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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직하게 판 엘 미론 동굴이 폭로한 4만 년에 걸친 이베리아 반도 선사시대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6. 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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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칸타브리아Cantabria 지방 엘 미론 동굴El Miron cave 입구에 서 있는 로렌스 스트라우스Lawrence Straus. 사진 제공: 뉴멕시코 대학교

 
by 메건 보더스Megan Borders, 뉴멕시코 대학교

지난 30년간, 한 고고학자 팀은 직감,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최첨단 방법과 기술을 바탕으로 고고학계 가장 기념비적인 발견들을 했다.

엘 미론El Miron 동굴 발굴 프로젝트는 연구 책임자들에게 장기적인 헌신의 결실이었으며, 새로운 발견 하나하나와 고대 조상들의 삶과 시대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이 원동력이 되었다.

그들의 끈질긴 현장 및 실험실 작업, 학제 간 및 국제적 협력, 그리고 수많은 논문 발표는 엘 미론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완벽한 선사시대 유적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뉴멕시코 대학교 로렌스 스트라우스Lawrence Straus 석좌교수와 스페인 산탄데르에 있는 칸타브리아 대학교 마누엘 곤살레스 모랄레스Manuel González Morales 교수는 1996년 프로젝트 시작부터 공동 책임자로 활동했다.

최근 두 교수는 포괄적인 연구의 주요 결과를 종합하여 뉴멕시코 대학교 인류학 연구 저널(Journal of Anthropological Research)에 "이베리아 선사시대 4만 년을 들여다보다: 스페인 칸타브리아 지방 엘 미론 동굴의 장기 발굴"이라는 제목의 특집 논문을 발표했다.

이 동굴은 발굴 초기부터 인류학자들이 마지막 네안데르탈인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인류 거주 역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귀중한 과학적 발견들을 제공했다.

스트라우스와 곤살레스 모랄레스는 연구 결과를 기록하고 발표함으로써 스페인 박물관들이 수만 년에 걸친 인류 역사의 유물을 보존할 뿐만 아니라 그중 일부를 대중과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엘 미론은 고고학에서 말하는 '지속적인 장소persistent place', 즉 4만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람들이 거주하며 다양한 활동을 반복적으로 한 유적"이라고 스트라우스는 말했다.

이 유적에 대한 분석 결과 중기 구석기 시대Middle Paleolithic, 초기 후기 구석기 시대Early Upper Paleolithic, 그라베티안Gravettian, 솔루트레안Solutrean, 마그달레니아Magdalenian, 중석기 시대Mesolithic,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등 9개 주요 고고학적 및 문화적 시대에 걸친 생활 흔적이 발견되었다.

발굴, 분석 및 기록 작업에 참여한 팀은 수년에 걸쳐 전 세계 많은 고고학자와 학생으로 구성되었으며, 뉴멕시코 대학교(UNM)에서는 학부생부터 박사 과정 학생까지 약 25명 학생이 참여했다.

레베카 슈벤들러Rebecca Schwendler, 존 리세토John Rissetto, 유이치 나카자와Yuichi Nakazawa, 리사 폰테스Lisa Fontes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박사 학위 논문을 제출했다.

30년이 넘는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연구자들은 엘 미론 유적, 주변 지역, 그리고 서유럽 전역의 환경, 인구 구성, 그리고 적응 방식에 대한 이해를 점진적으로 재정립했으며, 이로써 엘 미론 동굴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엘 미론은 오늘날까지도 학생들과 전문가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발견을 안겨주기 때문에 여전히 큰 관심을 받는다.

발견 연대표: 시작

엘 미론 동굴은 스페인 칸타브리아 지방 아손 강Asón River 계곡 위, 비스케이 만 Bay of Biscay 근처 칸타브리아 산맥Cantabrian Cordillera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1903년 지역 고고학자들이 처음 발견한 이 동굴은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두꺼운 퇴적물로 채운 깊은 석회암 동굴이다.

지속적인 연구 프로젝트 덕분에 우리는 이 동굴에서 수천 년 된 벽화, 뼈와 돌로 조각한 휴대용 예술품, 넓고 반복적으로 사용한 현관vestibule의 생활 공간, 19,000년 된 마들렌 문화 시대Magdalenian-period의례 매장지, 그리고 최근에는 목동들이 염소를 가둔 우리 등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굴 입구는 산비탈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주변 산과 아래 계곡 탁 트인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눈에 띄는 특징이다.

