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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총은 자비왕릉] (5) ‘尒斯智王’을 들고 나온 국립중앙박물관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7. 25.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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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은 2013년 7월 3일, 느닷없는 보도자료 하나를 언론을 통해 배포하는데 제목이 '신라 금관총 출토 大刀에서 ‘尒斯智王’ 명문 확인'이라, 담당 부서는 고고역사부.

담당 부장은 홍진근, 담당 학예연구사는 김대환. 저 중에서도 퇴직하고서 이미 퇴물이 된 홍진근보다는 이 김대환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이 친구가 훗날 계속 이 문제로 걸리기 때문이며, 나아가 근자 신라 금관을 신라왕이 썼네마네 하는 논란까지 이어진다. 

금관총은 경주에 있는데, 왜 국립경주박물관이 아닌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저걸 들고 나왔는가?

좀 아픈 식민주의 역사가 있다. 식민지시대에 조사한 경주 자료는 당시에도 경주분관이라 해서 훗날 국립경주박물관 전신이 되는 조선총독부박물관 분소가 있기는 했지마는, 찌꺼기 쓰레기만 던져주고 돈 되는 건 죄다 서울로 뽑아올렸거니와

이걸 지금까지도 서울에서 틀어쥐고 경주로 주지 않고 지들이 꼬불쳐 두고 있거니와, 금관총 유물들도 다 그래서 

이것도 좀 더 자세히 조사해 봐야겠지만, 식민지시대 경주 지역 출토품은 죄다 서울에서 틀어쥐고 있다. 서봉총 금관총 금관과 기타 관련 출토품들도 죄다 서울 소장품이다. 물론 가끔씩, 혹은 다른 형식으로 경주에서 선보이기도 한다.

이게 참말로 웃기는 게 작년인가? 에이펙 정상회담한다고 그 일환으로 경주박물관서 금관 6점을 다 모았는데, 왜 웃기느냐? 경주 지역 출토품은 당연히 경주에 있어야 하니, 무슨 새삼스럽게 금관 전시?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서울로 죄다 뺏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각설하고, 금관총 관련 유물도 적어도 1921년 조선총독부 수습품은 죄다 서울에서 틀어쥐었으니, 문제의 저 글자 이사지왕尒斯智王을 새긴 칼 자루 역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라, 그네들이 지들 소장품 정리 분석 중에 저 글자를 발견하고선 대서특필해달라 해서 언론에 요청한 것이다. 

암튼 저날 보도자료 전문은 다음과 같다. 
 
신라 금관총 출토 大刀에서 ‘尒斯智王’ 명문 확인
등록일 2013-07-03 조회수7085 담당부서 고고역사부
 
신라 금관총 출토 大刀에서 ‘尒斯智王’ 명문 확인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은 경주 금관총(1921년 조사)에서 출토된 고리자루큰칼[環頭大刀]에서 ‘尒斯智王이사지왕’이라는 명문을 확인하였는데 이는 신라무덤에서 출토된 최초의 왕명(王名)이다.

이 명문은 국립박물관이 추진하고 있는 미공개 자료에 대한 정리 사업인 ‘조선총독부 박물관 자료 공개 사업’의 하나로, 보존과학부에서 금관총 출토 고리자루큰칼에 대한 보존처리를 하는 과정에 발견되었다.

명문은 칼집 금속부에 선각되었는데, 칼집 하단 앞뒷면에 ‘尒斯智王이사지왕’, ‘十십’, 칼집 상단에 ‘尒이’가 새겨져 있다. 또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된 금관총 출토 고리자루큰칼에서도 ‘尒이’, ‘八팔’, ‘十십’이라는 명문이 확인되었다.
 



‘尒斯智王’은 신라 금석문 등에 보이는 전형적인 신라식 표기로, 금관총의 주인공과 관련된 정보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이다. 명문은 신라 무덤에서 최초로 확인된 왕명(王名)이며, 이로써 금관총은 주인공이 밝혀지는 유일한 신라 무덤이라는데 의의가 매우 크다.

‘尒斯智王’이라는 왕명은 『三國史記』, 『三國遺事』및 신라 금석문에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현재로는 ‘尒斯智王’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尒斯智王’은 금관총의 주인공으로서, 당시 신라 최고지배자인 마립간(麻立干: 내물왕~지증왕) 중 한 사람의 다른 왕명으로 추정할 수 있으나 현재의 자료로서 한계점이 많다. 

한편 ‘尒斯智王’은 당시 왕으로 불린 고위 귀족 중 한 사람으로도 추정할 수 있다. 포항 냉수리 신라비(503년 건립)에 보이는 ‘此七王等차칠왕등’과 같은 기록을 통해 왕(마립간)이 아닌 사람도 왕으로 불린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금관총의 ‘尒斯智王’은 신라에서 6세기 전반까지 왕과 왕 아래에 있는 갈문왕이나 간지(干支)를 가진 고위 귀족도 왕으로 불렸다는 일부 학계의 연구를 지지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尒斯智王’을 고위 귀족으로 볼 때, 금관총ㆍ천마총 등 지금까지 금관이 출토된 신라 무덤을 마립간의 무덤으로 비정한 많은 국내외 연구는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번 명문은 금관이 마립간과 고위 귀족 등이 함께 사용하였으며 마립간만의 상징물이 아님을 분명히 알려 준다.

금관총은 1921년 주택 공사 중 신라 무덤에서 최초로 금관이 발견되어 세상의 주목을 받았으나 유물 정리와 보고서 작업은 당시 일본인 연구자에 의해 독점되었다.

금관총 조사 이후 92년이 지난 오늘, 우리 손에 의해 금관총의 중요성이 다시 드러나고 있다.

또 금관총 고리자루큰칼에서 명문이 확인되어 조선총독부 박물관 관련 자료의 가치가 재인식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국립박물관은 현재 진행 중인 미공개 자료 조사 사업을 좀 더 체계적으로 진행함과 동시에 소장품에 대한 보존처리와 관리 방안을 한층 더 강화해 나갈 것이다.

 
이 보도자료는 이후 저 이사지왕 문제를 엉뚱한 데로 흘러가게 하는 결정적인 빌미를 마련했으니, 보고자의 처음 보고는 저런 방향을 설정한다는 점에서 그만큼 중요하지만, 그 방향타가 오타였을 때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저 보고는 문제인가? 
 
[금관총은 자비왕릉] (4) 스멀스멀 관 뚜껑 열고 기어나오는 귀신 씻나락
https://historylibrary.net/entry/seven-kings-1

[금관총은 자비왕릉] (4) 스멀스멀 관 뚜껑 열고 기어나오는 귀신 씻나락

지금의 포항 영일 냉수리 일대 절거리라는 사람의 재산 분쟁과 관련해 당시 신라 조정에서 무슨 판결을 내렸으니 저 일곱 명은 이번 결정에 간여한 당시 신라 왕과 관료들 명단이다.이름이 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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