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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네안데르탈인 상처, 나무창 공격 가장 초기 증거?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10. 16.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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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 대학교 제공

샤니다르 A 동굴Shanidar A scapula에서 발굴된 네안데르탈인 견갑골(어깨뼈)의 복측ventral (왼쪽)과 배측dorsal (오른쪽) 모습. 복측은 견갑골 앞면, 즉 갈비뼈(가슴) 쪽을 향하는 면이고, 배측은 견갑골 뒷면입니다. 사진 제공: 엠마 포머로이 박사

 
이라크 쿠르디스탄Kurdistan 한 동굴에서 부분 유해가 발굴된 네안데르탈인 견갑골에 있는 둥근 구멍은 인류 화석 기록에서 나무창을 사용한 치명적인 대인 폭력의 가장 초기 사례일 가능성이 있다.

이 네안데르탈인 견갑골은 넓고 납작한 뼈로, 빛에 비추면 거의 투명해질 정도로 얇은 부분이 있다.

이 견갑골은 약 75,000년 동안 7.5미터(25피트) 두께의 암석과 퇴적물 아래에 거의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다.

즉, 15mm 너비 원형 구멍을 제외하고는 온전한 상태였다.

발굴을 이끈 케임브리지 고고학자들은 이 구멍이 날카롭게 다듬은 나무 창에 의해 생긴 것이라고 말한다.

플린트나 돌로 만든 창끝이었다면 평평하거나 각진 구멍만 남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창은 왼쪽 흉강을 정면에서 관통하고 폐와 주요 동맥을 포함한 신체를 통과한 후 왼쪽 견갑골에 구멍을 뚫어 급사를 초래했다.

연구진은 이 치명적인 공격이 의도적인 "심장 가격heart shot"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로로 갈라진 왼쪽 아래턱 측절치left lateral incisor 다양한 모습.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치아 모습은 다음과 같다. 위쪽(씹는 면), 아래쪽(뿌리 끝). 가운데 부분은 치열 앞쪽(근심측), 입술 쪽(순측), 치열 뒤쪽(원심측), 혀 쪽(설측)이다. 사진 제공: 엠마 포머로이 박사

 
구멍 주변 비스듬한 모양은 출구 상처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연구팀은 무기에 의해 떨어져 나온 작은 뼈 조각들을 발견했는데, 그 위치로 보아 창이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궤적으로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연구진은 뼈에 근육이 있던 흔적인 희미한 능선을 따라가며 이 파편들을 이용해 구멍 일부를 복원할 수 있었다.

"7만 5천 년 전 견갑골이 완벽하게 보존된 채로 발견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이 뼈들은 매우 얇아서 현대 매장지에서는 완전한 형태의 견갑골이 발견되는 경우가 드뭅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고고학과 연구 책임 저자인 엠마 포머로이Emma Pomeroy 박사는 말했다.

"우리는 거의 8미터(26피트) 두께 암석과 퇴적물 아래에서 이 유물을 한 조각으로 꺼낼 수 있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이 유물을 발견된 유명한 동굴 이름을 따서 샤니다르Shanidar A라고 명명했으며, 연구 결과는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발표되었다.

선사시대 초기에 만든 목제 유물은 부패로 인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약 20만 년 전, 초기 네안데르탈인이 유럽을 누비던 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물속에 잠긴 창들이 1990년대 독일 쇠닝겐Schöningen에서 발견되었다. 

길이가 2미터(6.6피트)가 넘는 이 창들은 현대의 투창처럼 던지기에 무게 배분이 최적화하도록 엄선된 목재로 만들었으며, 아마도 대형 사냥감을 사냥하는 데 사용했을 것으로 본다.

샤니다르Shanidar 동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둥근 나무 창은 40만 년이 넘었다.

뾰족한 끝부분만 남아 있으며, 1911년 영국 클랙턴온시Clacton-on-Sea 해안에서 발견되었다.

연구진은 샤니다르 A의 죽음 역시 이와 유사한 기술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 상처가 선사 시대 중동에서 날카롭게 다듬은 나무 창을 사용한 최초 증거일 수 있다고 말한다.

케임브리지 뉴넘 칼리지Newnham College 연구원인 포머로이 박사는 "당시 창을 재현한 흔적이 네안데르탈인 견갑골에서 발견된 구멍과 매우 잘 맞아떨어진다"고 말했다.

"그 초기 기술은 이 상처에 확실히 적용됩니다."

"우리가 가진 증거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과 그 조상들은 샤니다르 A가 죽기 수천 년 전에 목공과 무기 제작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이러한 능력은 웨일스에서 시베리아에 이르는 네안데르탈인 모든 서식지에 걸쳐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포메로이 교수는 샤니다르 A의 죽음이 사냥 사고였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매머드 같은 동물은 창으로 가까이서 사냥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라크 쿠르디스탄에 있는 샤니다르 동굴 입구 모습. 사진 제공: 그레이엄 바커 교수

 
하지만 그녀는 고의적인 폭력의 흔적도 있다고 말한다.

"상처 위치와 네안데르탈인 몸을 관통하는 데 필요한 힘은 심장을 겨냥한 의도적인 살해 행위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이 폭력의 배경이나 현대 인류가 연루되었을 가능성은 알 수 없지만, 고고학자들은 가장 직관적인 해석으로 네안데르탈인  개인 간 폭력을 꼽는다.

"이 네안데르탈인의 최후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폭력적이었고 나무 창에 찔려 죽었다는 것뿐입니다."

샤니다르 동굴 발굴을 이끄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세인트존스 칼리지St. John's College 그레이엄 바커Graeme Barker 교수는 말했다.