동굴 입구는 넓고 햇볕이 잘 드는 건조한 현관이 있으며, 대부분 발굴 작업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스트라우스는 1973년 시카고 대학교에서 스페인 북부의 2만 5천 년에서 2만 1천 년 전 솔루트레 문화Solutrean period에 대한 박사 학위 논문 연구를 하던 중 처음으로 엘 미론 동굴을 방문했다.

그는 "한 젊은 박사 과정 학생이 희미한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수십 년 동안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동굴을 탐험한 그때부터 지금까지 꽤 긴 여정이었고,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말했다.

23년 후인 1996년, 스트라우스는 오랜 동료이자 친구인 곤살레스 모랄레스와 함께 호기심에, 그리고 온전한 고고학적 유물을 찾을 수 있을지 시험해 보기 위해 엘 미론 동굴 발굴을 시작했다.

이후 30년 동안 그들이 발굴한 유물들은 유럽 조상 인구에 대한 과학자들과 전 세계의 이해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스트라우스, 곤살레스 모랄레스, 그리고 그들의 공동 연구자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가속기 질량 분석법과 같은 매우 정밀한 기술을 사용하여 동굴에 나타난 선사 시대 연대를 측정하기 위해 102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값을 얻었다.

연구팀은 수십만 점 석기 및 뼈 유물과 동물 유해뿐만 아니라 말과 붉은 사슴 이미지를 포함한 여러 암벽과 휴대용 예술 조각품도 분석했다.

연구팀은 인간, 동물, 어류 유해, 퇴적물, 심지어 인간 치아 치석에서 추출한 DNA와 인간 및 동물 뼈와 치아의 안정 동위원소를 분석했다.

이 모든 증거는 특히 마들렌 문화와 신석기 시대에 동굴 역사가 얼마나 풍부했는지를 보여준다.

스트라우스에 따르면, 긴 빙하기 외에도 신석기 시대 지층에서는 약 6,500년 전 북대서양 스페인에서 가장 초기에 나타난 밀 농업, 가축 사육, 도기 증거가 발견되었으며, 이후의 순동 시대Chalcolithic[금석병용기]와 청동기 시대 지층에서는 수많은 대형 저장 구덩이와 구리 송곳을 포함한 야금술 흔적까지 발견되었다.

기초적인 발견

발굴 초기부터 스트라우스, 곤살레스 모랄레스, 그리고 그들의 연구팀은 초기 호모 사피엔스의 사냥, 낚시, 채집 활동에 대한 증거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발굴 및 분석된 유물들은 전형적인 유물부터 독특한 유물까지 다양했다.

전형적인 유물에는 구멍이 뚫린 엘크와 아이벡스 이빨, 조개껍질, 슬레이트slate와 같은 개인 장신구, 현지에서 채취한 돌과 수입한 플린트로 만든 도구, 그리고 동물 유해가 포함되었다.

또한 휴대용 예술품, 프랑스 보르도 근처 북쪽으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유적에서 발견된 갈고리 모양 창 던지기spear-thrower 도구, 그리고 동굴 입구 뒤편 인골 매장지와 같은 독특한 유물 유적도 있었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플린트를 도구와 사냥 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했는데, 플린트는 쉽게 날카로운 조각이나 칼날로 부서지기 쉬웠기 때문이다.

스트라우스는 "동굴 주변에는 좋은 플린트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50~6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플린트를 가져왔고, 긁개scrapers와 같은 다른 종류의 도구는 현지의 규암quartzite과 이암mudstone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수많은 동물 뼈와 석기 조각을 발굴했는데, 이에는 몸돌cores, 박편flakes, 소형 날, 화덕, 그리고 돌과 사슴뿔로 만든 화살촉 등이 포함되며, 대부분 솔루트레 문화와 마그달레니아 문화 시대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증거들은 붉은 사슴(엘크), 아이벡스, 말, 샤모아chamois, 노루 등을 체계적으로 사냥하고 연어와 송어를 낚시한 흔적을 보여준다.

또한, 동굴 초기 거주자들이 현관에 어떻게 생활 공간을 구성했는지를 보여주는 돌담 잔해도 발견했다.

이 연구는 뉴멕시코 대학교 인류학과 교수이자 동물상 분석 전문가인 에밀리 존스Emily Jones와 공동으로 진행되었다.

