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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정년퇴임하는 한문학도 안대회, 5년 더 석좌교수 해 먹는다!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5. 1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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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明心寶鑑)』완역본을 출간한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2743

 
뉴스를 검색해 봐도 걸리지 아니하니, 이건 나라도 기록 차원에서라도 남겨야겠다 해서 쓴다. 

한문학 전공자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내며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가 오는 8월 정년퇴임과 더불어 같은 학교 석좌교수로 5년을 더 있게 되었다 한다. 

오랫동안 근황도 묻지 못해 이런저런 궁금하던 사항도 물어볼 겸 해서 조금 전 전화를 드리다 블라블라, "퇴임하실 때 된 듯한데요?" 했더니, "아, 올 상반기 정년퇴임인데 학교에서 과분하게도 석좌 교수 자리를 주어 5년을 더 일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 아닌가?

"아니 그럼 제가 성균관대 교수 안대회를 70세까지 5년을 더 봐야 한단 말입니까?" 

강의는 없고 오로지 연구성과만 내면서 학교 이름만 빛내면 된다 하며, 그렇다 해서 저 양반 성정을 아는 사람들을 누구나 알겠지만 탱자탱자하면서 나 석좌야! 할 사람도 아니어니와, 연구실도 지금 연구실 그대로 쓴다 한다. 

지금 안대회 하면 참 평탄한 인생을 산 듯하지만, 저 양반도 드라마틱 굴곡 인생 쓴맛 단맛 다 본 사람이다. 

나는 저 양반이 아마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 새파랄 적에(아마 박사학위를 준비 중이었거나 막 땄을 때) 모교에서 개설한 고급한문강좌에서 선생과 수강생으로 조우한 이래, 이후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내가 문화부 기자로 문화재 학술을 전담한 98년 이후에 다시 만나게 되면서 이런저런 연을 이어오거니와 그래서 저 양반 굴곡이라는 굴곡은 거의 다 봤다. 

이미 박사과정 시절에 26살 때인가 그 균여전을 역주하면서 화려하게 등단한 그는 참신한 연구성과를 쏟아냈으나 교수는 당시로서는 아주 늦은 마흔두살에야 겨우 달았으니, 그렇게 노리던 모교 연세대 교수직은 날아가버리고선 할 수 없이 영남대로 가야 했다. 

연세대는 안대회를 놓침으로써 한국한문학을 상실했다고 나는 본다. 물론 아니라 할 사람도 더러 있을 줄 안다만, 연세대 한문학을 위해서는 안대회를 잡았어야 했다. 

암튼 낭중지추라, 영남대 생활 대략 5년 만인가? 그를 눈여겨 본 명지대 쪽에서 사실상 스카웃 형식으로 발탁하면서 인서울을 다시 하게 되었으니, 명지대 생활도 실은 잠깐이었다. 

성균관대 한문학과에 자리가 나서 다시 이직하게 되었으니, 이 과정에서 그를 직접 발탁한 명지대 쪽에서는 적지 않은 배신감을 토로했다고 안다. 

이 성균관대 이직을 계기로 내가 아는 한 그의 연구인생도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게 되는데, 명지대 시절까지만 해도 그는 분명 제자들 육성에는 관심이 없고 내 연구나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똥간은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법이다. 성균관대로 옮겨가면서 그 물량공세와 더불어 튼튼한 후계그룹을 육성하기 시작해 이제는 명실상부한 연구와 교육을 병행하는 교수가 되었으며, 그런 만큼 각종 연구업적도 계속 쏟아졌다. 

저 정도면 이제 문화재업계에서도 써먹을 때가 되었다 해서, 그런 그를 문화재위원으로도 발탁하기도 했으니(누가 발탁했는지 묻지 마라!) 지금은 국가유산위원으로 바뀐 그 자리에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안대회 세대는 한국한문학 황금기다. 한 한기 먼저 한양대를 정년 퇴임한 정민 선생과 아마 비슷한 시기에 퇴임할 듯한 서울대 이종묵 선생이 있고, 이들보다 조금 빠른 부산대 강명관 선생도 그 황금세대 주축 중 한 명이다. 

아마 충청도 청양인가가 고향일 터인데, 암튼 그 고향이 나은 최고 스타 중 한 명이 안대회다. 

그의 석좌교수 임용 소식을 접하고선 그때 연세대로 갔더래면? 아마 오늘과 같은 일은 없을 것이라 하니, 선생도 그래 그럴 것 같다 하고 같이 껄껄 한바탕 웃었다. 

인생만사 새옹지마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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