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을 지난 중국 고고학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다시 가을이 찾아왔다.
하남성河南省 삼문협시三门峡市 민지현渑池县 앙소촌仰韶村[양샤오촌]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계화 향기를 실어 나른다.
105년 전, 바로 이곳에서 아름답고 소박하면서도 정교한 무늬를 새긴 채색 도기들이 발굴되어 앙소 문화仰韶文化[양샤오 문화]의 장엄한 면모를 세상에 드러냈고, 이는 중국 근대 고고학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최근 양샤오촌 국가 고고 유지 공원에 고고학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된 '백주년 고고 기념공원'이 공식 개장해 지난 한 세기 동안 이 땅에서 펼쳐진 문명 탐사 발자취를 되새기게 한다.

양샤오 비밀 발굴
백주년 고고학 기념공원 내 "땅을 묻고 하늘을 바라보며 - 중국 고고학 영웅 100년" 전시관에 들어서면 곧바로 "양샤오 백주년 고고 기록 보관소"라는 체험형 전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많은 관광객이 이곳에 멈춰 서서 칩이 내장된 "기록 카드"를 슬롯에 넣어 양샤오 마을 다양한 발굴 현장을 화면에 띄워본다.
1921년 10월, 중국 정부 허가를 받아 스웨덴 지질학자 요한 군나르 안데르손[안특생安特生]과 중국 학자 위안푸리[원복례袁复礼] 등이 양샤오 마을에 와서 36일간의 본격적인 고고 발굴 작업을 진행했다.
그들은 17곳 유적을 발굴해 정교한 도기, 석기, 그리고 뼈와 조개껍질로 만든 도구 등 귀중한 유물들을 대량으로 발굴했다.
이 발굴을 통해 새로운 유형의 선사 시대 문화가 발견되었으며, 유적 이름을 따서 '양사오 문화'라고 명명했다.
하남성문물고고학회河南省文物考古学会 집행회장 유해왕刘海旺[류하이왕]은 "양사오 문화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고고학적 문화 명칭으로, 중국 선사 시대 문화 연구에 광범위한 전망을 열어주었다"고 말했다.
이는 계급 사회 이전에 중국에 고도로 발달된 독특한 신석기 문화가 존재했음을 증명하며, "중국에는 석기 시대가 없었다"는 이론을 반박했다.
학계에서는 양사오촌 유적 최초 발굴이 현대 중국 고고학의 공식적인 시작을 알리는 사건으로 일반적으로 인정한다.
당시에는 신문화 운동新文化运动이 한창이었고, 민주주의와 과학을 옹호하는 지식인 해방 운동 영향으로 고사변파古史辨派가 대표하는 "의고 사조疑古思潮"가 역사학계에 대두했다.
해외 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받아들인 '중국 문화의 서양 기원설'은 국내 학자들로부터도 상당한 지지를 얻었다.
중국 사회과학원 위원이자 중국 고고학회 이사장 천싱찬陈星灿은 "고대 중국에는 어떤 인문사회적, 정치적 환경이 존재했을까? 중국 문화 기원은 언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간절히 원했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중국 고고학자들은 "온갖 곳을 샅샅이 뒤져" 뿌리를 찾고, 역사 기록을 검증하고, 역사적 사실을 보완하는 임무를 맡았다.
1926년, '중국 고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지李济[이제]는 산서山西 하현夏县 서음촌 유지西阴村遗址를 발굴하여, 탄탄한 현장 자료를 바탕으로 채색 도기 문화 기원을 탐구했다.
1928년, '갑골문자 4대 거장甲骨四堂' 중 한 명인 동작빈董作宾은 하남河南 안양安阳 소둔촌小屯村에서 첫 삽을 떴고, 이로써 은허 과학 발굴이 시작했다.
1930년에는 산동山东 장구성자애 유지章丘城子崖遗址 발굴이 시작되어 양사오 문화와는 또 다른 신석기 문화인 '룽산문화龙山文化' 진면목이 드러났다.
한 세기가 흘렀다.