이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연구팀은 각 시대 일상생활과 생존 방식을 설명할 수 있으며, 빙하기와 그 이후 농업에 기반을 둔 인류가 동굴을 어떻게 활용하고 생계를 유지했는지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이 유적에서 발견된 가장 주목할 만한 휴대용 예술품 중 하나는 거의 완전한 형태의 붉은 사슴 어깨뼈로, 칸타브리아의 하부 마그달레니아 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붉은 사슴 암컷의 줄무늬 문양이 어깨뼈와 동굴 벽면에 새겨 있다.

이는 엘 미론 붉은 여인El Mirón Red Lady 시대에 이 지역 부족의 상징적인 문양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동굴 입구의 생활 공간 곳곳에서는 화덕, 물을 끓이는 데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불에 탄 돌, 그리고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동굴에 거주하며 도구를 만들고, 가축화한 양, 염소, 소와 같은 사냥감을 도축하고, 동굴 안에서 음식을 조리했음을 보여주는 생활 흔적들이 발견되었다.

모든 증거는 네안데르탈인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마지막 빙하기 가장 추운 시기부터 홀로세 초기의 오늘날보다 더 따뜻한 시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기후 및 환경 조건에서, 다양한 문화 시대에 걸쳐 장기 및 단기 거주가 번갈아 나타났음을 보여준다(일부는 계절적 거주였고, 다른 일부는 거의 연중 내내 거주했다).
 

붉은 여인의 유골. 사진 제공: 뉴멕시코 대학교


엘 미론의 붉은 여인: 획기적인 발견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 따르면, 이 중년 여성은 약 1만 9천 년 전 마들렌 문화 시대에 스페인 북부에서 사망했다.

2010년, 스트라우스 교수와 스페인 학생(현재 칸타브리아 대학교 교수)인 다비드 쿠엔카-솔라나David Cuenca-Solana가 엘 미론 동굴 내 매장지에서 그녀의 부분 유골을 발견했다.

쿠엔카-솔라나 교수는 이고르 구티에레스-주가스티Igor Gutiérrez-Zugasti 교수와 함께 이 프로젝트 공동 책임자를 맡고 있다.

스트라우스 교수는 "하악골과 경골을 포함한 최초의 인골을 발견한 후, 동굴 입구 뒤쪽 남동쪽 모퉁이를 계속 발굴하면서 매장층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매장층은 선명한 붉은색을 띠고 있으며 적철석 결정hematite crystals으로 반짝입니다."

스트라우스는 직감적으로 천장에서 떨어진 거대한 돌덩이 뒤를 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곤살레스 모랄레스가 그 돌덩이 표면에 새겨진 선들을 발견한 이후로 그들의 관심은 계속 이어졌는데, 그 선들은 온전한 고고학적 지층 위로 뻗어 있었다.

스트라우스는 "동굴 천장의 암반에서 떨어져 나온 평평한 돌 표면은 동굴 입구를 향해 약 40도 각도로 놓여 있었고, 오후 늦게 햇빛이 직접 비추는 곳이었다. 이 표면에 새긴 문양은 마그달레니아인들이 새긴 것"이라고 말했다.

발굴을 통해 완전히 드러난 이 문양들은 여러 개 가는 선으로 이루어진 V자 모양이었는데, 이는 구석기 시대 후기 암각화와 휴대용 예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티프인 여성 생식기를 나타내는 것일 수 있다.

고고학자들은 새긴 돌덩이가 매장 직전에 떨어진 지층과 그 후에 새긴 돌덩이를 덮은 지층 모두의 연대를 측정했는데, 이는 암각화 연대를 확실하게 판별할 수 있는 드문 사례다.

연구 결과는 새긴 돌덩이가 매장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으며, 아마도 "여기에 여자가 묻혔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스트라우스와 곤살레스 모랄레스는 황토로 물든 새긴 돌덩이가 무덤 표지석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스트라우스는 매장된 유골을 "엘 미론의 붉은 여인Red Lady of El Mirón"이라고 명명했는데, 이는 유골뿐 아니라 매장층 퇴적물과 매장지 옆 돌덩이 안쪽 면이 붉은 황토red ochre로 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름은 또한 유럽에서 발견된 최초의 빙하기 인류 매장지인 "파빌란드의 붉은 여인Red Lady of Paviland"을 떠올리게 한다.

파빌란드의 붉은 여인은 1823년 웨일스 한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이 여성은 돌덩이 뒷면과 동굴 벽 사이 작고 안전한 공간에 태아처럼 웅크린 자세로 매장되었다.

붉은 안료를 분석한 결과, 전문가들은 이 황토가 현재 칸타브리아 해안 근처 약 25km 떨어진 암석 노두에서 채취된 것임을 밝혀냈다.

