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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수호鸡首壶, 한반도도 물들인 닭대가리들의 향연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5. 1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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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박물관에 전시된 다양한 종류 닭머리 모양 주전자 계수호鸡首壶


(양쯔만보, 2024년 4월 13일 16:24) "소꼬리보다는 닭머리가 낫다[宁为鸡首不为牛尾]"라는 속담은 육조시대 청자 세공인들이 닭머리 장식에 얼마나 열정을 쏟았는지 잘 보여준다.

그들은 흙을 빚어 닭머리 모양으로 만들어 주전자에 붙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장식용이었지만, 점차 부리를 벌려 물을 따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주전자가 탄생했다.

육조시대 이 닭머리 주전자 계수호鸡首壶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술병[酒壶]과 찻주전자[茶壶]의 원형이 되었다.

남경육조박물관南京六朝博物馆에서는 다양한 청자 닭머리 주전자青瓷鸡首壶를 감상할 수 있다.

닭머리 모양 주전자는 육조박물관에 전시된 수많은 문물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유물 중 하나다.

전시관 1층과 2층에서는 남경의 우화대雨花台 등지를 비롯한 육조시대 무덤에서 발굴된 닭머리 모양 주전자들을 볼 수 있다.

이 주전자들은 크기는 다양하지만 모양은 비슷하다.

'원반 주둥이 주전자[반구호盘口壶]'를 기반으로 몸통 한쪽에는 닭머리[鸡首]가, 다른 한쪽에는 손잡이[把手]가 달려 있다.

전문가들은 닭머리 모양 주전자가 육조 청자의 전형적인 예이며 술잔, 다기, 심지어는 장례용품으로도 사용되었다고 설명한다.

문물 전문가들은 이러한 형태의 주전자가 주둥이가 없어 따르기 불편했던 이전 시대 항아리[壶]와 단지[罐]의 불편함을 해소해 주었다고 본다.

손잡이가 달린 물주전자의 가장 오래된 예로, 몸체의 손잡이를 잡고 용기를 살짝 기울이면 주둥이에서 물이 흘러나온다.

초기에 닭머리 모양 주전자는 속이 비어 있지 않아 물을 따를 수 없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진东晋 시대에 이르러서야 닭머리 부분이 속이 비어 주전자 내부와 연결되는 형태로 바뀌었다.

동시에 주전자 모양도 사실적인 형태에서 과장된 형태까지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손잡이는 점차 길어지면서 띠 모양에서 용 모양으로 바뀌었고(제齐·양梁·진陈), 몸체는 납작하고 짧고 둥근 형태에서 가늘고 우아한 형태로 진화했다.

윤곽선은 딱딱한 호에서 더욱 다양하고 아름다운 곡선으로 바뀌었고, 유약은 단색 청화에서 갈색 반점이 있는 유약으로, 그리고 흑유 닭머리 주전자[흑유계수호黑釉鸡首壶]도 등장했다.

동오东吴 시대부터 남조南朝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는 끊임없이 진화했으며, 이는 당나라와 송나라 시대 주전자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육조 시대 디자인가들이 닭머리 모양을 선택한 이유는 고대에 닭이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한漢나라 시대부터 닭은 문文·무武·용勇·인仁·신信이라는 다섯 가지 덕목을 갖춘 "덕스러운 새[德禽]"로 여겨졌다.

한시외전韩诗外传에서는 닭 머리에 있는 벼슬[冠]은 문덕文德이요, 발에 있는 발톱은 무덕武德이며, 적 앞에서 용감하게 맛서는 행동은 용덕勇德이며, 동족과 먹이를 나누는 습성은 인덕仁德이며, 밤에는 보초를 서고 새벽에 우는 습성은 신덕信德을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양진两晋[서진과 동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무덤에서는 수많은 도자기 닭[陶瓷鸡]과 닭장[鸡舍]이 발굴되었다.
 
저 계수호를 부르는 말이 한국고고미술사에서는 계수호라는 말로 통일되어 있다시피 하지만, 중국에서는 저 말과 더불어 계수권鸡首罐과 같은 말을 쓰기도 한다. 

 

저 닭대가리는 한반도 역시 이내 물들이게 되는데, 특이한 점은 신라나 가야문화권에서는 아직 발견 사례가 없고 백제문화권만 집중한다. 

 

송파구 석촌고분군에서 발굴된 12호 널무덤 출토 흑유계수호

 

사진은 석촌동 출토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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