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된 아시리아 부조에 예루살렘 가장 오래된 모습?

아시리아 왕 센나케리브Sennacherib의 궁전에 전시되었다가 산산조각난 석조 조각이 예루살렘 가장 오래된 모습을 담고 있을 수 있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원래 이라크 모술Mosul 인근 고대 니네베Nineveh에 있는 센나케리브 왕궁 왕좌실을 장식했던 이 얕은 부조bas-relief는 2016년 이슬람국가(ISIS) 무장단체에 파괴된 수천 점 귀중한 유물 중 하나였다.
그러나 사진, 그림, 그리고 이전 고고학적 기록들을 통해 학자들은 이 부조 이미지를 재검토하고 놀라운 재해석을 제시할 수 있었다.
최근 한 연구는 이 부조가 기원전 701년 아시리아의 예루살렘 원정 당시 모습을 묘사한 것일 수 있으며, 이는 예루살렘에 대한 가장 오래된 시각적 표현을 기존보다 천 년 이상 앞당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The Times of Israel) 보도 이후, 이번 발견은 새로운 해석의 중요성과 논란을 부각시키며 널리 논의되었다.
센나케리브 왕 왕좌실Throne Room에서 사라진 부조
기원전 705년부터 기원전 681년까지 신아시리아 제국을 통치한 센나케리브는 니네베에 있는 그의 광대한 궁전 단지 곳곳에 정교한 석조 부조를 제작토록 했다.
이 조각들은 근동 지역 군사 작전을 묘사하며 아시리아 제국의 지배력을 찬양하는 강력한 선전 도구 역할을 했다.
왕의 왕좌실에만 해도 페니키아, 필리스티아, 유다 왕국 전역에서 거둔 승리와 공성전을 묘사한 최소 33개 조각 패널이 있었다.
이 부조 중 상당수는 19세기에 영국 고고학자들이 발굴했다.
그중 일부는 런던으로 옮겨져 현재 브리티시뮤지엄에 소장되어 있으며, 유대 도시 라키쉬Lachish의 파괴를 묘사한 유명한 부조들도 포함된다.
하지만 모든 조각이 살아남은 것은 아니다.
학자들이 "슬래브Slab 28"이라고 부르는 부조를 포함해 일부는 이라크에 남아 있었다.
이 패널은 수십 년 동안 거의 주목받지 못하다가 결국 이슬람국가(IS)가 이라크 북부 전역 고대 문화유산을 말살하기 위한 작전 중에 파괴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파괴는 남아 있는 슬래브의 사진과 그림에 대한 재조사를 촉발했다.

급진적인 재해석
새로운 해석은 파괴되기 전 부조의 역사적 이미지를 재검토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학의 스티븐 콤프턴Stephen Compton 연구원에게서 나왔다.
콤프턴은 이 조각이 오랫동안 여긴 것처럼 블레셋 도시Philistine city 엘테케Eltekeh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기원전 701년 센나케리브의 예루살렘 포위 공격 당시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약 이 가설이 맞다면, 이 부조는 예루살렘을 묘사한 가장 오래된 시각적 표현물로, 요르단에 있는 6세기 비잔틴 모자이크인 유명한 마다바 지도Madaba Map보다 약 1,200년 앞선 것이 된다.
이 부조의 여러 특징이 컴튼의 가설을 뒷받침한다.
도시가 불타고 약탈당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전형적인 아시리아 공성전 장면과는 달리, 28번 석판에 묘사된 도시는 아시리아 군대에 포위되었지만 파괴되지 않고 온전하고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세부 사항은 센나케리브 원정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매우 유사하다.
아시리아 비문에는 센나케리브가 유다의 히스기야Hezekiah를 예루살렘 안에 가두었지만 도시 자체를 함락시키지는 못했다고 기록한다.
아시리아 연대기에는 센나케리브가 "히스기야를 새장 속 새처럼 예루살렘에 가두었다"고 자랑스럽게 언급한 내용이 있다.
성경에서도 예루살렘이 함락되지 않고 끝난 공성전에 대한 내용이 유사하게 묘사된다.
컴튼에 따르면, 이 부조에는 건물 꼭대기에 서서 왕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는 깃발을 든 고독한 인물이 묘사된다.
그는 이 인물이 아시리아 침략 당시 유다 통치자였던 히스기야 왕King Hezekiah을 나타내는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건축적 단서
부조의 건축적 세부 사항은 예루살렘을 묘사한 것이라는 해석을 더욱 뒷받침한다.
컴튼은 독특한 코벨탑corbelled towers, 즉 기단보다 윗부분이 바깥쪽으로 돌출된 구조물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특이한 디자인은 유다 도시 라키쉬를 묘사한 부조를 포함해 몇몇 아시리아 부조에서만 나타난다.
컴튼은 유다와 관련된 여러 장면에서 동일한 건축 양식이 나타난다면, 이는 28번 석판 역시 유대 도시, 어쩌면 예루살렘을 묘사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또한, 장면 구도는 성벽과 주요 건물 사이에 넓은 공터를 보여주는데, 컴튼은 이를 성전산Temple Mount과 다윗 성City of David을 분리하는 마른 해자dry moat로 해석한다. [해자는 크게 물을 채우는 것과 마른 해자로 구분한다.]
이러한 구도는 아시리아 군대가 원정 당시 이용한 북쪽 접근로와 일치한다.