이는 (아마도 여성의 친척일 가능성이 있는) 누군가가 그곳까지 걸어가 황토를 가져와 매장에 사용했음을 의미한다.

물론 스트라우스와 그의 동료들은 그녀가 왜 특별한 존재였고, 사후에 왜 특별한 대우를 받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녀의 매장 방식이 매우 특이하며 유족들이 상당한 정성과 노력을 기울였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특히 두개골과 대부분의 큰 장골은 사라진 반면, 작고 약한 뼈들은 대부분 잘 보존되어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아마도 마그달레니아 시대에 주요 뼈들은 숭배의 유물로 전시하기 위해 동굴이나 다른 장소로 옮겨졌을 가능성이 있다.

이 시기 유적에서는 종종 흩어진 인골이 발견되는데, 이는 죽은 사람 유골을 분리해 운반하는 관습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어쩌면 붉은 여인은 그 무리의 여족장, 현자, 치유사, 무당, 또는 지도자였을지도 모른다.

매장지는 동굴에서 가장 풍부한 구석기 시대 유적층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하며, 이곳에서는 수많은 석기 및 골기 도구와 무기, 휴대용 예술품, 화덕, 그리고 육상 및 수생 동물의 유해를 포함해 수천 점 초기 마그달레니아 유물이 출토되었다.

엘 미론 붉은 여인 유적은 스페인에서 마들렌 문화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매장지가 발견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매우 놀라운 발견이다.

더욱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발견된 후기 구석기 시대 매장지는 이 유적이 두 번째다.

프랑스, 이탈리아, 중동부 유럽에서 이 시대의 후기 구석기 시대 매장지가 몇 개 더 발견되었지만, 엘 미론의 붉은 여인 유적은 현대적인 발굴 및 분석 방법을 통해 복원되고 연구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붉은 여인 유적에서 밝혀진 중요한 DNA 연구 결과

"엘 미론은 고대 유전 정보의 보고로 밝혀졌다"고 스트라우스는 말했다.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 노벨상 수상자 스반테 파보Svante Pääbo가 붉은 여인 유적에서 추출한 DNA는 빙하기 유럽 인구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바꿔놓았습니다."

DNA 분석을 통해 연구진은 붉은 여인이 고예(Goyet), 푸르놀(Fournol), 빌라브루나(Villabruna) 집단으로 알려진 수렵채집민들과 유전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밝혀냈다.

이들은 빙하기 말기에 빙하와 사람이 살기 힘든 극지방 사막이 줄어들면서 마들렌기 시대에 북유럽으로 이주했다.

그보다 앞선 시대, 솔루트레 문화로 알려진 사람들은 마지막 빙하기 최대기에 유럽 북부 지역을 버리고 스페인 칸타브리아 지방과 같은 남서유럽 피난처에서 살아남았다.
이는 붉은 여인이 산 시기보다 약 6천 년 전의 일이다.

DNA 분석을 통해 과학자들은 붉은 여인이 검은 피부, 검은 머리카락, 검은 눈을 가졌음을 확인했다.

스트라우스에 따르면, 이는 빙하기 유럽인들이 오늘날 유럽인들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기존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결과다.

또한 붉은 여인은 사망 당시 35~40세였으며, 평균적인 체격에 건강하고 건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레드 레이디의 턱뼈. 사진 제공: 뉴멕시코 대학교

 
과학자들은 석회화한 치석과 미세한 마모 흔적, 그리고 탄소와 질소 안정 동위원소를 분석하여 레드 레이디가 무엇을 먹었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이에는 육상 동물, 연어류와 연체동물 같은 해산물, 씨앗, 식물, 그리고 버섯과 같은 균류가 포함되었다.

이 정보는 빙하기 식단이 이전에 생각한 것보다 훨씬 다양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중요했다.

스트라우스는 하버드대와 막스 플랑크 연구소 크리스티나 워리너Christina Warinner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붉은 여인' 치석에서 발견한 가장 놀라운 사실 중 하나가 구강 미생물군에서 보존된 고대 박테리아 존재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치료 효과가 있는 천연물 개발에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박테리아가 19,000년 동안 완벽하게 보존되었을 뿐만 아니라, 약 20,000년 전에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유전되었으며, 아마도 어머니로부터 아기에게, 그리고 처음에는 인류 아종 간에 구강을 통해 전달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30년에 걸친 분석 방법의 발전

엘 미론 동굴에서 30년 넘게 진행된 연구를 통해 연구자들은 새로운 이해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선사 고고학과 고인류학 분야 전체를 혁신적으로 변화시켰으며, 먼 과거와 인류 진화에 대해 예상치 못한 새롭고 상세한 연구 방법을 제시했다.

