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년 전 아케메네스 시대 어린이 집단 매장지 이스라엘서 발굴

텔아비브와 예루살렘 중간에 위치한 고대 유적 텔 아제카Tel Azekah에서 발굴 작업을 진행하던 고고학자들이 가슴 아프고 전례 없는 발견을 했다.
용도를 변경한 저수조repurposed water cistern 깊숙한 곳에서 최대 89명 유골이 뒤섞여 있는 채로 발견되었는데, 거의 모두 영유아였다.
약 2,500년 전 초기 페르시아 시대[아케메네스 왕조 시대]로 추정되는 이 집단 매장지는 고대 매장 풍습, 영아 사망률, 그리고 초기 사회가 인간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라우텐슐라거 아제카 발굴단Lautenschläger Azekah Expedition이 발굴한 이 충격적인 발견에 대한 자세한 연구 결과는 '계간 팔레스타인 탐사(Palestine Exploration Quarterly)'에 발표되었다.
이번 발견은 이 시대 매장지에서 어린아이들 유해가 발견되지 않는 오랜 고고학적 미스터리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이는 젖을 떼기 전에 사망한 유아들은 개별 매장을 받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가장 어린 사람들을 위한 용도 변경 저수조Cistern
고대 도시 아제카Azekah는 다윗과 골리앗David and Goliath의 전설적인 전투가 벌어진 엘라 골짜기Elah Valley 인근이라는 성서적 배경으로 가장 잘 알려졌다.
4,000여 년 전 초기 청동기 시대에 처음 정착한 아제카는 번영한 가나안 도시였으며, 이후 유다 왕국 중요한 요새 도시였다.
유해가 발견된 저수조는 원래 가나안 사람들이 물을 저장하기 위해 파놓은 것으로, 수 세기 동안 사용했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이 저수조는 기원전 6세기경 바빌로니아의 유다Judah 정복 이후 물 저장소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기원전 5세기 아제카가 페르시아 지배에 놓이게 되자, 이 마른 저수조는 새로운 용도로 사용되었다.
발굴 현장 바닥에서 고고학자들은 최소 68명, 많게는 89명에 달하는 유골을 발견했다.
골학 분석 결과, 놀라운 인구 통계학적 특징이 드러났다.
유골 약 90%가 5세 미만이었고, 70% 이상이 2세 미만이었다.
십 대나 성인은 극소수만 발견되었다.
유골은 대부분 원래의 위치 그대로 발견되었는데, 이는 이곳이 다른 곳에서 옮겨온 유골을 매장한 곳이 아니라 원래의 매장지였음을 시사한다.

젖떼기는 통과의례Rite of Passage였을까?
처음에는 한 장소에서 이렇게 많은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된 것을 두고 역병, 기근, 학살과 같은 재앙적인 사건을 암시하는 듯했다.
그러나 연구진은 유골에서 외상, 화상, 베인 자국 등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고, 이는 폭력, 의식적 희생, 영아 살해 가능성을 배제하는 근거가 되었다.
더욱이, 다양한 연령과 지층 구조를 통해 이 저수조가 수십 년에 걸쳐 장기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텔아비브 대학교 오데드 립쉬츠Oded Lipschits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 집단 매장지를 설명하기 위해 의미심장한 이론을 제시했다.
그들은 이 저수조가 젖을 떼지 않은 영아들을 위한 지정된 매장 공간이었다고 주장한다.
영아 사망률이 비극적으로 높았던 시대에, 이 아이들은 아직 완전한 사회적 지위를 얻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인간이 생애 중요한 단계에 이르기 전에는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받지 못해 따로 매장될 자격을 얻지 못했음을 시사한다"고 연구진은 연구 논문에서 설명했다.
"우리 의견으로는 당시에는 젖을 먹이는 어린아이들을 매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생의 초기 단계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고대 사회가 유아기와 인격을 어떻게 인식했는지에 대한 드문 통찰을 제공한다.
이는 아이가 공동체에 통합되고 독립적인 개인으로 인정받는 것이 위험한 유아기를 무사히 넘기고 이유식을 시작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짧은 생을 위한 소박한 부장품
비록 유아들이 개별 무덤에 묻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분별하게 버려진 것은 아니었다.
발굴 결과, 아이들은 소박한 부장품과 함께 묻힌 것으로 밝혀졌다.
고고학자들은 소박하게 만든 도기 항아리, 돌망치와 모르타르 망치, 그리고 구슬, 구리 귀걸이, 반지와 같은 작은 장신구들을 발견했다.

이러한 발견은 남부 레반트 페르시아 시대의 성인 매장 방식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당시 성인 매장은 일반적으로 구덩이 무덤이나 석관 무덤에 개별적으로 매장되었다.
텔 아제카의 집단 매장은 페르시아 시대의 고고학적 기록에서 "블랙홀"로 알려진 중요한 공백을 메워주며, 당시 일반적인 묘지에서 유아 유해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와 유사한 현상은 고대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보고되었다.
예를 들어 그리스의 아스티팔라이아Astypalaia 섬에는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유아 묘지가 있는데, 이곳에는 유아 매장만 있었다.
립쉬츠 교수는 이번 발굴에 대해 "몇 년 동안은 그 일에 손대지 않았다. 당시 내 아이들도 어렸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발굴된 유골들은 결국 텔아비브 대학교 인류학 연구실로 옮겨졌고, 연구팀은 그 발견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한 고된 작업에 착수했다.
텔 아제카 유적에서는 2025년 세 살배기 아이가 발견한 3,800년 된 가나안 부적을 포함하여 놀라운 고고학적 발견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라우텐슐래거 아제카 탐사대의 세심한 작업 덕분에 이 충격적인 발견은 2,500년 전 그곳에 살았던 공동체의 일상, 사회적 규범, 그리고 조용한 슬픔을 보여주는 심오한 증거로 탈바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