"체계적인 폭력의 증거는 선사시대 초기에는 극히 드뭅니다. 대부분의 증거는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수렵채집 사회 이후 수천 년이 지난 정착 농경 사회에서 발견됩니다."
 
갈라진 이빨과 보살핌의 흔적

견갑골은 거의 온전한 오른손, 왼쪽 갈비뼈 두 개와 오른쪽 갈비뼈 조각 하나, 그리고 이빨 일곱 개와 함께 발굴되었다.

이는 폭력적인 죽음을 맞았을 당시 약 45세로 추정되는 성인 네안데르탈인 유해다.

견갑골 구멍과 그 아래 퇴적물에 박힌 조각들. 왼쪽 위: 견갑골 구멍 복측면으로, 두 개 조각이 다시 맞춰진 모습이 보인다. 오른쪽 위: 점선으로 표시된 근육선은 조각들이 제대로 다시 맞춰졌음을 나타낸다. 아래: 보존 처리 전 견갑골 아래 퇴적물에 박혀 있던 구멍과 조각들 3D 렌더링 이미지. 사진 제공: 엠마 포머로이 박사

 
아래턱 앞쪽 절치 하나가 세로로 갈라져 절반만 남아 있었고, 주변 이빨들은 안쪽으로 회전되어 있었다.

반으로 갈라진 치아에는 노출된 치근관을 따라 상당한 양의 치석이 쌓여 있었는데, 이는 과학자들이 추측하기로 얼굴 앞쪽에 심한 둔기 충격이 가해진 후에도 치아가 한동안 입 안에 남아 있었음을 시사한다.

포메로이 교수는 "이런 식으로 치아가 쪼개질 정도 충격을 받고도 살아남아 최소 1년, 어쩌면 그 이상 동안 계속 살아가고 음식을 먹었다는 것은 다른 네안데르탈인의 보살핌과 도움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메로이 교수는 샤니다르 A가 처음 부상을 당한 후에는 부드러운 음식을 먹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샤니다르 동굴 퇴적물에 대한 이전 연구에 따르면, 당시 네안데르탈인들은 식물성 식품을 조리하기 전에 물에 불려서 먹은 것으로 나타났다.

"샤니다르 A는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었고 오랫동안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을 것이 분명합니다."

샤니다르 A의 왼쪽 견갑골은 케임브리지 대학교 레버흄 인류 진화 연구 센터에서 촬영되었다. 사진 제공: 케임브리지 대학교

 
"샤니다르 A 유해는 우리가 인간이라고 인식하는 많은 것의 이중적인 본성을 반영합니다. 한편으로는 끔찍하게 폭력적인 최후를 맞았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사람은 생전에 분명히 보살핌을 받은 개인이었습니다."

바커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진화적 사촌인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연민과 폭력이라는 두 가지 면모가 한 사람에게서 모두 나타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장례 풍습'

이라크 쿠르디스탄 산기슭에 위치한 샤니다르 동굴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네안데르탈인 유적 중 하나다.

1950년대 랄프 솔레키Ralph Solecki가 이끈 발굴 조사에서 10구 유골이 발견되었는데, 그중 네 구는 서로 다른 시기에 사망했음에도 같은 장소에 함께 묻혀 있었다.

이는 네안데르탈인이 죽은 동족을 매장하기 위해 이곳으로 돌아왔음을 시사한다.

동굴 다른 곳에서 발견된 또 다른 네안데르탈인 유골은 수천 년 후의 인물로 팔 마비, 관절염, 난청, 부분 시력 상실 등의 증상을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장수한 것으로 보아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연민, 사회적 지지,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의례적 흔적은 네안데르탈인을 야만적이고 인간 이하의 존재로 여긴 빅토리아 시대 관점을 재고하게 했다.

동굴 벽화부터 장신구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세련된 문명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계속해서 발견되며, 유전자 분석을 통해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 간 이종교배 가능성도 밝혀지고 있다.

샤니다르 A는 2020년에 발굴되었으며, 2015년 이후 케임브리지 연구팀이 이 매장지에서 추가로 발견한 세 구 네안데르탈인 유골 중 하나다.

이로써 동굴 내에서 길이 1.5미터, 폭 1미터, 깊이 1미터에 불과한 작은 공간에서 총 다섯 구(성인 네 구와 유아 한 구) 네안데르탈인이 발견되었다.

이 매장지는 커다란 수직 바위, 즉 "눈에 띄는 표지" 바로 뒤에 위치해 있으며, 유골들은 얇은 퇴적층으로 분리되어 있다.

샤니다르 A는 이 매장지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유골 중 가장 깊은 곳에 있으며, 아마도 이 공간에 처음으로 안치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유골은 등을 대고 누워 머리가 동쪽을 향하도록 놓여 있으며, 바로 위에는 몸통이 있다.

포메로이 교수는 "가장 타당한 설명은 의도적이고 상징적인 장례 행위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네안데르탈인들은 죽은 자를 안치하기 위해 같은 장소로 돌아왔습니다. 일부는 이전 시신이 완전히 부패하기 전에 매장되었으므로, 이러한 행위는 수년 또는 수십 년 사이에 일어났을 것입니다." 


Publication details
Emma Pomeroy, Evidence for funerary behaviour and lethal trauma in a new Neanderthal individual from Shanidar Cave, Scientific Reports (2026). DOI: 10.1038/s41598-026-69193-z. http://www.nature.com/articles/s41598-026-69193-z

Journal information: Scientific Reports 
Provided by University of Camb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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