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적인 건축? 권력과 야합한 역사
by Kim Dovey, The Conversation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른 여러 프로젝트 말고도 두 번째 임기 동안 백악관 개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백악관 집무실은 금빛 장식으로 치장한 작은 궁전으로 탈바꿈했고, 장미 정원은 포장되었으며, 개선문 건설이 계획되고, 새로운 무도회장은 백악관보다 더 클 예정이다.
워싱턴을 왕실 "궁정"으로 바꾸는 데 왜 그렇게 공을 들였을까? 건축은 권력이 행사되고 추구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건물과 공공 공간을 다소 중립적이거나 피상적으로 보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그림의 액자처럼, 건축은 정치가 일어나는 공간을 문자 그대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규정한다.
권력의 공간과 상징은 함께 작용하여 행동을 연출하고 서사를 형성한다.
이러한 현상은 건축 역사 전반에서 찾을 수 있다. 다음은 몇 가지 세계적인 사례다.
보이지 않는 권력
베이징의 자금성Forbidden City은 여러 개 안뜰이 있는 성벽과 문으로 둘러싸인 복잡 구조로, 황제는 그 안에서 대중의 시선에서 거의 완전히 감춰져 있었다.
이곳에서 권력은 보이지 않음으로써 유지되었다.
1861년 다섯 살 동치Tongzhi 가 즉위했을 때, 그의 어머니 서태후Empress Dowager Cixi는 얇은 휘장 앞에 그를 옥좌에 앉히고 그 뒤에서 통치했다.
모두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서태후가 두 어린 황제를 통해 40년 넘게 중국을 통치하는 동안 이러한 정통성 확보 이미지는 매우 중요했다.
혁명은 새로운 이미지를 가져왔다. 자금성은 박물관으로 개방되었고, 마오쩌둥은 천안문 문에 모습을 드러냈으며(그의 초상은 지금도 남아 있다), 폐쇄적인 안뜰과는 정반대되는 광활한 톈안먼 광장이 조성되었다.
당 엘리트들은 바로 옆 중난해Zhongnanhai로 거처를 옮겼지만, 대통령궁은 없으며 현 대통령이 어디에 거주할지도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
감시를 통한 권력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되는 이스탄불 톱카피 궁전Topkapi Palace은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오스만 제국 술탄들이 거주했다.
술탄의 거처와 하렘harem이 환관, 아내, 첩, 노예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관리하기 위해 어떻게 설계되었는지, 그리고 아름답게 꾸민 접견실과 안뜰은 많은 이의 관심을 끈다.
가장 높은 건물은 정의의 탑Tower of Justice으로, 술탄의 거처와 술탄이 제국을 통치한 황실 회의실 사이에 위치한다.
술탄은 회의실 벽 높은 곳에 설치된 황금 격자 뒤에 앉아 회의 내용을 엿듣고 감독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건물은 술탄이 직접 존재하지 않더라도 권력의 도구로 작용한다. 의원들은 마치 술탄이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 했다.
이것이 바로 감시의 전지전능한 힘panoptic power이며, 더 나아가 감시 국가와 감시 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로 변모했다.
스토리 텔링
베르사유 궁전은 17세기 후반 루이 14세가 제국이 쇠퇴하면서 은둔한 곳이다.
이 건물은 방문객들이 태양왕Sun King (아폴로)에게 다가가기 위해 행성(금성, 화성, 수성) 이름을 딴 일련의 살롱을 통과하는 의례적인 동선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동선은 전쟁의 살롱Salon of War에서 방향을 틀어 거대한 거울의 방으로 이어졌다.
잘 가꾼 정원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어느 방향을 보든 자연을 통제하고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히틀러의 베를린 총통관Chancellery은 베르사유 궁전을 본떠 지었지만 훨씬 더 거대하게 설계되었다.
총통 집무실로 가는 길은 명예의 정원Court of Honor에서 시작해 그리스, 로마, 나치 양식 방들을 차례로 지나 거대하고 텅 빈 "대리석 방Hall of Marble"까지 이어지는 긴 산책로였다.
히틀러 말처럼 대리석은 단순히 감상용이 아니라 방문객들이 "미끄러운 표면 위를 이동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총통 집무실은 약 400제곱미터에 달하는 규모로 유명했다.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Oval Office는 고작 75제곱미터에 불과하다.
베르사유 궁전과 총통 집무실은 모두 권력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한 극단적인 건축물이었으며, 제국의 초기든 말기든 정권이 취약한 시기에 건설되었다.
이러한 사례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권력의 상징물이 그 정당성과 반비례한다는 사실이다.
과도한 건물 건설과 화려한 장식은 정권의 신뢰성 부족을 암시한다.
하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권력의 상징물이 완전히 사라지는 이상적인 국가는 없다.
건물은 값비싸고 관성이 크기 때문에 대부분의 새로운 지도자는 기존 권력 중심지와 그 안에 내재된 정당성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영국 총리는 연립주택terrace house에서 거주하며 업무를 보는데, 그 집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서사는 이웃들과 "공유하는" 집이라는 개념, 즉 10번지라는 주소, 동등한 집 중 첫 번째라는 의미에 있다.
신화 속 권력
가장 초기 권력 중심지 중 하나는 크레타 섬에 있는 미노아 문명의 크노소스 궁전palace" of Knossos (기원전 1900년~1375년)이다.
이 궁전은 미로처럼 복잡한 구조이며, 모든 통로가 미묘하게 얽혀 있다.
중앙에는 용도가 알려지지 않은 거대한 안뜰이 있는데, 그 크기는 백악관 연회장으로 제안된 공간과 거의 비슷하다.
크노소스에서 권력이 어떻게 행사되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왕이나 여왕의 존재, 남녀 간 권력 관계에 대한 증거는 거의 없지만, 약 500년 동안 권력이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이 유적은 후대 그리스 신화, 미노스Minos 왕 이야기 배경이 되기도 했다. 미노스 왕은 건축가 다이달로스Daedelus에게 가문의 큰 비밀, 즉 반인반우 괴물 미노타우로스minotaur를 숨기기 위해 미로를 설계하도록 시켰다고 한다.
이 신화에 따르면, 그 건물은 출입 방법에 대한 무지를 조장하고, 말할 수 없는 진실을 숨김으로써 기능을 했다고 한다.
물론, 이는 그저 신화일 뿐이다. 하지만 권력의 건축물은 그것을 의뢰하는 사람들 신화 위에 세운다.
건축은 좋든 나쁘든 권력의 정치를 구현하고, 감추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