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엔 사족을 쓰지 못한 고대 로마

고대 로마 번잡한 시장에서 검은 머리 로마 여성들은 팽창하는 제국 곳곳에서 수입된 상품들을 감상했다.
아라비아 향긋한 향수, 이집트 화장품, 부드러운 인도산 면화, 그리고 고급스러운 중국산 비단은 그들의 소박한 옷과 머리카락을 바꿀 수 있었다.
현대적인 미용실은 없었지만, 부유한 로마 여성들은 게르만족 포로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발을 구입할 수 있었다.
또한 수입산 염색약을 사용하고 로마 제국 전역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미용법을 따를 수 있었다.
금발은 일부 로마 여성 사이에서 유행하는 사치품이 되었으며, 이국적인 아름다움, 부, 그리고 수입품에 대한 접근성과 연관되었다.
유베날Juvenal과 같은 풍자 작가들은 유행하는 미용 트렌드를 조롱했지만, 오비디우스Ovid는 종종 미용을 매력 예술의 일부로 칭송했다.
보수적인 작가들은 특히 머리카락을 더 밝고 윤기 있게 만들기 위해 금가루를 뿌리는 스타일을 혐오했다.
그러나 로마가 성장하면서 사람들은 제국의 이국적인 변방에 더욱 매료되었고, 진귀한 사치품을 교역하고 고대 세계 곳곳에서 교류하는 문화를 즐겼다.

로마 작가들이 제시한 미의 비결
소셜 미디어 인플루언서들이 미용 팁과 유행하는 제품을 소개하기 수천 년 전, 서기 1세기 로마 여러 작가는 여성의 미용, 화장품, 패션에 대해 논했다.
시인 오비디우스는 예술이 아름다움을 가꾸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하며, 머리 색깔을 바꾸거나 가발을 쓰는 것이 외모를 개선하는 적절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저서 『아르스 아마토리아Ars Amatoria』에서 여성들에게 화장품이 외모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유베날은 로마 여성들이 북유럽인들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발을 쓴다고 불평하며, "그녀는 게르만 소녀 머리카락을 사 오는군"이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당시 수입 게르만 제품을 얼마나 쉽게 구할 수 있었는지 보여준다.
시인 마르티알Martial 역시 미용 시술에 대해 유머러스한 시각이 있었다.
그는 여성들이 가발이 많으면 머리 색깔을 자주 바꿀 수 있다고 농담했지만, 인공적인 미용 시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박물학자 대大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는 그의 백과사전 『자연사the Natural History』에서 머리 탈색 기술을 설명했다.
그는 염색약 사용법과 탈색 관리법까지 기술하며 로마인들이 밝은 색을 적극적으로 추구했음을 보여준다.
흔히 사용하던 방법으로는 사프란, 식초, 재를 섞어 머리에 바르고 햇볕에 말려 탈색 효과를 높이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금발로 염색하는 일은 위험했다.
이 과정은 머리카락과 두피에 자극적일 수 있었기 때문에 가발이 인기가 더욱 높아졌다.

금발 머리가 왜 그렇게 유행했을까?
게르마니아 원정은 로마인들에게 밝은 머리카락을 지닌 사람들을 접할 기회를 제공했다.
금발은 검은 머리 로마인들에게 이국적인 매력으로 다가왔다.
특히 타키투스를 비롯한 일부 로마 작가는 북방 민족의 소박함과 용맹함을 로마의 퇴폐적인 모습과 대조했다.
많은 북방 민족의 밝은 머리카락은 지중해 사람들 눈길을 사로잡았고, 매혹적인 대상이 되었다.
포로로 잡힌 여성들은 가발 제작에 사용되는 머리카락을 제공하기도 했다.
수입 가발은 값비싼 부와 지위를 상징하는 물건이었으며, 가발을 착용하는 것은 부와 외국 상품에 대한 접근성을 나타냈다.
현존하는 로마 미술 작품 중에는 밝은 머리카락을 지닌 여성과 여신을 묘사한 작품들이 있지만, 당시 예술적 관습 때문에 그러한 묘사가 얼마나 흔했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로마 시대와 그 이후 시대 비너스 그림에서도 밝은 머리카락이 묘사되어, 금발과 아름다움 사이의 연관성을 더욱 강화했다.
새로운 유행, 비판을 받다
보수적인 도덕주의자들과 후대 기독교 저술가들은 그러한 유행을 허영과 과시의 징표로 자주 비판했다.
로마의 매춘부들은 금발 가발이나 염색한 머리와 연관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아마도 외국인 노예나 포로 여성과 관련된 고정관념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매춘부가 금발 머리를 해야 한다는 법은 현존하지 않는다.
이러한 연관성은 문서로 증명된 법적 요건보다는 유베날이 황후 메살리나Messalina가 금발 가발로 변장했다고 묘사한 데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서기 2세기 말에서 3세기 초에 로마령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 산 기독교 저술가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는 그의 저서 『여성의 복장에 관하여On the Apparel of Women』에서 머리 염색을 강하게 비판했다.
“나는 몇몇 여인이 사프란으로 머리카락을 염색하는 모습을 본다. 그들은 자기 민족조차 부끄러워하며, 자손이 게르만이나 갈리아로 가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머리카락을 그곳으로 옮기는 것이다! 불길한, 아니, 아주 나쁜 징조다. 그들은 불꽃처럼 타오르는 머리색으로 자신에게 해를 끼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화장품의 강한 성분은 머리카락을 손상시키고, 약이 없는 보습제조차 꾸준히 바르면 두피에 해롭다. 또한 머리카락의 성장과 건조를 동시에 촉진하는 햇볕의 따뜻함도 오히려 해롭다.”
테르툴리아누스의 이러한 불평은 금발 머리와 화장품의 광범위한 인기를 보여준다.
서기 1세기와 2세기 동안 금발 머리는 자연적이든 염색이든 수입된 것이든 로마 사회에서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
로마 제국의 다양한 문화는 금발에 대한 열광적인 선호에 영향을 미쳤다.
정복, 무역, 그리고 문화 교류는 로마인들에게 새로운 미의 기준을 제시했고, 수입된 가발과 염색약은 엘리트 여성들이 그러한 이상을 모방할 수 있도록 했다.
유베날과 마르티알 같은 작가들의 불평과 타키투스와 플리니우스의 관찰은 외모, 지위, 그리고 외국의 영향이 깊이 얽혀 있던 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고대 로마의 금발 열광이 남긴 지속적인 영향
로마인들의 금발에 대한 열광은 서양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금발에 대한 선호의 초기 사례 중 하나이며, 이러한 선호는 이후 유럽과 현대 역사 전반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다시 나타났다.
오늘날에도 금발은 여전히 매력과 선망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유명 여배우들은 "금발이 더 즐겁다!"라고 외치기도 한다.
로마 여성들이 염색이나 가발을 통해 이러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고대 로마에서도 헤어스타일과 의복이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였음을 보여준다.
이상은 Ancient Origins에 실린 Ramsey Hardin 투고문이라 참 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