스트라우스와 그의 동료들, 특히 전직 학생 발굴자이자 현재 칸타브리아 대학교 교수인 아나 벨렌 마린-아로요Ana Belen Marín-Arroyo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일반적이었던 전통적인 발굴 방식에서 벗어나 최첨단 고대 유전학 및 안정 동위원소 분석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고도로 발전된 학제 간 과학 연구로 프로젝트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노력은 해당 지역, 더 나아가 대륙 전체의 과거 인류 생활을 생물학적, 문화적으로 상세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 기반을 넓혔다.

스트라우스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저는 학문 분야가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고 말하며, "이러한 발전은 나를 항상 긴장하게 만들었고, 방법론이 발전함에 따라 새로운 유형의 첨단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새로운 동료들과 교류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덧붙였다. 

이제 전문 과학자들은 고대 DNA 염기서열 분석(aDNA 유전체학)과 동굴 바닥 흙에서 추출한 DNA를 연구하는 선구적인 퇴적물 DNA(sedaDNA) 분석을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유전자 분석을 수행할 수 있다.

이 방법을 통해 인류의 이동 패턴, 조상 및 인구 연결에 대한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다.

비엔나 대학교 페레 겔라베르트Pere Gelabert 교수가 이끄는 sedaDNA 방법은 동굴 흙이나 퇴적물에서 육식 동물과 인간 DNA를 발견했는데, 이는 붉은 여인 유적보다 훨씬 더 이른 초기 거주 시기로, 고예-푸르놀 유전적 집단Goyet-Fournol genetic cluster에 속하는 솔루트레 문화권 거주자들 것이었다. 

우연한 만남을 통해 스트라우스는 치석 연구 분야 선두 주자인 과학자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이 과학자는 생의학적 방법을 사용해 붉은 여인의 치아에서 버섯, 씨앗, 입안의 박테리아 등 식단을 파악할 수 있는 증거를 발견했다.

그녀의 치아가 화석화한 생물학적 일기장과 다름없었다.

스트라우스와 곤살레스 모랄레스, 그리고 전 세계 학생 및 과학자들은 고대 인류와 동물의 DNA를 심층적으로 분석해 강인하고, 재능이 넘치며, 서로를 사랑하고 슬퍼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찾아냈다.

하지만 이러한 정교한 연구의 핵심은 1996년 당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현장 조사에 달려 있다.

흙의 각 층에서 발견되는 모든 유물을 세심하고 꼼꼼하게 발굴하고, 체로 걸러내고, 기록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대부분의 날은 평범한 유물들을 발견하는 일상적인 작업이지만, 운이 좋으면 붉은 여인의 유물처럼 모든 것을 바꿀 만한 일생일대의 발견을 할 수도 있다.

다음 단계

1996년 호기심과 열정으로 시작된 발굴 작업은 유럽에서 가장 길고 풍부한 선사 시대 생활 기록과 빙하기 생존 기록, 그리고 궁극적으로 북부 이베리아 반도의 농업과 목축업의 기원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발전했다.

이 모든 것은 염소 배설물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화려한 이동식 벽화와 동굴 벽화부터 사냥과 낚시의 흔적, 무기, 도구, 그리고 첨단 DNA 분석에 이르기까지, 엘 미론 동굴은 계속해서 놀라운 발견들을 한다.

스트라우스와 곤살레스 모랄레스에게 있어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발굴은 2027년에 재개될 예정이다.

스트라우스는 자신의 지속적인 역할이 기존 연구자들과 학생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과학과 인류 과거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발전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두 권의 단행본과 150편이 넘는 과학 논문 및 저서를 꾸준히 발표했다.

그는 "제게 과학이란 바로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관점을 탐구하고 먼 조상들이 신체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그리고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배우는 것이죠. 엘 미론 동굴은 특히 방법론의 발전으로 과거를 연구하는 새로운 길이 열리면서 이 지역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합니다." 

More information
Lawrence Guy Straus et al, A Window into 40,000 Years of the Prehistory of Iberia: The Long Excavation of El Mirón Cave, Cantabrian Spain, Journal of Anthropological Research (2026). DOI: 10.1086/739377 

Provided by University of New Mex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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