툭툭 던지는데 그 내역을 보면 처참하기 짝이 없어

이 시대에 느닷없이 반세기 전 대한민국이 세계에 팔아먹을 것이 없던 시절에 한 그 짓 곧 한국 문화재를 바리바리 외국으로 싸가지고 가서 선전하겠다는 지나가는 소가 웃을 아이디어를 들고 나와 비웃음만 하고 있다. 

제발 그냥 가만 있음 된다. 

이 이야기하려 함이 아니었는데 또 옆길로 샜다. 

이 짧은 이야기 한 토막은 내가 이곳저곳에서 이야기했지만, 이 참에 정본화하자는 그런 의도도 없지 않아(무엇보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며 내가 남길 만한 것들은 기억이 감퇴하기 전에 캐논화해야 하므로) 기록화해 둔다. 

정확한 날짜 혹은 시점은 당시 언론보도를 찾아 보강해야겠지만 암튼 그 노무현 정부 시절 암튼 저렇게 해서 북악 구간 공개하는 행사가 있었거니와

상징성이 큰 행사라 기자들이 바리바리 취재한답시며 붙었고 나 역시 당시 문화재청 담당 기자로서 당연히 현장을 갔다. 

그 행사장 북악으로 유청장과 당시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장 자격으로 기억하는데 서울대 한영우 교수 또한 현장으로 같이 올랐다. 

나는 한영우 선생과는 친밀한 편은 아니었다.

그가 언론과 유별나게 접촉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으니 이 점에서는 분명 같은 학과 동료 교수 이태진 선생과는 달랐다.

이태진 선생은 프레스프렌들리 교수군을 대표하는 주자였던 데 반해 한영우 선생은 그런 면이 그다지 없는 사람이었다. 간단히 말해 노잼이었다.

그런 까닭에 한 선생과는 몇 마디 판에 박힌 이야기만 주고받았을 뿐이며 역시 유구라 유홍준 청장과 이런저런 농담따먹기하며 행사장으로 올랐다. 

저 현장에 서 본 사람이면 절감하지만 특히 팔달령 만리장성을 올라본 사람이면 동의하는 분이 많겠지만 실제 한양도성은 만리장성의 그것과 풍모가 닮은 구석이 너무 많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행사장에 도착해 그에서 홍준 청장과 한양도성 장대한 풍광을 조망하며 내가 이런 얘기를 했다.

"만리장성 부럽지 않네요."

마이크라면 환장하는 유홍준 선생이 이내 마이크를 잡고선 일장훈시하기 시작했다.

그는 마이크만 잡으면 아연 생기가 도는 사람이라 하도 마이크 놀이를 좋아해서 재임 시절 내가 그를 마이크 청장이라 공식화하기도 했거니와

그렇게 나대기 좋아하는 사람이 또 마이크를 잡았으니 
더구나 이런 중요한 행사장에서 주빈으로서 기자님들 불러다 놓고 마이크를 잡았으니 얼마나 흥분했겠는가? 

그가 마이크를 잡자마자 이런 이야기로 구라를 풀어갔다.

"어떤 사람은 서울성곽이 만리장성보다 낫다고 합니다"

이후 틈만 나면 그는 서울성곽을 일러 저 말을 써먹는데, 그를 일러 왜 구라청장이라 하는지 물론 저 말이 구라라 할 수는 없지만 그가 살아가는 방식 특히 임기응변이 저랬다. 

뭔가 써먹을 말이라고 생각하면 블랙홀처럼 빨아들였고 그렇게 빨아들인 것들을 시시각각 더구나 즉흥으로 써먹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난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나는 말했다.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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