이제와 양사영梁思永부터 하내夏鼐와 소병기苏秉琦, 그리고 다시 엄문명严文明과 이백겸李伯谦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대 중국 고고학자들은 초심을 잃지 않고 시련을 딛고 일어서서 중요한 유적들을 발굴하고, 고고학적 시대 구분 기준을 정립하고, 발전 계보를 규명하며, 고대부터 현재까지 중국 문화 발전이 끊임없이 이어졌음을 증명해냈다.
"1921년 이후 우리는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 역사를 발굴했을 뿐만 아니라, 하, 상, 주 왕조 이후 역사에도 많은 부분을 추가했다"고 천싱찬은 말했다.
오늘날 양샤오 마을에는 안데르손과 원푸리가 머무른 안뜰이 복원되어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안뜰의 석류나무에는 선명한 붉은색 석류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기원의 추적
"이전에는 일부 학자가 안양安阳 소둔小屯 은허殷墟에서 발굴된 소둔 은허 문화小屯殷墟文化를 중국 최초 문명 시초로 여겼다. 그러나 소둔 은허 문화는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다. 이를 중국 문명 시초로 보는 것은 마치 전설 속 노자가 흰 수염을 달고 태어났다는 이야기와 같다"고 저명한 고고학자 하내는 그의 명저 『중국 문명의 기원中国文明的起源』에서 지적했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중국이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니었지만, 중국 문명은 여전히 중국 땅에서 기원하고 발전했습니다."
중국은 백만 년 인류 역사, 만 년 문화사, 그리고 오천 년이 넘는 문명사를 자랑한다. 찬란한 중국 문명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고 발전했을까?
근대 중국 고고학 탄생 이래, 과학적 증거를 통해 문명 흔적을 밝히는 것은 중국 고고학자들의 일관된 학문적 목표였다.
"선사 시대 중국 문화 전체 양상에 관해 학계는 차례로 세 가지 중요한 이론을 제시했다"고 백주년 고고 기념 공원 가이드인 왕천은 말한다.
소병기는 문화를 '지역 유형'에 따라 6개 지역으로 나누고 '별이 빛나는 하늘[满天星斗]' 이론을 제시했다.
엄문명은 중원 문화권을 '심장花心', 주변 문화권을 '첫 번째 꽃잎第一层花瓣', 가장 바깥쪽 문화권을 '두 번째 꽃잎第二层花瓣'으로 보는 '쌍화[重瓣花朵]' 이론을 제시했다.
장광지[징광직张光直]는 '상호작용 고리[相互作用圈]'라는 관점에서 각 지역 간 상호작용을 관찰했다.
중국 인민대학교 역사학과 고고학·박물관학 교수인 한젠예韩建业는 "약 6천 년 전, 양샤오 문화의 묘저구庙底沟 양식이 외부로 영향력을 행사하여 후대 통일 중국 건설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고, 문화적 의미에서 '초기 중국 문화권' 또는 '초기 중국'을 형성했다"고 말했다.
중국의 5천 년이 넘는 문명 역사를 학문적으로 충분히 입증하기 위해, 제9차 5개년[九五] 계획 기간 중 국가 핵심 과학기술 사업 중 하나였던 '하-상-주 단대 프로젝트[夏商周断代工程]'가 1996년에 시작되어 오랫동안 학계 난제였던 하, 상, 주 왕조의 연대기적 틀을 확립했다.
2004년에는 '중국 문명 기원 추적 프로젝트[中华文明探源工程]'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어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학계는 저장성 량주浙江良渚, 산시성 타오시山西陶寺, 산시성 시마오陕西石峁, 허난성 얼리터우河南二里头와 같은 도시 유적뿐 아니라 각 지역 중심 유적에 대한 발굴과 연구를 심화해 중국 문명의 기원, 형성, 초기 발전 단계를 더욱 명확하게 밝혀내고 있다.
