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설고고학] 십년 전 단 한 놈도 동조하지 않은 지진구 진단구 개소리설
대략 십년 전쯤부터 내가 지진구 진단구 문제를 심각하게 거론하기 시작했으니 그 구체하는 통로는 두 가지였다.
첫째 경주.
국립경주박물관 전시품도 그렇고 주로 경주 쪽 발굴현장도 그러해서 이른바 지진구 진단구라 해서 건물터 각지에서 매장용 항아리가 쏟아졌고 개중 일부를 경주박물관서 전시 중이라
한데 박물관에서 그것을 오로지 골호骨壺, 곧 시신을 화장하고선 뼈를 담은 그릇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둘째 서울.
사대문 안은 발굴이 강제화하면서 무던히도 파제꼈다.
사대문 안은 무덤이 있을 수 없으니 유적은 거의 다 관공서나 민가였다.
한데 이런 건물터 곳곳에서 뚜껑이 고이 덮은 매장용 항아리가 쏟아져 나왔으니 그 위치는 다종다양해 건물바닥이라든가 담장 쪽이 많았다.
이들을 모조리 고고학도들이 단 한 놈도 의심치 아니하고선 건물을 세우며 안녕을 기원하는 지진구 진단구라 했다.
이를 전시하는 박물관도 모조리 이딴 식으로 지진구 진단구 타령이었다.
나는 이를 분개했다.
도대체 지진구 진단구라지만 그걸 받침하는 근거 하나 없었기 때문이요 무엇보다 그 무수한 지진구 진단구 중 단 한 점도 내부 잔류물 검사를 하지 않고 발굴하자마자 아예 내부까지 박박 문질러 솔질해서 청소했다.
이 놈들은 팔 줄만 알지 실은 유산의 파괴자들이다.
암튼 저에 분개하며 나는 지진구 진단구라는 근거를 대라고 요구하면서 저 중 상당수가 실은 태항아리임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유의할 것은 적어도 생김으로만 보면 지진구 진단구는 골호랑 구별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지진구 진단구는 뼈항아리 아니면 뼈항아리 둘 중 하나일 뿐이다.
땅의 동티를 막고자 지신을 달래기 위해 묻은 항아리라면 제물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많은 지진구 진단구 중 제물이 내부에서 발견된 것은 단 한 점도 없다.
그렇담 우리 조상님들은 빈깡통으로 귀신을 우롱했단 말인가?
이유는 단 하나다. 지진구 진단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가장 웃긴 놀음이 불교 진단구 타령이다.
탑을 중심으로 강당 같은 데서도 지진구 진단구가 나온다.
그게 귀신을 위한 항아리란 말인가?
부처님을 위한 공앙품일 따름이다.
이 한국고고학은 부처님 공암품조차 귀신용이라며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일삼고 있다.
문제는 대략 십년 전 내가 저런 주장을 공식화했을 때 단 한 놈도 동조자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다들 무시하고 비아냥을 일삼았다.
경주박 골호, 서울역박 지진구 진단구 전부 혹은 상당수가 실은 태항아리라 하니 다들 날더러 개소리라 했다.
십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내 착각일수도 있겠으나 일단 눈치를 본다.
김태식한테 씹힐까봐 일단 눈치를 보며 무엇보다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것만으로도 장족의 변화라 본다.
의심하라!
상식을 통념을 송두리째 의심하라.
[독설고고학] 일본고고학, 참고는 하되 맹신은 하지 마라
https://historylibrary.net/m/entry/5-117
[독설고고학] 일본고고학, 참고는 하되 맹신은 하지 마라
내가 계속 지진구 진단구라는 한국고고학 난무상을 어림반푼어치도 없다고 까거니와, 이건 일본고고학 직수입품이다.일본고고학에서는 항아리만 나왔다 하면 지진구 진단구 타령이라, 그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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