하지만 학자들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모든 전문가가 이러한 재해석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이파Haifa 대학교 아시리아학자 다니엘 칸Danel Kahn 교수는 컴튼의 결론을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에 보도된 칸 교수 발언에 따르면, 그는 부조에 묘사된 풍경이 예루살렘을 둘러싼 산악 지형이 아니라 블레셋의 저지대 평야lowland plains of Philistia와 더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대신 칸Kahn은 이 부조가 아시리아를 지지한 후 센나케리브에 의해 권력을 되찾은 또 다른 블레셋 도시인 에크론Ekron을 묘사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칸은 또한 이 부조가 엘테케 근처에서 아시리아군과 이집트군 사이의 전투를 묘사한 장면들과 같은 벽에 나타난다는 점을 지적하며, 묘사된 도시가 같은 지역에 위치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다른 학자들도 여전히 확신하지 못한다.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아시리아학자 슈테판 마울Stefan Maul은 이 부조를 예루살렘으로 보는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고 밝혔다.
이 논쟁은 고대 예술, 특히 원본 유물이 파괴되었을 때 해석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보여준다.

ISIS가 파괴한 것을 복원하다
오늘날 고고학자들은 니네베에서 파괴된 부조 조각들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한다.
2017년 모술에서 이슬람국가(ISIS)가 패배한 이후, 국제 연구팀은 궁전 잔해를 세심하게 기록하고 보존했다.
연구원들은 파괴된 조각에서 8,500개 이상의 큰 조각과 10,000개 이상의 작은 조각을 포함해 수천 개 조각을 수습했다.
복원 작업은 느리고 고된 과정이다.
각 조각은 부조 일부를 재조립하기 전에 세척, 측정, 목록화 및 보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막대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고고학자들은 이러한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믿는다.
니네베 부조 파괴는 이 지역 고대 유산을 말살하려는 의도였다.
파편들을 복원하는 것은 역사적 기록과 그 기록을 남긴 문명을 영원히 보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랜 세월이 흐를지도 모르는 논쟁
28번 석판이 예루살렘을 묘사한 것인지 여부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미해결 상태로 남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논쟁은 아시리아 궁전 부조가 지닌 특별한 역사적 가치를 부각한다.
이 부조들은 제국의 선전과 고대 근동의 도시, 건축물, 전쟁에 대한 놀랍도록 세밀한 묘사를 결합한다.
만약 컴튼의 해석이 최종적으로 옳다고 판명된다면, 니네베에서 발견된 파괴된 부조는 예루살렘을 묘사한 가장 오래된 시각적 자료가 될 것이며, 아시리아인들이 성경 역사상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인 예루살렘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에 대한 귀중한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이 산산조각난 석판은 계속해서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오랫동안 사라졌다고 여긴 유물에서 얼마나 많은 지식이 새롭게 드러날 수 있는지 학자들에게 일깨운다.
출처: 암스트롱 성서 고고학 연구소Armstrong Institute of Biblical Archae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