왕웨이王巍 중국사회과학원 위원이자 허난성 문물고고연구원河南省文物考古研究院 원장은 "우리의 연구를 통해 중국 문명은 1만 년 전 기원하여 8천 년 전 발전하기 시작했고, 6천 년 전 가속화했으며, 5천 년 전 문명사회에 진입했고, 4천3백 년 전 중원 부흥기를 거쳐 변혁기를 맞았으며, 4천 년 전 왕조가 수립되고, 3천 년 전 왕권이 공고해졌으며, 2천2백 년 전 통일된 다민족 국가를 건설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왕웨이는 탄탄한 고고학적 자료와 종합적인 연구 결과가 5천 년이 넘는 중국 문명의 역사가 진실되고 믿을 만한 역사임을 증명한다고 밝혔다.
현재 '중국 문명 기원 추적 프로젝트' 6단계, '고고 중국考古中国'이라는 주요 프로젝트, 그리고 하·상 문명 연구 프로젝트가 모두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중국 고고학자들은 삽을 펜 삼아, 황토를 두루마리 삼아 "무엇이 중국을 중국답게 만들고, 무엇이 중국 문화의 자신감을 뒷받침하는가?"라는 우리 시대 질문에 힘 있게 답을 내놓고 있다.
새로운 영역으로의 경계 확장
얼마 전, 허난성 정저우에서 8천 년 전에 산 가호 선민贾湖先民 얼굴 복원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번 얼굴 복원은 가호 유적에서 발굴된 인골 표본을 기반으로, 인류학적 분석과 고정밀 3차원 얼굴 복원 기술을 활용하여 이루어졌으며, 허난성 문유고고연구뤙, 길림대학교 생물고고학연구실 등 여러 기관이 공동으로 완성했다.
길림대학교 생물고고학연구실 주훙朱泓 교수는 "골반뼈 형태 분석, 치아 마모도 평가, 과학적 데이터 변환 분석을 통해 복원된 인물이 25~30세 젊은 남성임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얼굴 복원 단계에서 두개골 주요 특징점 28개를 선정해 얼굴 윤곽을 세밀하게 조각했다.
이번 복원 작업은 대중과 선사시대 조상을 시간적으로 연결해주는 획기적인 과학적 고고학 연구다.
새로운 시대 중국 고고학은 '기술'로 가득 차 있다
천싱찬(Chen Xingcan)은 "최근 중국 고고학은 여러 분야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학문 체계가 더욱 완벽해졌으며, 다학제적 융합이 중국 고고학의 성숙한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고인류, 고동물, 고식물학, 고대 DNA, 고환경, 탄소-14 연대 측정법… 다양한 기술적 방법이 연구에 널리 적용되면서 중국 고고학 범위는 크게 확장했다.
동시에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AI) 활용도 가속화하며, 원격 탐사를 통한 유적 식별이나 유물 파편의 가상 복원과 같은 분야에서 그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
허난대학교 컴퓨터정보공학과 장충성张重生(Zhang Chongsheng) 교수는 "과거에는 흩어진 갑골문을 연결하고 복원하는 작업이 거의 전적으로 학자들의 기억과 오랜 경험에 의존했지만, 이제 AI가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연구팀이 개발한 "AI 결합 및 대조" 소프트웨어가 여러 성과를 거두어 갑골문자 대조 및 대조 작업의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켰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세대 중국 고고학자들이 광활한 세계 무대에 발을 내딛고 있다
2026년 9월 24일, 국가문물국은 "고고 중국" 주요 사업 주요 진척 상황을 발표하는 회의를 개최하고, 이집트 몬투 신전 유적, 튀니지 벤 아루스 삼림 유적, 키르기스스탄 홍강 유적까지 세 곳의 중국-해외 공동 고고학 프로젝트 결과를 공개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중국 고고학 기관들은 관련 국가의 고고학 및 문화유산 기관들과 지속적으로 공동 조사, 탐사, 발굴 및 연구를 진행했으며, 문물 보호 및 유적 전시와 같은 분야에서 협력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다.
왕웨이 교수는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제14차 5개년 계획[十四五]' 기간 동안에만 우리나라 26개 고고학 기관 및 대학이 43개 해외 기관과 협력 관계를 맺고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유럽 25개 국가 및 지역에서 인류 기원, 고대 세계 문명, 실크로드 고고학 등 최첨단 국제 학문 분야를 아우르는 35개 공동 고고학 프로젝트를 수행했다"고 밝혔다.
