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혼이 보인다고 그 사회가 족내혼? Endogamy vs. Exogamy를 엎어버린다

내가 사는 양지마을 우리집에서 시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라본 음지마을이다.
둘은 자연촌락이라 실상은 같은 동네라 행정문서에서는 실제 같은 이름으로 묶인다.
인류학에서 말하는 친족구조론에 족내혼Endogamy과 족외혼Exogamy이라는 개념이 있다.
가족을 이루는 뿌리 혹은 출발로 배우자를 다른 데서 데리고 오느냐 혹은 같은 동네서 구하느냐에 따른 구별이다.
예서 관건은 피와 공간이라 이 공간이 씨족 중심으로 그 공간 또한 구별되어야 한다.
이 피와 공간이 구별되지 않으면 족내혼 족외혼 구별은 의미가 없다.
암튼 편의상 양지마을과 음지마을을 다른 씨족 전통이라 치자.
족내혼 사회에서는 양지마을은 양지마을 사람끼리, 음지마을은 음지마을 사람끼리 결혼한다.
족외혼은 서로 맞바꾼다.
음지마을 사람은 양지마을에서, 양지마을 사람은 음지마을에서 배필을 데려온다.
이 경우도 남자가 여자집으로 들어가느냐 여자가 남자집으로 들어오느냐에 따른 구별도 있다. 이 점은 일단 여기서는 논외로 친다.
암튼 족내혼은 필연적으로 콩가루라 근친혼일 수밖에 없다.
같은 씨족 후손들끼리 결합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콩가루 근친혼이 빈발한다 해서 그 사회가 족내혼 지향인가는 완전히 다른 문제를 유발한다.
이 점에서 근자 임당동 인골분석을 토대로 당시 신라 사회가 족내혼이었다고 도출한 결론이 결정적 패착을 저질렀다는 말을 내가 했거니와 왜 그런가?
신라 사회는 알다시피 근친혼이 극심하다. 그렇다 해서 신라가 족내혼인가?
천만에.
우리는 역사를 볼 적에 언제나 한 쪽 어느 지점을 준거로 삼는다.
예컨대 음지마을과 양지마을 중 어느 한 쪽 마을만을 기준으로 본다.
실제 이런 경향은 전통시대 역사서술도 마찬가지라 예컨대 고구려 초기 기술만 해도 계루부니 절로부니 연로부니 해서 몇 개 부족으로 나뉘었다 하면서
왕은 대대로 계루부(어느 쪽이건 상관없다)에서 나오는데 왕비는 항상 절로부에서만 데려온다 하는 식의 기술이 있다.
이것만 보면 와 고구려는 철저한 족외혼이다! 이런 식으로 환성을 지르고 실제 고구려사 공부한단 작자들은 지금 이 순간도 자랑스럽게 그리 기술하고 자빠졌다!
문제는 저렇다 해서 고구려가 족외혼인가?
천만에.
고구려 역시 신라랑 마찬가지로 콩가루 근친혼 사회다.
왜 그런가?
우리는, 그리고 모든 기록이 왕비를 다른 부족 씨족에서 데리고 온다 했지 그 반대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저 고구려 초기 사회 왕족 지배층 뼈다구가 다 남았다면 dna 분석하면 모조리 같은 씨족으로 나온다.
왜인가?
왕비를 데리고 온다고만 생각했지 이런 결혼에서 낳은 자식들, 특히 딸들이 어디로 시집가는지는 단 한 번도, 단 한 놈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왕비를 특정 씨족에서 데리고 오기만 하고 이쪽에서도 아들을 사위로 주지 않으면 그 씨족은 망한다.
이런 결혼에서 낳은 자식 중 아들은 계속해서 엄마쪽 씨족에서 부인을 데려오는 반면 딸들은 엄마쪽 씨족으로 모조리 시집간다.
결국 계로부니 절노부는 족외혼임을 보증하기 위한 꺼풀데기에 지나지 않고 실제 두 씨족은 같은 혈통이다.
이걸 분명하게 밝혀주는 곳이 거란이다.
거란은 시조 야율아보기 이래 소씨 씨족만 왕비로 간택하면서 반대로 야율씨 여성들은 소씨 집안으로만 하가했다.
겉으로 보기엔 철저한 족외혼이지만 실제는 족내혼이다.
근친혼이 보인다 해서 그 사회가 족내혼?
웃기는 소리다.
이 족내혼 족외혼 문제는 인류학 이론을 다시 쓰야 한다.
그건 동아시아사, 특히 한국고대사가들이 해야 한다.
저런 걸 들고나가서 인류학 이론을 까부셔야 한다.
이것도 기뤠기 출신 내가 하리오?
뒤에서 다시 논하겠지만 철저한 족내혼 혹은 근친혼 판치는 사회인 줄 알았던 신라가 실은 철저한 족외혼 사회이며 왕비의 경우 그 혐의를 피하고자 부계가 아닌 모계로만 따져 대원신통과 진골정통을 발명했다는 화랑세기야말로 인류사 혁명이다.
뭐 화랑세기가 가짜?
웃기는 소리 작작들 하시고 내가 무식하다 고백하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