점점 더 많은 고고학 연구 결과가 발굴 현장을 넘어 대중에 공개되고 있다.
최근 국경절 연휴 기간 동안 정저우 상두 수원 거리 공동묘지郑州商都书院街墓地, 궁이 쌍화이수 유적巩义双槐树遗址, 싱양 청타이 유적荥阳青台遗址의 세 곳 '도시 고고학 체험 교실'이 예정대로 개관하여 고고학을 더욱 친숙하고, 구체적이며, 체험적인 학문으로 만들었다.
올해 4월, 은허박물관에서는 상나라의 전설적인 인물, 청동 주조, 음식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 그림책 시리즈 "유적 대장과 함께하는 은허 탐험"이 출간되어 어린이들에게 은허박물관을 이해하는 "첫걸음"을 내딛게 해 주었다.
전국 각지 박물관들은 젊은이들을 위한 "휴대용 문화"를 만들기 위해 고고학 블라인드 박스나 골동품 냉장고 자석과 같은 독창적인 문화 창작 상품을 출시해 꾸준히 인기를 얻는다.
특히 대규모 고고학 유적이 밀집한 허난성에서는 삼문협三门峡-뤄양-정저우-카이펑-안양 세계적 및 고고학 유적 회랑 조성 사업이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다.
국가급 고고 유적공원은 이미 일상생활에 녹아들어 시민과 관광객들이 역사를 직접 체험하고 문화유산을 접할 수 있는 인기 명소로 자리 잡았다.
광활하고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은 심오한 문명을 품고 있다.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땅은 고요하고 문명의 심연을 향한 탐구는 계속된다… (기자 구이쥐안, 위안웨밍)
국뽕 가득한 이상 아티클은 아래 신화통신이 저본이다.
중국 고고학이 어디로 향하는지 보려면 저 국뽕을 제대로 음미해야 한다.
https://www.xinhuanet.com/20261027/023c577125094a9f9d6adf9946b0e6fe/c.html
叩土证史释春秋——写在中国现代考古学诞生105周年之际-新华网
又是一年深秋。 微凉的风吹过河南省三门峡市渑池县仰韶村,送来缕缕桂花香气。 105年前,正是在这里,一件件优美古朴、图案绚丽的彩陶破土而出,仰韶文化的灿烂画卷自此铺
www.xinhua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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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근대 고고학 시작은 1921년에 닻을 올린 중국의 그것에 견주어 비록 일본이라는 프리즘을 통하기는 했지만 한국이 더 빠르다는 사실을 어찌 봐야 하는가?
근대적인 의미에서 한국 고고학은 1910년 이전에 이미 곳곳에서 싹을 틔우기 시작해 1906년인가 1907년에는 경주 검총 발굴을 했으며, 1910년 한일합방을 계기로 본격화한다.
세키노 다다시가 주도한 초기 고고학은 1915년, 흑판승미 곧 구로이타 가쓰미가 조선에 상륙하면서 대변모를 겪게 되거니와, 이 무렵만 해도 중국에서는 고고학은 삽조차 뜨지 않은 시점이었다!
먼저 스타트를 끊은 한국고고학은 백 년이 흐른 지금, 중국 발바닥도 따라가지 못한다.
저 아티클에서 소개하는 중국 고고학의 최근 흐름, 곧
고인류, 고동물, 고식물학, 고대 DNA, 고환경, 탄소-14 연대 측정법… 다양한 기술적 방법이 연구에 널리 적용되면서 중국 고고학 범위는 크게 확장했다.
이 대목에서 한국고고학과 중국고고학은 건럴 수 없는 비무장지대가 형성되고 말았다.
저 말이 단순한 수식이나 과장이 아님은 하루가 멀다 하고, 중국 고고학이 네이처 사이언스를 장식하는 논문을 쏟아낸다는 점에서 우뚝하다.
한국고고학? 네이처 사이언스는 고사하고, 그 아류 잡지에도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